‘오일머니’ 앞세워 전기차 글로벌 기업들 불러 모으는 사우디, “목표는 1위”

韓 전기 자동차 기업들, 사우디와 대거 협업 계약 체결 美·中도 ‘교두보’ 건설 위해 사우디 진출 앞다퉈 사우디, 전기 자동차 자체 생산 위한 공장 건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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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현재자동차와 사우디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사진=사우디 산업광물자원부 X(구 트위터)

사우디아라비아가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자국 전기 자동차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벌이고 있다. 특히 사우디 국부펀드 PIF는 현대, LG에너지솔루션을 포함한 한국 전기차 관련 업체는 물론, 미국과 중국 기업들과도 공장 건설 및 부품 수급 계약을 체결해 나가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경쟁이 전기 자동차 신규 시장인 사우디에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내 전기차 기업들, 사우디 자동차 시장 대거 진입

18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오는 10월 정의선 회장이 사우디를 방문한 자리에서 현지 공장 설립 계획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또한 현대차그룹 부품사의 현지 추가 진출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대케피코는 지난 7월 PIF와 대만 폭스콘이 합작해 설립한 전기차 시어(Ceer)에 2,500억원 규모의 자동차 전자제어시스템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대차는 사우디와 1976년에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사우디에 진출한 현대건설에 포니 15대를 수출하면서다. 이후 사우디는 현대차 중동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던 와중 PIF의 막대한 ‘오일머니’를 뒤에 업은 시어가 본격적으로 자동차 공장 건설에 시동을 걸면서 이번 현대를 포함한 국내 부품업체가 앞다퉈 현지 진출을 나서는 모습이 펼쳐지게 된 모습이다.

한편 국내 배터리업계는 미국 전기차업체 루시드가 사우디에 설립하는 공장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PIF가 약 6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루시드는 2024년까지 약 연간 15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전기차 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업계에선 루시드 전기차에 장착될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공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3월 자사 원통형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루시드 에어를 국내에 전시하기도 하며 양사 간 끈끈한 협업관계를 자랑한 바 있다.

한편 한국타이어는 사우디에 전기차 전용 타이어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고 선제적으로 현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와 관련 ’50년 파트너십’을 자랑하는 사우디 대기업 빈시혼을 통해 전기차 전용 타이어 아이온을 시장에 선보였다.

사우디에서도 이어지는 미-중 기술 경쟁

최근 이처럼 사우디가 전기차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기존 경제 구조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기 위해서다. 세계 원유 매장량의 약 17%를 차지하는 사우디는 GDP의 약 절반가량을 원유 수출로 창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는 지속 가능한 미래 성장을 위해 첨단 전기차 산업을 비롯한 비석유 부문의 GDP 성장 기여도를 기존 약 16%에서 5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요 자동체 업체들도 사우디 전기차 시장에 ‘교두보’를 짓기 위해 일사불란한 모습이다. 미국은 앞서 루시드 외에도 포드, GM이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GM은 사우디에서 캐딜락 ‘리릭’, ‘GMC 허머’, ‘쉐보레 볼트’ 등의 전기차를 출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한편 테슬라도 사우디 공장 건설을 검토 중에 있다.

이에 질세라 중국 또한 사우디 전기차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모양새다. 지난 6월 중국 전기차 업체 휴먼 호라이즌스는 사우디 투자부와 56억 달러(약 7조4,379억원) 규모의 전기차 개발, 제조, 판매 협력 계약을 체결해 글로벌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해당 합의는 리야드에서 열린 아랍-중국 재생에너지, 기술, 농업, 부동산, 금속, 의료, 관광 등 분야에서 체결된 총 100억 달러(약 13조2,706억원) 규모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시장이 미-중 갈등의 전투장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한 경제 전문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수출 규제가 심해지면서 각국의 전기차 시장은 자국 기업 위주로 채워지고 있는 게 현 상황”이라며 “그런데 최근 사우디가 전기차 산업의 핵심 국가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글로벌 기업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가운데,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현지 시장으로 미-중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뛰어들면서 양국 간 기술 경쟁이 다시금 촉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사진=PIF

전기차 자체 생산까지 손 뻗은 사우디

사우디가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자국 투자를 이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자체 전기차 브랜드를 출시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앞서 살펴본 시어가 대표적인 예다. PIF를 이끄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애플 위탁생산업체 폭스콘, BMW와 협력해 시어를 출시했다. 빈 살만은 출시 발표 당시 “시어의 출범은 오는 2030년까지 연간 전기차 50만 대를 생산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전 2030’의 목표를 달성하는 전략과 일맥상통한다”고 밝힌 바 있다.

PIF를 등에 업은 시어는 자체 차량 생산을 위해 폭스콘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막대한 투자를 통해 BMW로부터의 부품 기술 라이선스 획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간 한국, 일본, 미국, 중국에 수입을 통해 자동차를 들여왔다면, 이젠 시어 투자를 통해 사우디가 자체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기차 제조 선두 주자로 우뚝 서겠다는 복안이다.

앞서 사우디는 지난해 3월 자국 공장 건설 및 자체 전기차 생산을 위해 사우디 투자부(MISA), 사우디 산업 개발 기금(SIDF), 그리고 압둘라 경제도시(KAEC)와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루시드가 전적으로 소유한 해당 공장은 현재 건설이 완료됐으며, 올 하반기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