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간부채 14분기째 위험 수준, 짙어지는 금융위기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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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기업 빚 14분기째 ‘빨간불’, 일본 이어 2위
민간부채 GDP 2.26배, 신용격차는 14분기째 위험 
가계부채 터지면 외환위기 때 보다 심각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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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합산한 민간신용(가계·기업부채) 규모가 14분기째 위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72년 관련 통계 작성 후 최장기간이다. 앞서 1980년대 초반에도 10%p를 넘은 적이 두 차례 있긴 하나,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속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과도한 민간부채가 투자와 성장의 발목을 잡으며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민간부채 위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경우 외환위기에 맞먹는 파괴력이 있을 것이란 경계감도 나온다.

‘신용 갭’ 10%P 이상 경보 단계, 1972년 이후 최장기간

6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한국의 신용 갭은 10.5%포인트(p)를 기록했다. 한국의 신용 갭은 지난 2020년 2분기를 시작으로 줄곧 10%p를 웃돌고 있다. 이는 1972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로 최장기간이다. 신용 갭은 부채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지표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장기적 추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는지를 나타낸다. 민간신용 비율이 과거 추세보다 빠르게 상승할수록 신용 갭은 벌어지는데 BIS는 이 지표를 잠재적인 국가 신용위기를 가늠하는 데 활용한다. BIS는 신용 갭이 10%p를 초과하면 ‘경보’, 2~10%p면 ‘주의’, 2%p 미만이면 ‘보통’ 단계로 각각 분류한다.

한국의 신용 갭 추이를 보면 지난 2017년 4분기 말(-2.9%p) 이후 상승세로 전환해 2019년 2분기 말(3.0%p) ‘주의’ 단계로 분류됐다. 이후 2020년 2분기 말 12.9%p까지 가파르게 치솟으며 10%p 위험 수위인 ‘경보’ 단계에 다다랐다. 2021년 3분기 말(17.4%p)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뒤 2022년 3분기 말(16.8%p) 이후로는 하락세를 그리고 있으나 여전히 10%p를 넘는 위험 수위의 단계에 있다. 과거 한국의 신용 갭이 10%p 수준을 넘나든 기간은 매우 드물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인 1997년 4분기 말(13.2%p)부터 1998년 3분기 말(10.5%p)까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분기 말(10.7%p)부터 2009년 4분기 말(11.2%p)까지가 전부였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BIS 조사 대상국 중 지난해 3분기 말 신용 갭이 10%p를 초과한 국가는 BIS 조사 대상 44개국 중 한국과 일본(13.5%p)이 유일했다. 태국(8.0%p), 사우디아라비아(2.2%p), 아르헨티나(1.5%p), 독일(0.0%) 등의 나라를 제외하곤 모두 마이너스 수준의 신용 갭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의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지난해 3분기 말 225.5%에 달하며 2020년 1분기 말(200.0%) 이후 15분기째 200%를 웃돌고 있는 점이 반영된 영향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1.5%,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24.0%로 각각 집계됐다.

가계·기업부채에 정부의 부채까지 더한 한국의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3분기 말 5,988조1,91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29조8,614억원 더 늘었다.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4분기 말 기준으로 사상 처음으로 6,000조원(약 4조5,000억 달러)을 돌파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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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회색 코뿔소 ‘가계부채’, 은행 부실화 가능성↑

문제는 민간신용 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은행 부실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의 지난해 말 기준 추정손실은 총 1조9,660억원(약 14억7,000만 달러)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48.8% 급증한 것으로 역대 최대치다. 이는 고금리와 경기 침체 장기화의 여파에 따른 연체율 상승으로 사실상 대출 채권을 회수하기 어려워진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권은 리스크 관리에 고삐를 바짝 죄는 분위기다. △취약 차주에 대한 조기 신용 평가 △고위험 차주 선별 △가계대출에 대한 관리 강화 △부실기업 대출에 대한 조속한 정리 등 필요한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아울러 4대 금융그룹은 이미 지난해 연간 총 8조9,931억원에 달하는 대손충당금을 적립해 2022년보다 무려 73.7% 늘린 상태다.

특히 가계부채의 부실은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절반은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부동산 경기가 일부 되살아나면서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주담대는 전년 대비 51조원이나 증가했는데, 주택 가격 하락과 금리에 민감한 주담대의 특성상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대표적인 ‘회색 코뿔소’로 꼽힌다.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파급력이 크지만 쉽게 간과하게 되는 위험 요인이란 의미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도 큰 문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부동산 PF 대출잔액 130조원 가운데 최악의 경우 70조원이 부실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PF 사업장 옥석 가리기 등 구조조정에 착수한다고 밝혔지만 이것 만으로 부실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1,000조원을 웃도는 자영업자 대출 중 40조원이 부실로 내몰릴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진단도 불안을 키우고 있다.

금융위기 다시 도래할 수도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IMF 사태나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부동산 PF나 가계부채가 정보에 민감하지 않은 채무증권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언제든 위기 발생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통상 증권의 가치에 대해 분석해 정보를 생산하는 작업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담보나 보증을 끼워 채무 증권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통해 대규모의 채무증권 거래도 손쉽게 가능하다. 하지만 이같은 채무증권의 장점은 금융위기에 있어선 오히려 약점이 된다. 앞서 겪었던 모든 금융위기가 채무증권 시장의 위기와 함께 발생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부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이미 고강도의 긴축 정책을 통해 디레버리징에 성공했지만,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렇다 할 디레버리징 과정을 거친 적이 없어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오히려 커졌다. 이는 부동산과 가계대출에 의존해 온 경제성장 방식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은 가계부채를 줄이고 정부가 빚을 떠안는 방식을 취한 반면에 우리나라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경기 부양책으로 사용하면서 정부 대신 가계가 부채를 늘리게 된 것이다. 결국 역대 정부 모두 영끌, 빚투, 갭투자 등으로 대변되는 부채 공화국의 악순환을 만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