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조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작정 미국 따라 금리 내리긴 어려워, 치솟은 가계대출도 부담”
미 연준, 12월 FOMC 점도표서 내년 말 정책금리 4.6% 전망 한은 “충분히 장기간 긴축 기조를 이어갈 것, 현 정책에 변화 없어” 다만, 한은 제동에도 국내 금융시장선 금리 인하 기대감 확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내년도 금리 인하를 시사하면서 한국은행도 내년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에선 주요 국채금리와 주택담보대출 등 대출금리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한은은 현재 기준금리 조기 인하와 관련해 논의하지 않고 있다며 시장의 추측을 일축했다. 연준의 통화정책 외에 국내외 경제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향후 정책금리를 수정하겠다는 입장도 고수했다.
한은, 기자간담회 통해 미국 12월 FOMC 입장 발표
14일 한은은 ‘12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 미 연준의 통화정책회의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앞서 연준은 12~13일(현지 시간) FOMC에서 정책금리를 연 5.25~5.50%로 동결했다. 3회 연속 금리 동결로, 사실상 금리 인상 사이클이 종료됐음을 시사한 셈이다.
여기에 연준 위원들의 내년도 금리 전망을 담은 점도표에서 내년도 정책금리 인하가 예고된 것도 금리 인하 기대감을 키웠다. FOMC 참석 위원들은 내년 말 미국의 최종금리 수준을 4.6%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 9월 점도표 금리 전망치(5.1%)보다 낮은 수준으로, 전망대로라면 내년 중 최소 세 차례 금리 인하가 단행될 수 있다.
연준이 통화정책 전환을 시사하자 국내 시장에선 한은도 이에 맞춰 기준금리를 낮출 거란 추측이 나온다. 그러나 한은은 현재 금융통화위원회에선 기준금리 인하 논의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내년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충분히 장기간 긴축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현 정책에 변화는 없다”며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이 변한다고 해서 우리(한은) 통화정책과 기계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연준의 통화정책 외에도 국내외 경제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향후 정책금리를 수정하겠다는 것이 한은의 입장이다. 이 부총재보는 “(정책금리 결정은) 연준의 변화가 국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더불어 국내 성장과 물가 전망이 어떻게 될지, 가계부채와 같은 금융 안정상황이 어떻게 될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며 “시장 기대의 변화를 여러 측면에서 파악하고, 기대 변화가 물가나 가계대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점검하면서 시장과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어난 가계부채, 국내 통화정책 전환 ‘걸림돌’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일축한 배경으론 올 초 대비 크게 불어난 가계부채가 거론된다. 기준금리가 낮아질 경우 금융시장이 지금보다 활기를 띠면서 대출 수요를 자극하고 가계부채 규모가 더 늘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약 1,092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11월 한 달간 주담대가 5조8,000억원 확대된 영향이다. 또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빠르게 상승 중인 점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한은의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대출 연체율 장기평균(2012~2019년 중)은 1.27%, 기업대출 연체율 장기평균(2009~2019년 중)은 1.81%로, 부동산 경기 부진 등의 영향으로 건설 및 부동산업의 연체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이에 한은은 고금리 기조가 계속되는 동안 가계와 기업 모두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부총재보는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확대되고 기업대출 증가세까지 이어지면서 민간 부문 중심의 매크로 레버리지(총부채) 누증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며 “가계는 근로소득이 감소하고 이자비용 증가폭은 커지는 추세 속에서 부채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하고, 기업들은 나름대로 유동성 확보 노력, 자본 확충 등의 자구 노력을 하면서 고금리 환경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채권시장 주요 국채 금리 ‘급락’, 7개월 만의 최저치
한편 국내 금융시장에선 미국의 내년 금리 인하 기대감을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이날 오전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일 대비 0.23%p 급락한 연 3.235%로 집계되며 약 7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또 국고채 5년물과 10년물 금리도 각각 전날 대비 0.212%p 0.193%p 내렸다.
한국 국채시장의 수익률 내림세는 미 국채시장의 영향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은에 따르면 9~11월 미 10년물이 한국 국채금리에 미친 영향은 56%로 추정된다. 14일(현지 시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3.92%로 지난 8월 이후 처음으로 4%를 하회했다.
주담대 금리의 하락도 눈에 띈다. 이날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주담대 고정형(혼합형) 금리는 연 3.66~5.997%로, 하단이 3% 중반대까지 낮아졌고, 상단은 6% 아래로 떨어졌다. 주담대 변동금리의 경우 연 4.65~7.017% 수준으로, 하단 기준 고정금리보다 0.99%p가량 높다.
전문가들은 향후 대출금리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 10월 은행권이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산금리를 올린 영향이 지속될 경우 대출금리 하락이 제약될 수도 있지만, 향후 장기 지표금리 급락 영향이 시차를 두고 반영돼 고정금리형 주담대를 중심으로 하락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도 “연준이 예상보다 빠르게 인플레이션이 개선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내년 금리 인하의 문이 열렸다”며 “국내서도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전망이 우세한 만큼 은행권 금리도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