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대중 수출 늘자마자’ 다시 시작된 美 수출통제 입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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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반도체·대중국 수출 나란히 호조, 반도체 업황 회복 결과인가
"우리만 규제 시달린다" 다자 수출통제 제안한 미국반도체협회
최대 수출국 잃으면 어쩌나,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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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반도체 수출과 대중 수출이 동시에 ‘호조’를 보인 가운데, 미국의 수출통제 입김이 재차 거세지고 있다. 꾸준히 약세를 보이던 반도체·대중 수출이 동반 상승세를 보이자, 한동안 유예됐던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린 것이다.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에는 다시금 싸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1월 반도체·대중 수출 동시에 상승세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4년 1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546억9,000만 달러(약 72조5,134억원)로, 전년 동월 대비 18% 급성장했다. 월 수출 증가율이 두 자릿수대까지 성장한 것은 2022년 5월(21.4%) 이후 20개월 만의 일이다. 수입은 7.8% 감소한 543억9,000만 달러, 무역수지는 3억 달러(약 3,978억원)로 집계됐다. 수출액이 급증하고 무역수지가 8개월 연속 흑자를 유지하며 수출 회복세가 점차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56.2% 급증했다는 점이다. 이는 2017년 12월(64.9%)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중국으로의 수출이 107억 달러(약 14조1,850억원)로 전년 동월 대비 16.1% 늘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2022년 6월부터 19개월째 감소세를 이어오던 대중국 수출이 20개월 만에 상승 전환한 것이다. 반도체 시장이 본격적인 업황 회복기를 맞이한 가운데, 중국으로의 반도체 장비 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진 것으로 풀이된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세계적 고금리 기조 장기화와 미·중 경쟁,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위기 등 우리 수출을 둘러싼 대외 여건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중국 수출이 플러스로 전환해 수출 플러스, 무역수지 흑자, 반도체 수출 플러스 등 수출 회복의 네 가지 퍼즐이 완벽히 맞춰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완연한 회복세가 올해 최대 수출 실적이라는 도전적인 목표 달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는 범부처 정책 역량을 결집해 총력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SIA “한국도 반도체 수출 통제해라” 날벼락

산업통상자원부가 수출입 동향을 발표한 날,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동맹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을 주장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미국 정부 관보에 따르면 SIA는 지난 17일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에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강도가 동맹국 대비 높으며, 이로 인해 미국 기업들이 경쟁에서 불리한 입지에 놓였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한국, 일본, 대만 등 동맹국 경쟁사들은 품목별 수출통제(list-based control) 대상이 아닌 장비·서비스를 중국의 첨단 반도체 공장에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지만, 미국 기업들은 수출통제 대상으로 명시하지 않은 품목에서도 제한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SIA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동맹국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동맹국들이 미국과 동일한 품목을 통제하고 동일한 허가 절차를 밟는, 이른바 ‘다자 수출통제’를 제안한 것이다. 이는 최근 미국 정부가 밝힌 수출 통제 방안과 유사한 형태의 발상이다. 지난달 12일 엘렌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한국 전략물자관리원이 워싱턴DC에서 개최한 행사에 참석, “첨단 기술이 적국에 유출되지 않도록 한국 등 관련 기술을 보유한 동맹과 새로운 다자 수출통제 체제를 만드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국내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는 비교적 그 강도가 낮은 편이었다. 한국의 반도체 장비는 시장 선도국 대비 기술 수준이 낮아 대중 수출 시에도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은 국내 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에도 비교적 수용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지난해 10월에는 국내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목록에 등재, 대중 수출통제 유예 기간을 무기한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 수출과 반도체 수출이 동시에 급증한 1일, 미국의 다자 수출통제 위협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업계의 불안감이 급격히 고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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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국 수출 막히면 끝이다” 업계는 울상

특히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들은 반도체 업황 회복의 기쁨도 채 누리지 못한 채 긴장 상태에 빠졌다. ‘반도체 장비’는 중국 반도체 시장의 두드러지는 약점으로 꼽힌다.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는 대중국 수출을 통해 이 같은 중국 시장의 ‘빈틈’을 메꾸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2022년 기준 국내 전체 반도체 장비 수출액(24억4,650만 달러·약 3조2,443억원) 중 대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자그마치 56%(13억7,082만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이 본격화한 이후 상황이 뒤집혔다. 네덜란드·일본 등에서 생산된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입할 수 없게 된 중국이 ‘장비 국산화’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베이팡화창(Naura), 중웨이반도체(AMEC) 등 중국 반도체 장비 기업들은 정부의 막대한 투자와 연구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기술력을 확보해 나갔고, 2022년 기준 국산화율을 35%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기술 수준이 비교적 낮아 ‘대체재’ 성격을 띠던 국내 반도체 장비의 설 자리는 점차 좁아져 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SIA의 주장대로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이 본격화할 경우,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 전반이 줄도산을 맞이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우려가 제기된다. 국내 업계에는 최대 수출로 차단의 충격을 견딜 만한 ‘체력’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졸지에 생사의 갈림길로 내몰린 시장은 날아오는 미·중 반도체 갈등의 ‘유탄’을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