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숟가락 얹었다? 고평가 논란 英 ARM, 상장 당일에만 ‘반짝 폭등’

‘고평가 논란’ 휩싸인 英 ARM, 나스닥 상장 첫날 25% 급등 성공 점점 미끄러지는 주가, 최근 실적 대비 높은 몸값·AI 거품 등이 원인 시장에서는 회의적인 전망도, 스마트폰 AP ‘선두 주자’ 명예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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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RM

고평가 논란에 휩싸인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이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 첫날 25% 이상 폭등했다. 상장 전부터 공모가가 고평가됐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상장 첫날만큼은 우려를 딛고 올해 미국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어’ 타이틀을 지켜낸 것이다.

하지만 상장 당일 반짝 뛰었던 주가는 빠르게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매출 정체 상태인 ARM의 몸값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ARM 주가를 띄운 AI 분야가 사실상 ARM의 사업 모델과 연관성이 적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ARM 지분 투자를 제안받은 삼성전자 등 주요 협력사마저 등을 돌렸다는 소식이 확산하는 가운데, ARM에 대한 시장의 기대 역시 꺾여가는 양상이다.

시장 독점에 AI 진출? ‘반짝’ 주가 상승세

ARM은 상장 전날 최종 공모가를 희망가 범위(47∼51달러) 최상단에 해당하는 51달러로 책정하며 지난 14일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이날 ARM은 56.10달러에 처음 거래된 뒤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고, 63.59달러에 장을 마쳤다. 상장 첫날 주가가 25% 급등한 것이다. 이날 종가를 기준으로 한 ARM의 시가총액은 약 652억4,800만 달러(약 86조6,559억원)다.

ARM은 모바일용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상장 첫날 흥행을 견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ARM은 반도체 기본 설계도인 ‘아키텍처’를 만들어 삼성전자를 비롯해 애플, 퀄컴, 화웨이, 미디어텍 등 세계 1,000여 개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두뇌’로 통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중 90% 이상이 ARM의 설계를 채택했다.

최근 들어서는 전력 소모가 적은 ARM의 반도체 설계가 클라우드 서버, AI용 프로세서 등에도 활용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이 같은 기대 아래 2020년 400억 달러(약 53조1,240억원)를 투입해 ARM을 인수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반독점 우려를 제기하면서 엔비디아의 인수 시도는 불발됐다.

사진=unsplash

협력사도 외면한 ARM

하지만 ARM의 주가 상승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뉴욕 증시에서 ARM의 주가는 지난 15일(현지시간) 4.47%, 18일(현지시간) 4.53% 급락했다. ‘반짝 상승세’ 이후 하락세가 잇따르며 주가는 58달러 선까지 내려왔다. 점차 주가가 상장가인 51달러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는 ‘고평가 논란’이 지목된다. ARM은 상장 전부터 몸값이 지나치게 높게 평가됐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상장 이후에도 논란은 이어졌다. 실제 상장 첫날 시가총액(652억4,800만 달러·약 87조원)과 2023 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매출 26억7,900만 달러(약 3조5,577억원)를 기준으로 계산한 ARM의 주가매출비율(PSR)은 24.3배에 달한다. 마이크로소프트(11.9배), ASML(10.7배) 등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높은 몸값에 비해 ARM의 실적은 부진한 편이다. 매출이 수년간 정체 상태기 때문이다. 2023 회계연도 ARM의 매출(26억7,900만 달러)은 2022 회계연도(27억300만 달러) 대비 역성장했다. ARM이 스마트폰용 반도체 기초설계도(IP) 시장의 독점 기업이란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성적표다.

실적 대비 높은 몸값에 협력사들마저 등을 돌렸다. 지분 100%를 보유한 ARM의 최대 주주 소프트뱅크는 삼성전자와 애플, 아마존 등 주요 협력사에 지분 투자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기업 중 그 누구도 선뜻 투자금을 내주지 못했다. 높은 몸값 대비 지분 참여로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이득이 적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편 ARM의 자리를 대체할 초전력 반도체 설계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주가 변수로 꼽힌다. 최근에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오픈소스) ‘리스크 파이브(RISC-V)’ 기술이 시장에서 영향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에 고가의 로열티(특허료)를 지급해야 사용할 수 있는 ARM 아키텍처의 매력은 자연히 반감됐다. ARM의 고객사는 의도적으로 리스크 파이브를 활용한 칩을 개발하며 ‘ARM 대항마’를 육성 중이다.

AI 분야와 연관성 적다? 비관적 전망 제기도

‘생성 AI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에 비해 ARM과 AI의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사실상 ARM이 지금껏 AI에 최적화된 핵심 반도체 기술을 선보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AI 반도체와 직결되는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 중앙처리장치(CPU)용 IP 시장에서 ARM의 점유율은 각각 10.1%, 16.2% 수준에 그친다.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이 주도해 온 생성 AI 열풍에 ARM이 사실상 ‘숟가락만 얹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래 먹거리’ AI와의 연관성이 적은 만큼 시장 전망 역시 밝지만은 않다. 18일(현지시간) 마켓워치에 따르면, 번스테인의 사라 루소 애널리스트는 “ARM이 인공지능(AI)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로 주가에 프리미엄이 더해졌으나, ARM이 AI의 승자라고 선언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ARM에 대한 투자 의견을 ‘시장 수익률 하회’로, 목표 주가를 46달러로 제시했다. 시장의 기대치가 점점 내려가는 가운데, ARM의 ‘몸값 거품’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