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대출에 명예지점장 행세까지 한 손태승 처남, ‘내부통제 부실’에 바람 잘 날 없는 우리금융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부정대출 의혹 확산, 명예지점장 행세 사실 드러나기도
사태 수습 나선 우리금융 "부당한 상사 지시 거부할 수 있는 문화 만들어야"
내부통제 강화 방안으론 '원스트라이크' 제시, 사실상 불시 검사 시사한 셈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친인척이 ‘우리은행 명예지점장’ 명함을 사용하며 홍보대사 노릇을 해온 것으로 나타나면서 업계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부정대출 의혹에 이어 상식에 어긋난 모습을 거듭 노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내 비위 행위가 잇달아 밝혀지자, 우리금융도 대응에 나섰다. 기업 내부 문화를 개선해 부당한 상사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골자다. 다만 시장에선 기업 문화 개선보단 내부통제 강화가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직원들의 횡령 사고와 전 회장 친인척의 부정대출로 내부 감시 체계 부실이 노출된 만큼 이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손태승 처남 우리은행 명예지점장 행세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손 전 회장의 처남 A씨는 우리은행 신도림동금융센터, 선릉금융센터 등에서 명예지점장 행세를 하며 우리은행 홍보 활동에 참여했다. 우리은행 명예지점장은 영업점별로 VIP 고객 중 1명을 선정해 해당 지점과 본점의 홍보대사 역할을 맡기는 제도로, 본점에서 개최하는 사회공헌활동 등에 초청된다.
문제는 A씨가 우리은행이 ‘공식 임명’한 명예지점장이 아니었단 점이다. 우리은행 측 관계자는 “명예지점장 전원 목록을 본점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A씨는 임명 이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A씨는 “해당 지점과 거래를 많이 하니 지점 권한으로 명예지점 명함을 받았다”고 해명했으나, 우리은행은 명예지점장에게 명함을 따로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정대출 논란에 주변 인물들까지 ‘입방아’
A씨의 부정한 행보가 포착되자 우리금융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러잖아도 손 전 회장 친인척 부정대출 건으로 심란한 가운데 추가적인 이슈가 발생한 셈이어서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2020년 4월 3일부터 지난 1월 16일까지 우리은행이 A씨와 관련 있는 법인 및 개인 사업자를 대상으로 454억원(총 23건)에 달하는 대출을 취급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의심이 가는 대출까지 포함하면 총 42건, 616억원에 달하는 대출이 A씨 관련 사업자에게 이뤄졌다고 금감원은 전했다. 특히 지난달 19일 기준 이 대출 가운데 부실이 발생하거나 연체된 건수는 19건(잔액 269억원)에 이르렀다. 조사 결과 28건의 대출에서 심사와 사후관리가 부적정하다는 결과가 도출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의도적인 부정대출이 대규모로 발생했단 의미다.
사건의 개요가 알려지자 우리금융 내에선 부정대출이 손 전 회장의 지시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대출이 실행된 시기가 손 전 회장의 임기와 얼추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손 전 회장은 2018년 12월부터 2023년 3월까지 4년 3개월간 우리금융그룹 회장을 지낸 바 있으며, 회장 직전 2017년 12월부터 2020년 3월까지는 우리은행 은행장을 역임했다.
손 전 회장에 대한 의구심이 더해지면서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우선 A씨는 이전부터 우리금융 인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파워’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여신 관련 부서에 근무 중인 한 직원은 “A씨가 회장(손태승) 이름을 팔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해 여신 부서 다수의 인원이 관련 내용을 손 회장에게 보고까지 한 적이 있다”며 “A씨를 통하면 인사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사내에) 퍼져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내부 상황을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부정대출 사건에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인물은 신도림금융센터장과 선릉금융센터장을 역임했던 B씨다. A씨가 실제 자금 사용자로 의심되는 차주들을 대상으로 대출을 내줄 때 B씨의 주도로 대출이 실행된 정황이 금감원 조사 결과 확인돼서다. 이에 A씨에게 명예지점장 직함과 명함을 임의로 제공한 것도 B씨인 것으로 시장은 추측하고 있다.
B씨가 대출을 승인할 동안 본점에서 이를 보고 받고 총괄한 이는 C씨로 전해진다. C씨는 부정대출이 본격적으로 실행된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원활한 대출을 조력한 인물로 꼽힌다. 핵심 관계자들 역시 C씨가 그룹 내 숨은 실세로서 손 전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해왔다고 증언했다. 특혜성 부정대출의 진원지가 C씨일 가능성이 높다는 언급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으론 다른 해석도 전해진다. 손 전 회장의 부인이 부정대출 사태의 근원이란 것이다. 실제로 손 전 회장이 처남 A씨의 대출 문제로 여러 차례 갈등을 빚었다는 전언이 들려오기도 한다. 우리은행 측 관계자는 “그 당시 처남 문제가 여러 차례 보고되자 손 전 회장이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고 한다”며 “처남 문제가 그룹에까지 영향을 주자 제지하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문화 쇄신 강조한 임종룡, 업계선 “내부통제부터 강화해야”
이처럼 손 전 회장과 다양한 핵심 인물들이 줄줄이 리스크에 휘말리자, 임종룡 현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기업 문화 쇄신을 강조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앞서 지난 12일 임 회장은 본사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불합리한 기업 문화, 업무 처리 관행, 상하 간의 불합리한 관계, 내부 통제 작동 여부를 되짚어보고 객관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며 “무엇보다 올바른 기업문화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부당한 상사의 지시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와 같이 원칙에 따라 처리한 직원은 조직이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부 문화 개선을 통해 부정대출 사태 재발을 방지하겠단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업계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다. 기업문화 개선보단 우리은행 자체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라는 시선에서다. 이번 부정대출 건은 손 전 회장이 퇴임한 이후부터 우리은행의 자체 내부 검사가 이뤄진 지난 3월까지 한 차례도 발각된 바 없다. 전방위적인 대출 실행 및 내부 감시 체계가 미흡하단 방증이다.
우리은행에서 주기적으로 횡령 사고가 발생하고 있단 점도 내부통제 부실 논란을 키운다. 실제 지난 2022년엔 차장급 직원이 712억원에 달하는 돈을 횡령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고, 지난 6월엔 직원 한 명이 100억원에 달하는 액수를 횡령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우리은행 측은 향후 ‘원스트라이크’ 제도를 확대해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상 징후가 발견된 영업점을 대상으로 본점에서 예고 없이 현장 검사에 나설 수 있도록 내부 제도를 변경하는 게 골자다. 기존엔 지점 검사 예정일로부터 약 2주 전에 미리 통보했었지만, 앞으로는 현장 검사 하루 전 오후 8시에 통보하겠단 것이다. 오후 8시는 지점 업무가 대부분 종료되는 시점이다. 즉 사실상 ‘불시 검사’를 하겠다고 밝힌 셈이다. 거듭되는 비위 문제로 리스크를 재차 노출한 우리은행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고 은행’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