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캠프 관계자 “내년 재집권 성공하면 IRA 관련 지출 대폭 삭감”, 현대차 등 국내 업계 미칠 영향은?
트럼프 "기후 및 에너지 정책 주요 골자로 한 IRA, 근본적으로 개편할 것" IRA 시행 직후 전기차 시장 점유율 급감한 ‘현대차’는 수혜 예상 반면 ‘K-배터리 3사’ 등 국내 이차전지 업계 고민 깊어질 듯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포함한 기후 정책을 뒤집고 화석 연료를 대폭 늘릴 전망이다. 정권 변화에 따라 국내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도 상이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IRA 개편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 등이 대폭 축소될 경우 기존 보조금 지급으로 혜택을 받았던 미국 전기차 업체들의 점유율이 하락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반사이익이 예상된다. 반면 현지 대규모 투자를 통해 IRA 대응에 나섰던 국내 배터리 3사의 경우 IRA 폐지에 따른 현지 업체들과의 공급망 협력 불확실성 등으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화석 연료 생산 극대화 강조, IRA 폐지 거론
23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 캠프 고위 관계자들과 고문들의 발언을 인용해 미국의 기후 및 에너지 정책을 주요 골자로 한 IRA를 근본적으로 개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 관계자는 “IRA에 따른 보조금과 세금감면에 들어가는 세금이 과소평가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그런 지출의 많은 부분을 삭감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캠프는 화석 연료 생산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미국의 기후‧에너지 정책을 완전히 재정비하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특히 미국의 보수성향 연구기관인 헤리티지재단을 중심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전직 관료들이 내놓은 정책 제안인 ‘프로젝트 2025’를 언급하며 IRA에 대한 개편을 시사했다. 프로젝트 2025는 4,000억 달러(약 521조원) 규모의 탄소 배출 감축 예산을 집행 중인 현 대출 프로그램 실행 부서를 비롯해 에너지 효율, 재생에너지 담당 정부 기관 등을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트럼프의 대선 정책 중 하나다.
보수적 싱크탱크인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연구소의 부의장이자 트럼프 행정부 고문을 맡은 칼라 샌즈도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첫날, 일자리를 없애고 산업을 죽이는 바이든의 모든 규제를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첫날 복귀한 파리기후협정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 회의론자”라며 “파리협정 탈퇴는 거의 확실히 보장된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IRA를 두고 ‘역대 최악의 세금 인상법’이라고 비난해 왔다. 또 화석 연료 생산을 억제하는 바이든 행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휘발유 가격을 높이는 동시에 자신이 집권하던 시절 확립한 미국의 ‘에너지 자립’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해 왔다. 최근 캠페인 동영상에선 “미국의 에너지가 풍력 발전에 의존하기 때문에 약하고, 표준 이하며, 저렴하지 않다”며 “풍차는 녹슬고 썩고 새를 죽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반사이익 예상되는 현대차그룹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며 바이든 정권의 정책을 뒤집을 경우 IRA 여파로 큰 타격을 입었던 현대차·기아엔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산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약 977만원)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IRA는 신차는 물론 중고 전기차를 구매할 경우에도 특정 요건을 만족하면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에 따라 올해 미국 내 전기 자동차 판매량이 이달 처음으로 100만 대를 돌파하며 연말까지 사상 최대치(연 130만~140만 대)를 기록할 거란 전망이 나오지만,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IRA 시행 직후 전기차 시장점유율이 급감했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월평균 4.4%로, IRA 시행 이전인 지난해 1월(12.5%)보다 30% 넘게 떨어졌다. 올해 들어 시장점유율이 서서히 회복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IRA 이전 수준까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IRA 시행 이후 보조금 혜택를 받지 못하는 상황과 지난해부터 늘어난 전기차 생산 업체들과의 경쟁 등 이중고를 겪은 영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IRA가 폐지되면 현대차·기아에 직접적인 이익보단 IRA를 통해 보조금을 받는 경쟁사들의 점유율 하락에 따른 간접 수혜가 예상된다. 특히 미국 전기차 시장의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테슬라의 점유율은 최근 들어 이미 감소 추세로 돌아서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익스페리언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테슬라의 미국 내 등록 비중은 지난해 1~3분기 65.4%에서 올 1~3분기 57.4%로 8%포인트 떨어진 반면, 같은 기간 현대차·기아는 4%에서 4.8%로 0.8% 증가했다. IRA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기아가 테슬라를 맹추격 중인 셈이다.
IRA 수혜 노리고 미국 진출 확대한 이차전지 기업들은 ‘경계’
반면 트럼프의 승리를 우려하는 기업들도 있다. IRA 폐지가 될 경우 그간 미국 현지 진출에 적극적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업계의 IRA 관련 투자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양사는 각각 현대차와 함께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설립하고 있으며, 삼성SDI도 스텔란티스, 제너럴모터스(GM) 등과 협업하고 있다. 국내 1위 분리막 제조 기업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도 최근 북미와 기타 해외 지역에 7년 동안 분리막을 공급하는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하며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이에 업계는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지만, 아직 공화당 대선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 논의로까지 이어지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국내 이차전지 기업 관계자는 “모든 기업에 불확실성을 안기는 정권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는 늘 있었던 일”이라며 “특정 정치인의 공약에 대해 시시각각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단 전기차와 이차전지 산업의 글로벌 추세를 보다 명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전기차 산업이 세계적인 흐름인 만큼 대세를 크게 흔들지는 못할 거란 주장도 나온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조지아주 내 추진되고 있는 전기차 관련 프로젝트만 40개가 넘는다”며 “여기서 생겨난 일자리만 2만8천여 개, 투입이 확정된 투자액만 28조원에 달한다. 이미 대규모 현지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 교체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