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재도전’ GS엔텍, 콜앤드래그 조건으로 투자 유치 “IPO 배수진”
GS글로벌, GS엔텍 상장 재도전 위한 투자 유치 착수
사모펀드(PEF) 투자자에 IPO 조건으로 내걸어
2,000억 규모 펀딩도 추진, 복수 SI·FI 참여 검토
GS글로벌이 자회사 GS엔텍의 기업공개(IPO) 재도전을 위한 자금 조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사모펀드(PEF) 투자자에 IPO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특히 ‘콜앤드래그’를 안전장치로 설정해 주간사 선정 등 의무사항을 조건으로 걸었다. 여기에 GS글로벌은 추가 자금조달을 위해 신규 전략적투자자(SI) 유치까지 검토하고 있다.
GS엔텍, IPO 위한 자금 조달 나서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GS엔텍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잇따라 전환사채(CB) 발행과 상환전환우선주(RCPS) 기반의 유상증자를 진행해 900억원을 조달했다. 이 과정에서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Dominus Investment)와 시몬느자산운용(Simone Investment Managers)이 각각 조성한 펀드 ‘엔브이10홀딩스’와 ‘시몬느메자닌 일반 사모투자신탁제7호’가 참여했다. 도미누스펀드가 643억원, 시몬느가 257억원을 투자했다.
GS엔텍은 이번 투자유치 계약을 체결하면서 재무적투자자(FI)의 엑시트(투자금회수)를 위한 안전장치로 콜앤드래그(조기상환청구권·동반매각청구권) 조건을 걸었다. GS엔텍과 GS글로벌이 과거 IPO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배수진을 친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GS글로벌은 콜옵션과 드래그얼롱 등에 따른 자금·지분 희석 부담을 감수하며 지원에 나섰고, GS엔텍이 계약상 수주를 진행하면서 도미누스와 시몬느는 보유한 CB 중 100억원만 남기고 RCPS로 전환했다. 이 때문에 GS글로벌의 GS엔텍 지분율도 기존 80.19%에서 73.67%로 하락했다.
이에 GS엔텍이 지난해 11월 29일과 12월 18일 이사회에서 논의한 CB 발행승인 안건의 세부 내역에는 ‘발행회사의 IPO 의무’가 명시돼 있다. 또 CB 인수인(투자자)은 GS엔텍이 IPO 심사요건을 갖췄을 경우 절차를 밟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내년 6월 말까지 주간사 선정 △9월 말까지 지정감사 신청 △2026년 말까지 상장예비심사신청서 제출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GS엔텍은 해상풍력 기자재 수주 계약도 의무사항으로 기재했다. GS엔텍은 메자닌 거래 종결일로부터 1년이 되는 날까지 누적 수주금액 1,300억원 이상의 기재자 납품 관련 수주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또한 2년이 되는 날까지는 수주금액이 2,000억원 이상인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밖에 수주 이행사실을 담은 증빙자료도 준비해야 한다.
이에 GS엔텍은 내년 IPO를 달성하기 위해 2,000억원 규모의 추가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는 채권 발행보다는 주식을 직접 매각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유치할 가능성이 높다. GS글로벌 관계자는 “GS엔텍의 모노파일(Monopile) 사업 추진을 위한 투자금이 계속 필요한 상황”이라며 “우선은 SI와 태핑 중인데 안 될 것에 대비해 FI 유치도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복수의 투자자들과 세부 협의를 벌이고 있다”며 “지분을 직접 주는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영광낙월 해상풍력 프로젝트 공급 계약 체결, 추가 수주도 기대
GS엔텍이 이번 투자를 위해 내건 조건은 미래 먹거리로 기대가 높은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모노파일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한다. 모노파일은 대형 철판을 용접해 만든 원통형 구조물로 해상풍력발전기 설치를 위한 주춧돌 역할을 한다. 부유식 및 삼각대(Tri-Pod), 자켓(Jacket) 등 기존의 하부 구조물보다 제작 기간이 짧고 비용도 저렴해 글로벌 시장에서 선호도가 높다.
그동안 GS엔텍은 정유 및 석유화학 플랜트용 화공기기 제작 사업을 벌였지만 2020년대 들어 GS그룹의 친환경 미래사업 전략에 맞춰 해상풍력 등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모노파일 방식의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시장 1위 기업인 네덜란드의 시프 네덜란드 비브이(Sif Netherlands BV)사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독점적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글로벌 모노파일 시장에서 시프는 기술상의 ‘보증수표’로 통한다. GS엔텍은 시프와의 협력을 통해 기존 울산 화공기기 제작 사업장도 해상풍력 모노파일 제작 공장으로 바꿨다.
이 같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GS엔텍은 전남 영광낙월 해상풍력 프로젝트에서 2,000억원 규모의 모노파일 64기 공급 계약을 따냈고, 내년 9월까지 64기 전체 공급을 완료할 예정이다. 국내 해상풍력 시장 확대 정책에 따라 추가적인 수주도 기대하고 있다. GS엔텍 관계자는 “3,000억원 투자를 통한 생산설비 고도화를 발판으로 이제 글로벌 시장의 물꼬를 틀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장 눈여겨보는 지역은 빠르게 성장하는 일본 시장이다. 일본 정부는 해상풍력 발전 규모를 2030년까지 현재의 약 30배 규모로 늘리고 2040년엔 240배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특히 일본은 하부구조물 대부분을 GS엔텍의 모노파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현지에서 일본 환경에너지기업인 JFE엔지니어링이 모노파일 공장을 설립 중이기는 하나, GS엔텍과 같이 기술이 검증된 대규모 모노파일 생산능력을 갖춘 기업이 사실상 전무하다.
韓 조선·해양 업계도 해상풍력에 드라이브
이런 가운데 국내 조선·해양 업계도 해상풍력 발전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선점하고 기술력을 키우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대표적이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노르웨이 국영 종합에너지기업 에퀴노르(Equinor)와 동해 ‘반딧불이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투입할 설비의 독점 공급 합의서(PSA)를 체결했다. 현재 에퀴노르는 울산에서 60~70㎞ 떨어진 해상에 최대 750㎿(메가와트) 규모의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삼성중공업은 최종 사업자로 선정될 경우 15㎿급 해상풍력 발전 설비 50기의 하부 부유체를 제작해 이를 타워 및 발전기와 결합하는 마샬링(Marshalling) 작업을 맡게 된다.
한화오션은 2021년 덴마크 해상풍력 기업 카델러(Cadeler)에서 수주한 해상풍력발전기 설치선(WTIV·Wind Turbine Installation Vessel)을 지난 6월 진수했다. 해당 WTIV는 길이 148m, 너비 56m 크기로 15㎿급 대형 해상풍력발전기 5기를 한 번에 실을 수 있으며, 수심 65m까지 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다. 한화오션은 앞서 2척의 WTIV를 인도했고, 현재 2척의 WTIV를 건조 중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해상풍력 하부 구조물 제작 등을 위해 필리핀 수빅(Subic) 조선소의 야드(선박 건조 작업장) 부지 일부와 설비를 임차했다. 필리핀 현지 언론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은 이곳에 향후 10년간 5억5,000만 달러(약 7,350억원)를 투자한다. 지난 4월 HD현대중공업은 스코틀랜드 경제개발기구와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 협력 업무협약(MOU)을 맺었는데, 수빅 등 해외 제작 기지를 통해 해상풍력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SK오션플랜트는 ㈜안마해상풍력과 하부 구조물 제작 및 공급 우선협상자 선정 계약을 연장하기로 지난달 말 합의했다. 안마해상풍력은 전남 영광군 연안에서 약 40㎞ 떨어진 안마도 인근 해상에 532㎿ 규모의 해상풍력 단지를 구축하는 사업을 맡았다. SK오션플랜트는 이번 사업에 14㎿급 발전기와 블레이드(날개), 타워를 지탱하는 하부 구조물(재킷) 38기를 제작해 공급할 예정이다. 이 같은 국내 기업들의 해상풍력 사업 참여는 IPO 재도전을 노리고 있는 GS엔텍에 있어 호재로 인식된다.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은 연평균 13% 성장해 2040년 1조 달러(약 1,335조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시장 확대에 힘입어 성공적인 IPO 발판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