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파산 신청’ 급증, “금리인하 시점 지연 시 올해도 늘어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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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파산 45만4,000건 넘어, 사업구조조정 신청 건수도 전년 대비 72% 증가
‘위워크, 버드’ 등 기업 가치 10억 달러 넘던 유니콘 기업도 줄줄이 파산
최근엔 ‘금리인하 기대감’ 재조정되는 분위기, 올해도 파산 신청 늘어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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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미국의 법인 및 개인들의 파산 신청이 크게 늘었다. 지난 2년간 지속된 고금리 기조 아래 대출기준이 크게 강화됨에 따라 기업과 가계 재정이 악화한 영향이다. 중소형 업체들뿐 아니라 위워크, 버드 등 유니콘 기업들도 파산을 면치 못한 가운데, 올해 역시 미국의 기업 및 개인들의 파산 신청이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파산 신청 건수 전년 대비 18% 증가

3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이 파산정보 제공업체 에픽(Epiq) AACER의 보고서를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법인의 파산 신청 건수는 전년(37만8,390건)보다 18% 늘어난 44만5,186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은 전월(3만7,860건)보다 3,413건 감소한 3만4,447건로 집계됐지만, 전년 동기 대비론 16%나 증가했다.

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른 법인 파산보호 신청도 전년의 3,819건보다 72% 급증한 6,569건으로 나타났다. 챕터11은 자력으로 회생이 어려운 기업이 파산법원의 감독으로 구조조정 절차를 진행해 기업회생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조항이다. 아울러 개인 파산 신청도 전년도(36만6,911건)에서 18% 증가한 총 41만9,559건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기간 쏟아졌던 경기 부양책이 축소되면서 강화된 기업과 개인의 대출기준이 파산 신청 급증으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22년 3월부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11차례 인상하면서 급격히 높아진 고금리 역시 경제 주체의 금융여건을 크게 위축시킨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5.25~5.5%로 22년 만에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대표 유니콘 기업도 피하지 못한 위기

최근 파산한 기업들 중에는 한때 기업 가치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이상의 스타트업을 일컫는 유니콘 기업들도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글로벌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다. 일찍이 공유 오피스 돌풍을 일으켰던 위워크는 2019년 초 주가가 최고점에 이르며 당시 시가총액이 470억 달러(약 62조원)를 웃돌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과거 수년간 지속된 경영 악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파산하면서 주가는 휴지 조각이 됐다.

위워크의 몰락은 2019년 자금을 조달하고자 처음 뉴욕증시 상장에 도전했던 것이 실패하면서 시작됐다. 상장 실패 이후 위워크의 공동 창업자 애덤 뉴먼이 축출되는 등 주요 경영진이 이탈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 아래 놓이며 거듭 위기에 처했다. 팬데믹 기간 근로자들의 재택근무 비율이 늘어나자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고, 신규 사업들마저도 실패로 끝을 맺으며 몰락했다.

공유 스쿠터 업계 선구자로 꼽혀온 버드도 지난해 파산 신청을 유니콘 기업 중 하나다. 2017년 스타트업 업계에 불었던 공유 경제 열풍에 힘입어 단기간 내 빠른 성장을 이뤄낸 버드는 실리콘밸리의 주류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글로벌 350개 도시로 전기 스쿠터 공유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한때 기업 가치가 최대 25억 달러(약 3조3,000억원)로 평가되기도 했지만, 팬데믹 당시 감염 우려로 제품을 공유해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에 사업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2021년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상장을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섰지만, 상장 후 주가가 폭락했다. 결국 지난해 9월 상장 폐지됐으며 그로부터 3개월 뒤 파산을 신청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3월에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다. 실리콘밸리의 주요 자금조달원이었던 SVB의 파산 여파는 관련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의 연쇄 파산으로 이어졌다. 이미 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정책이 시작된 2022년 이후 기업들의 재정 여건이 크게 악화한 상태였고, 여기에 SVB 붕괴를 막기 위해 당국이 은행권 대출 규제마저 추가로 강화한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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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업은행 총 대출 연체율(블루) 및 전분기 대비 변화율(레드)/출처=Fred

견조한 美 경기 지표가 되려 파산율 높일 수도

문제는 올해도 파산 신청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는 점이다. 파산 신청 건수가 아직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75만7,816건에는 크게 못 미치고 있긴 하나, 제한된 금융여건이 지속된다면 파산율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픽AACER의 마이클 헌터 부사장은 “예상대로 2023년 신규 파산 신청 건수는 전년에 비해 증가했다”며 “팬데믹 지원책의 고갈과, 자금 조달 비용 증가, 높아진 금리, 신용카드와 자동차 대출 등에서의 연체율 상승, 사상 최고 수준의 가계 부채 등을 고려할 때 2024년에도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법인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인 파산 증가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미국의 가계부채는 이미 지난해 3분기 말 17조3,000억 달러(약 2경2,862조원)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으며, 여기에 모기지 금리와 신용가드 연체율마저 지속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30년 만기 고정 모기지 금리가 8%에 근접한 수준까지 치솟으며 2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같은 기간 신용카드 연체율도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선 약 3%로 지속 상승 중이다. 미국파산협회(ABI) 관계자는 “지난 2010년 주택소유자에 대한 파산이 70% 이상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크게 줄었다”며 “다만 금융위기 때 주택 가치가 급격히 하락한 것을 고려하면 지금은 그렇지 않아 개인 파산은 주로 세입자일 가능성이 3~4배 정도 높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학자금 대출 규모 또한 크게 늘었는데, 파산 신청이 증가할 경우 학자금 대출이 면제되지 않을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최근 연준의 금리인하 시작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점도 파산율을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주 미국의 고용시장이 여전히 견조하다는 지표가 발표된 이후 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재조정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기업과 개인의 파산율은 시장 금리에 영향을 주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아직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로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연준의 예상보다 경기가 잘 버텨준다면 연준이 고금리 정책을 빠르게 후퇴할 필요가 없어지고, 이에 따라 시장에선 고금리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