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금고 현실화 하나” 새마을금고 연체율 경고등, 행안부는 뒷북 진화
3월 말 기준 연체율 8% 육박, 새마을금고 건전성 '비상'
행안부, 손실 보더라도 부실채권 매각해 연체율 낮춰라
애초 부실 키운 건 행안부, 근본 문제 방치로 사태 악화
건전성에 비상이 걸린 새마을금고에 행정안전부가 부실채권 매각과 관련해 특별 지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 당시 정부가 나서 위기를 봉합했음에도 최근 연체율이 다시 치솟자 황급히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그동안 근본적인 문제를 방치한 채 사태를 악화시킨 행안부가 늑장 대응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 새마을금고 NPL 관련 특별지시
1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행안부는 경영개선조치를 받은 일부 금고를 대상으로 부실채권(NPL)을 매각하고 건전대출을 늘려 연체율을 낮추라는 내용의 특별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채권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손실을 보더라도 연체율을 관리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취지로 읽힌다. 이에 대해 행안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 같은 정리 속도로는 올해 말 적자 금고가 많이 생길 수 있다”며 “당장은 손실을 보겠지만 건전성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총 12조6,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새마을금고는 앞서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와 올해 상반기 내로 2,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 매각을 합의하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새마을금고는 1조원 수준의 부실채권 매각을 희망했지만 캠코 역시 저축은행의 부실채권 인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적정 규모를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능한 여력 범위 내에서 새마을금고 부실채권을 매입하기로 했고 현재 양사 간 매각방식과 구체적인 매각시점을 놓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새마을금고 자체적인 여력을 통한 정상화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진행된 새마을금고 부실채권 입찰에서 케이클라비스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각 풀에서 최고 가격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원금에 해당하는 OPB(미상환 원금잔액) 기준 약 2,900억원 규모 부실채권이 대상으로 22개 단위금고와 3개 공동대출의 부실여신이다.
또한 손자회사인 MCI대부에 이번 2분기에만 부실채권 1조원을 더 매각할 방침이다. 앞서 지난 한 해에 걸쳐 모두 2조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매각했는데, 올해는 반년 만에 1조5,000억원가량을 매각한 것이다. 개별 새마을금고 차원의 부실채권 매각이 이뤄지면 전체 자산에서 부실자산이 줄어드는 만큼 자산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
새마을금고 연체율 8% 임박, 뱅크런 이후 다시 악화
새마을금고가 부실채권 매각을 서두르는 이유는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침체 여파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공동대출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의 부실화가 연체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5.07%였던 새마을금고 연체율은 올해 들어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지난 1월 6%대로 오른 데 이어 2월 7%대에 진입하더니 3월에는 7% 중반까지 상승했다. 지난해 뱅크런 사태 이후 8개월 만에 연체율이 다시 악화한 것이다.
아울러 부실채권 매각이 실적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수익성 개선을 위한 조치기도 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국 새마을금고 1,288곳 가운데 적자 상태에 빠진 금고는 1년 만에 10배가량 증가했고, 지난해 경영 공시를 보면 연간 당기순손실을 낸 금고는 431곳에 달한다. 금고 3곳 중 1곳이 적자를 냈다는 의미다.
사실상 독립된 법인인 새마을금고의 각 지점은 특정 금고에서 부실이 발생해도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여러 금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부실이 터져 나올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업계에서 ‘깡통 금고’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연체율이 높은 금고는 기업 대출의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부동산 관련 대출로 파악됐다. 연체율이 22.27%에 달하는 A금고는 전체 대출에서 기업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87.56%였다. 해당 금고의 고정여신비율은 무려 24.37%로 금융당국 권고치(8% 이하)의 세 배가 넘는다.
사채업자와 짜고 1,500억원 불법대출, 행안부는 “몰랐다”
이렇다 보니 부동산 PF 부실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새마을금고에 연일 경고등이 울리고 있다. 지난해 뱅크런 사태를 겪은 이후 정부 차원에서 건전성 개선에 나섰음에도 이번에 파악된 개별 금고 실태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느슨한 관리·감독, 기준 없는 무리한 대출, 허술한 내부통제, 경영진의 비전문성 등으로 빚어진 총체적 난국이란 평이다.
새마을금고의 병폐는 무엇보다 이사장 중심의 지배구조에서 비롯된 ‘깜깜이 대출’에 있다.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대출 만기를 연장하거나 이자를 탕감하는 식으로 억눌러왔던 것이다. 새마을금고의 불법 또는 편법 대출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후보 자녀를 대상으로 한 편법 대출과 부동산 PF 부실 대출, 사모펀드(PEF) 출자 분야까지 새마을금고는 비리 종합세트라는 오명을 쓴 지 오래다. 또한 각 지역 금고가 경영진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무리하게 대출해 주는 관행으로 지적 받는가 하면 임직원의 횡령·배임 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6월에는 서울 중구 청구동금고에서 1,500억원대 부당 대출이 적발됐는데 조사 결과, 2022년 조직폭력배 출신의 사채업자 지시에 따라 새마을금고 임원과 신탁회사 직원 등이 결탁, 7억원 건물을 12억5,000만원으로 고평가해 대출을 실행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행안부는 이러한 사실을 1년 넘게 모르다가 지난해 5월경에야 해당 직원을 파면하는 등 조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만의 ‘배당 잔치’, 도덕적 해이 논란
업계에서는 유사 사고가 빈발하고 있음에도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새마을금고 시스템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새마을금고의 주업무는 금융이지만 금융위원회나 금감원이 아닌 행안부의 감독을 받는다. 상호금융권에 속해 있음에도 유일하게 금융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1983년 새마을금고법을 제정할 당시 재무부에서 내무부(현 행안부)로 권한이 넘어간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인데, 이제는 수신 규모만 260조원에 달하는 거대 금융기관으로 거듭난 만큼 전문성 있는 금융당국에 감독을 맡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비판의 배경에는 행안부가 방치한 새마을금고의 ‘배당잔치’가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새마을금고의 평균 출자 배당률은 4.4%로 나타났다. 새마을금고의 출자금 총액은 10조9,000억원으로, 이번에 약 4,800억원이 배당금으로 지급됐다.
지난해 뱅크런 사태로 막대한 정부 자금을 수혈받고, 또 부실채권을 팔고 있는 상황에서, 작년 당기순이익(860억원)의 5배에 달하는 배당금을 출자자들에게 뿌린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의적립금이 한 푼도 없거나 적자를 낸 금고에까지 ‘퍼주기 배당’을 단행했다. 이에 업계에선 모럴해저드 비판이 제기됐지만 행안부는 그간 쌓아 놓은 임의적립금을 사용한 것이라 문제없다며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행안부의 해명을 두고 모순이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배당으로 무려 5,000억원이 빠져나가면서 새마을금고의 자기자본도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당초 배당 수준을 조정해 충분한 체력을 확보했더라면 이번과 같은 ‘특별 지시’가 불필요할 정도로 부실채권 매각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었을 것이란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