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과 비교하면 3분의 1토막, 中 벤처투자 시장 ‘사실상 마비’
1월~10월 중국 벤처투자 전년 동기 대비 30% 급감 IPO 제동 걸린 기업 다수, 투자자들은 '뒷걸음' '투자 - 사업 활성화 - 수익' 선순환까지 먼 길
올해 중국 내 VC 투자금이 전년 대비 3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회복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과의 긴장 관계가 유지되며 글로벌 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모양새다. 중국은 지난해에도 벤처기업 투자액 50% 급감을 경험한 바 있어 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전 세계 전체 벤처투자의 15.8% 차지, 하지만?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24일(현지 시각) 보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중국 내 VC 투자금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29.1% 줄어든 346억 달러(약 45조1,737억원)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투자 건수도 15.7% 줄어든 2,675건을 기록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데이터 분석기관 글로벌데이터(GlobalData)는 중국 내 벤처 투자금이 급감한 요인으로 수년 동안 이어진 중국 정부의 엄격한 코로나19 억제 정책과 미국의 대중국 투자 제재 등 지정학적 긴장 지속 등을 꼽았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지난 6월 미국 대형 VC 세쿼이아캐피탈(Sequoia Capital)이 글로벌 사업부를 미국과 중국, 인도 등 3개 독립 기업으로 분할했다는 점을 들었다. 당시 세쿼이아는 사업체 분리의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미-중 갈등이 크게 작용했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미국 정부가 자국 자본을 중국의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주력 분야에 투자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다.
글로벌데이터는 “중국의 벤처투자 감소는 글로벌 고금리 기조 지속, 경기침체와 맞물린 전 세계적 현상”이라며 “중국은 장기화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VC 시장에서 미국 다음으로 아태지역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올해 중국 내 벤처투자는 건수 기준 전 세계 전체 벤처투자의 15.8%를 차지하며, 투자금으로는 17.1%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벤처투자가 가장 활성화된 미국의 벤처투자는 거래 건수와 거래 규모 기준 각각 35%, 48.8%를 기록했다.
글로벌 투자자의 중국 외면에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중국의 벤처투자 급감이 지난해부터 이어져 왔다는 점은 이같은 일각의 긍정적 해석을 무색하게 만든다. 중국 터우중 연구소에 다르면 지난해 중국 내 벤처투자는 총 9,695건으로, 전년 대비 48.6% 감소한 1,548억 달러(약 202조4,164억원)의 투자액을 기록했다. 2021년에는 1만1,561건의 계약을 통해 3,015억 달러(약 394조2,414억원)가 벤처 업계에 투입된 바 있다.
터우중 연구소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중국 기업 투자 회피 심리 확대와 중국 정부의 규제 정책이 맞물려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과거 공격적으로 중국에 투자했던 다수의 미국 기관투자자가 미중 갈등 심화를 이유로 중국 핵심 산업에 투자를 꺼리게 됐고, 중국 정부가 교육, 게임, 인터넷 플랫폼 등 특정 산업을 강도 높게 제재하는 일이 이어지며 투자금 회수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디디추싱과 앤트파이낸셜 등 일부 기업의 상장 과정에서 발생한 정부와의 갈등 상황도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들 기업은 당국의 강력한 견제에 증시 입성 직후 스스로 상장 폐지를 결정하거나 상장이 사실상 무산됐다.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VC 입장에서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메이화VC의 우스춘 파트너는 “벤처투자자들이 투자에 한층 더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고, 투자 시장이 전반적으로 얼어붙었다”며 “지금 중국 벤처투자 업계는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엑시트까지 20~30년, 누가 중국에 발 들일까
일부 전문가는 중국 벤처투자 업계가 사실상 ‘마비’ 상태라고 지적한다. 자금의 유입 후 일정 기간 경과 후 그 이상의 수익으로 반환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같은 현금 엑시트가 이뤄지지 않으며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자본시장 분석기관 프레킨에 따르면 2015년에서 2020년 사이 설립된 미국 달러 표시 중국 초기 벤처펀드 중 투자자들에게 투자금 이상의 수익을 안긴 펀드는 4개에 불과했다.
대기업 및 중견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위험·고성장 투자인 벤처투자는 엑시트를 통한 이익 실현을 위해 단행되는데, 이익 실현은 주로 IPO와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중국 정부가 특정 산업을 겨냥한 강도 높은 규제를 이어오면서 해당 분야에 속한 다수의 기업이 IPO와 M&A에 제동이 걸렸다. 자금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지갑을 닫은 셈이다.
이와 관련해 루벤 라이 프레킨 중국 민간 자본 담당 부사장은 “중국 내에서 지금 IPO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많지 않다”고 진단하며 “자금조달 기간이 무기한 연장되면서 기존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를 예상보다 더 오래 보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중국 VC가 투자금을 현금화하는 추세를 살폈을 때 외부 자본이 중국에서 엑시트 하기까지는 적어도 20~30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