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칼자루 쥔 ‘공정위’, 4대 은행 ‘담보대출 담합 의혹’ 제재 착수
공정위 “은행 간 거래 조건 공유해 고객에게 유리한 대출 조건 막았다” 은행 측 “부당 이익 얻기 위해서가 아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공유” 대출금리 담합 의혹 근거는 이번에도 없어, ‘총선용 압박’이란 지적도
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시중은행이 대출 시 거래 조건을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담합했다는 혐의에 대해 제재를 검토 중이다. 공정거래법에선 담합과 관련한 최대 과징금을 관련 매출의 20%로 규정하고 있는 가운데 제재안 확정 시 역대 최고액인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은행권은 “실제 대출은 금리 수준이나 거래 조건 등 각 사 방침에 따라 정해지고, 은행 간 거래 정보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참고 용도로만 사용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 4대 은행에 담합 의혹 지적한 심사보고서 발송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는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에 담합 혐의로 검찰의 공소장 격인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에는 과징금 부과와 함께 법인 검찰 고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포함됐으며, 조사 대상에 포함됐던 NH농협은행과 IBK기업은행은 발송 대상에서 제외됐다.
공정위가 문제로 지적한 건 이들 은행이 담보 가치 대비 대출금의 비율인 담보인정비율(LTV) 정보를 서로 교환한 행위다. 공정위는 은행들이 수년간 정부가 정한 LTV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 비규제 지역의 주택, 건물, 공장 등의 LTV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LTV를 정상적인 상황보다 낮게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들 은행의 LTV는 NH농협과 기업은행 등 정보 교환에 가담하지 않은 은행들의 LTV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또한 공정위는 이들 은행이 7,000여 개에 달하는 LTV 시트를 은행별로 나눠 정리하는 작업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담보의 종류 및 지역별로 나뉜 이 시트를 통해 특정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할 때 자사의 대출 한도가 경쟁사에 비해 많은지 적은지 등을 파악해 대출 한도를 조정했다. 이를테면 경쟁사에 비해 대출을 내줄 수 있는 한도에 여유가 있다면 한도를 낮춰 설정하는 식이다. 이 경우 고객이 받는 대출액이 그만큼 줄어드는 만큼 소비자 후생도 감소하게 된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2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금융 분야 경쟁을 촉진할 대책을 마련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 이후 본격화됐다. 공정위는 향후 4대 은행들의 의견 등을 수렴한 뒤 제재 여부를 논의할 심의 일정을 결정할 방침이다.
제재안 확정 시 과징금 수천억원 달할 전망, 과징금 규모론 ‘역대 최고’
제재안이 확정될 경우 2021년 12월 제도 도입 이후 정보교환도 담합으로 인정하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아직 과징금 액수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공정위가 은행들의 담합 행위를 심각하게 평가한 데 따라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공정거래법에서는 담합과 관련한 최대 과징금을 관련 매출의 20%로 규정하고 있다.
만약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이 부과된다면 현재까지 금융당국이 은행 등 금융업에 부과한 과징금액의 최고액이 된다. 금융당국은 과거 통화스왑 입찰 담합이나 조단위 불법 외화송금 등의 위법 사례에 대해 대체로 수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해 왔다. 지난해 장기간 고의로 불법공매도를 저지른 BNP파리바와 HSBC에 각 100억원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역대 최고액이며, 이전 과징금액 최고액은 38억원으로 알려졌다.
다만 은행들은 담보대출 담합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반박하고 있다. 기업대출은 금리 수준이나 거래 조건 등 사내 방침에 따라 정해지고, LTV 시트는 참고 정도로 사용하는데 이걸 담합으로 보는 건 억울하다는 것이다. 특히 은행권은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이 아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공유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 은행 업계 관계자는 “가계대출과 달리 기업대출은 LTV 조건만으로 대출을 내주는 시장이 아니다”라며 “LTV 정보 공유가 실제 대출 금리와 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을 은행권이 적극 소명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도 여러 번 담합 의혹 조사했으나 별 소득 없이 끝나기도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2월 윤석열 대통령 지시 아래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과 IBK기업은행 등 은행권의 담합 혐의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대출금리 산정 과정에서 은행 간 담합이 있었는지를 이해관계인에 대한 진술조사와 함께 현장조사를 벌였지만, 결국 담합 근거를 찾지 못하고 ‘먼지털기식 조사’로 마무리됐다. 이보다 앞선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5대 은행과 SC제일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담합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당시 조사 과정에서 은행들은 채권시장의 시장 상황, 기준금리와 은행채 금리의 등락 등의 영향으로 은행 간 금리가 비슷한 흐름을 보일 수는 있지만, 담합은 아니라는 입장을 소명해 왔다. 실제로 은행의 개별 신용평가와 금리 산정 기준은 각 은행의 영업 전략에 따른 대외비에 속한다. 역시나 이번 심사보고서에도 앞서 제기됐던 대출금리 담합 의혹에 대한 근거가 담기지 않자, 은행권에선 공정위가 대출금리 담합 근거를 찾지 못해 LTV 정보 공유를 담합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아울러 공정위의 직권조사가 담합 적발보다는 금융권 압박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K대 글로벌금융학과 관계자는 “총선이 가까워지자 정부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것 같다”며 “이번 심사보고서도 이전 조사와 마찬가지로 담합 적발보다는 압박 수단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