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 페이’ 선 그은 우리금융, 동양·ABL생명 인수로 비은행 계열사 강화 가능할까
비은행 계열사 성장에 힘 쏟기, "우리금융으로선 동양·ABL생명 인수 절실한 상황"
고평가 논란에 롯데손보 인수전 불참, 동양·ABL생명 인수 위한 자금 마련 관건
다자보험 정리 계획 차질 빚은 CSIF, 동양·ABL생명 매각에 속도 붙이나
우리금융지주가 비은행 계열사 성장을 위해 동양·ABL생명 인수합병(M&A)을 타진하고 있지만, 실제 M&A가 이뤄지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우리금융 측의 자금이 부족한 탓이다. 다만 일각에선 다자보험이 ‘본전’을 포기하면서 다소 낮은 가격을 매각가로 제시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당장 보험사 매각이 급한 건 우리금융이 아니라 매도 측이란 이유에서다.
우리금융, 동양·ABL생명 인수 작업 돌입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최근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실사에 착수했다. 우리금융은 임종룡 회장 취임 이래 비은행 부문 강화를 위해 증권사와 보험사 인수를 핵심 과업으로 삼아 왔다. 앞서 한국포스증권 인수로 증권사를 보강한 바 있는 만큼, 보험사만 추가하면 임 회장의 역점 과제는 완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금융은 비은행 비즈니스 침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동양·ABL생명 인수가 절실하다. 업계에 따르면 고금리 장기화 기조 속 우리은행이 연간 2조원대 순이익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우리금융 측 비은행 계열사는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일례로 우리카드와 우리금융캐피탈 순이익은 지난해 1,120억원, 1,280억원으로 전년 대비 930억원(45%), 550억원(30%) 감소했다. 올 1분기엔 우리카드가 290억원, 우리금융캐피탈이 330억원 순이익을 냈다.
우리종합금융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우리종합금융은 지난해 53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바 있으며, 올 1분기에도 순이익 130억원에 그쳤다. 2022년 연간 순이익이 920억원에 달했음을 고려하면 크게 하락한 수준이다.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 인수에 뛰어든 배경이다.
“롯데손보 인수전도 발 뺐는데”, 우리금융 인수 자금 마련 난항 전망
문제는 우리금융이 두 생명보험사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지 여부다. 동양생명의 경우 자산 32조원 규모의 업계 6위 중형 생명보험사로,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동양생명의 실적은 ▲2021년 2,758억원 ▲2022년 970억원 ▲2023년 2,957억원 ▲올 1분기 885억원 수준이다. 자산 규모 32조원의 미래에셋생명이 기록한 올 1분기 순이익 39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정도다.
높은 CSM(계약서비스마진) 규모 덕에 회계상 기업가치도 매우 높게 평가된다. 동양생명의 CSM(2조7,000억원)과 자기자본(2조5,852억원)을 합하면 5조원이 넘고, 중국 다자보험그룹이 소유 중인 75.3%(1억2,156만5,627주)에 대한 가치는 2일 종가(8,450원) 기준 1조원이 조금 넘는다. 이를 고려하면 동양생명의 기업가치는 적어도 1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더군다나 다자보험그룹은 지난 2015년 동양생명을 인수할 당시 5,283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한 바도 있다. 이를 고려하면 다자보험그룹이 동양생명에 투입한 자금은 1조6,000억원대에 달한다. 시장에서 동양생명의 매각가가 1조6,000억원이 넘을 거란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ABL생명 역시 회계상 기업가치를 계산해 보면 규모가 만만치 않다. ABL생명은 17조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12위권 생보사다. 지난해 연간 순이익은 804억원으로 동양생명 대비 수익성은 다소 낮지만, CSM과 자기자본은 각각 8,700억원, 8,983억원으로 총합 1조7,000억원에 달한다. 다자보험그룹이 ABL생명에 투입한 자금도 인수 금액 35억원에 두 차례 유상증자(3,080억원)까지 포함해 총 3,100억원 수준이다. 다자보험그룹이 두 생보사에 투입한 자금을 고려해 ‘본전’ 이상을 찾으려면 양사 매각가가 최소 약 2조원으로 책정돼야 한단 의미다.
그러나 우리금융이 두 생보사 인수에 2조원가량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보통 은행권 금융지주의 출자 여력은 이중레버리지비율과 CET1(보통주자본비율) 등을 고려해 계산하는데, 우리금융의 자본총계와 자회사 출자총액을 대입하면 현재 7조5,000억원가량의 추가 출자가 가능하다. 문제는 CET1이다. 우리금융의 지난해 말 CET1은 11.94%로 금융지주사 목표치인 13~13.5%를 하회하고 있다. 이를 다시 계산해 보면, 우리금융에 남은 자금 여력은 1조8,000억원에 불과하다. 절대적인 자금량이 부족할 수 있단 것이다.
급한 건 CSIF? “다자보험 정리 계획에 두 생보사는 오히려 장애물”
이미 우리금융은 비싼 값에 보험사를 인수하지 않겠단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상태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던 롯데손해보험 인수전에 불참하면서다. 앞서 지난달 28일 우리금융 측은 공시를 통해 “그룹의 비은행 경쟁력 강화 방안의 하나로 롯데손해보험 지분 인수를 검토했지만, 인수를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롯데손보의 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단 게 이유였다.
업계에 따르면 사모펀드 JKL파트너스는 롯데손보 매각가로 3조원대를 희망했다. 반면 우리금융은 거듭 ‘오버 페이(과다 지급)’는 하지 않을 것이라 선을 그었고, 결국 롯데손보 인수는 최종 무산됐다. 업계 일각에서 동양·ABL생명 인수 역시 고평가’논란 아래 무산되는 것 아니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자보험그룹 측이 우리금융에 양보하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단 의견도 적잖이 나온다. 현재 급한 쪽은 매도 측이란 시선에서다. 금융권에 따르면 다자보험그룹의 최대 주주인 중국보험보장기금(CISF)은 올해 말까지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매각한 뒤 내년에 다자보험그룹을 정리할 계획이다. 그러나 생보사 매각이 지연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다자보험그룹은 당초 ABL생명을 지난해 10월 처분한 뒤 올 초 동양생명 매각에 착수할 계획이었으나, 저우궈단 전 대표이사의 배임 혐의 등이 밝혀지면서 6개월간 매각 작업이 전면 중단됐다. 결과적으로 다자보험그룹을 내년 안에 정리하기 위해선 올해 내론 동양·ABL생명을 매각해야 하는데 CSIF 입장에선 두 생보사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매도 측에서 동양·ABL생명을 조속히 처분해야 할 상황이란 건 가격협상 과정에서 (매도 측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고 짚었다.
원매자들이 보험사 M&A를 꺼리면서 보험사 매물이 다수 쌓여 있단 점도 다자보험으로선 악재다. 동양·ABL생명 인수가 무산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그만큼 많단 의미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현시점 매각에 실패할 경우 동양·ABL생명의 가격이 거듭 하락해 본전을 찾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업계를 중심으로 다자보험 측이 우리금융과 적절한 가격 협상을 이룰 수 있단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