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상승’ 우려에 예금자보호한도 현행 유지 가능성↑
이달 21일 개최되는 민관 합동 TF 관련 ‘최종회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듯 대출금리 인상에 따른 저축은행 등 금융 불안에 ‘현행 유지’ 분위기 주요국 대비 국내 보호한도가 지나치게 낮아, ‘개정 시기’ 놓치지 말아야
23년째 1인당 5,000만원으로 묶인 예금자보호한도가 이번에도 그대로 유지될 거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보호한도 상향과 예보료 인상 등이 대출금리를 끌어올려 가계부채 부담과 물가 인상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각에선 예금자보호법상 보호한도 5,000만원을 넘어서는 예금의 비율이 지난해 들어 66%를 넘어섰다며 개정 법안까지 발의된 지금 보호한도 상향 시기를 놓쳐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보 한도 인상, “금융 불안 가져올 것”
1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오는 21일 예금자보호제도 정비를 위해 운영해 온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 관련 최종 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번 회의는 TF 연구 용역 결과를 공유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로, 금융위와 예금보험공사, TF 연구 용역 담당 민간 전문가, 은행·저축은행·보험 등 업권별 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한다.
TF 연구 용역 보고서에는 예금자보호한도와 관련해 △보호한도 5천만원으로 현행 유지 △단계적 한도 상향(7천만→1억원) △일부 예금 별도 한도 적용 등의 시나리오가 담겼다.
현재까지는 ‘현행 유지’ 쪽으로 방향이 결정된 분위기다. 자칫 금융권 예보료 인상 부담이 대출금리 인상과 함께 금융 불안을 가져올 거란 우려가 작용한 탓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한도 상향 논의가 급물살을 탔을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지금은 한도 상향을 논의할 시점이 아니라는 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달 말 회의에서 ‘정부안’이 하나로 확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당국은 향후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수렴한 의견들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한도 상향 시 저축은행으로 예금 ‘최대 40%’ 몰릴 거란 우려도
지난 3월 SVB 뱅크런 사태와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스(CS) 파산 등 글로벌 금융회사의 유동성 위기가 부각되면서 국내에서도 예금자 보호를 강화하자는 논의가 탄력을 받았다. 한때 여야는 보호한도 상향에 한목소리를 내며 관련한 법 개정안 여러 건을 국회에 발의하기도 했다.
당시 보호한도 상향을 가장 반겼던 쪽은 2금융권이었다. 시중은행은 자금 유출을 우려했지만 2금융권 가운데 특히 대형저축은행들은 한도 상향에 따른 수신고 확대를 기대할 수 있어 환영했다. 그러나 정부가 보호한도를 유지하는 쪽으로 선회하게 된 결정적인 영향을 준 배경이 바로 2금융권의 자산건전성에 대한 우려다.
최근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PF 부실 우려, 자금조달 부담 가중 등으로 주요 경영지표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적자 폭도 크게 늘며 대형사들마저 줄줄이 신용등급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금자보호한도가 상향된다면 높은 예금금리를 찾는 수요자가 늘고 대출금리까지 덩달아 상승하면서 부실 은행들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도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을 통해 “(예금자보호)한도가 오를 때 예금자가 금융기관의 건전성보다는 높은 금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며 “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할 경우 저축은행 예금이 최대 40%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 규모 대비 예보 한도 지나치게 낮은 한국
우리나라의 예금자보호한도는 2001년 5,000만원으로 상향된 후 23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지난해 기준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4,187만원으로 2001년(1,492만원)보다 2.8배 가까이 늘어난 점을 고려할 때 예금자의 체감 보호한도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해외 주요국에 비해 국내 보호한도가 지나치게 낮은 점도 상향 논의가 꾸준히 제기돼 온 이유다. 주요국 대부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도 상향 조정을 시작한 가운데 현재 미국은 1인당 25만 달러(약 3억2,630만원), 영국은 8만5,000파운드(약 1억4,242만원), 일본은 1,000만 엔(약 9,083만원)까지 보호한다.
주요국의 1인당 GDP 대비 예금자보호한도를 살펴봐도 우리나라의 제도는 그간 성장한 경제 규모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 대비 예금자보호한도는 1.2배로 미국(3.3배), 영국(2.3배), 일본(2.3배) 등과 비교하면 훨씬 낮다.
제2의 SVB 사태를 생각하면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의 필요성은 더욱 대두된다. 온라인 및 모바일 거래가 발달된 우리나라는 고속 뱅크런에 더욱 취약한 구조를 가졌다. 이렇다 보니 올해 한도상향 관련 개정 법안까지 발의된 지금,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예금자보호법상 보호한도 5,000만원을 넘어서는 예금의 비율은 2017년 61.8%(724조3,000억원)에서 2022년 6월 기준 65.7%(1,152조7,000억원)으로 높아졌다”며 “금융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줄여주기 위해서 예금자보호한도 확대 논의를 포함해 보다 실질적인 예금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