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카드사 연체율’ 10년 만에 최고치, 자산 건전성 ‘빨간불’
8개 전업 카드사, 상반기 연체율 상승
은행 대출 문턱 높이자 ‘풍선효과’
카드 연체 위험 수위 '카드대란' 수준
올 상반기 카드사 연체율이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 1조5,000억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카드사의 자산건전성은 연일 악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경기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으로 급전을 마련해 온 취약계층들의 대출 상환 능력이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카드사 8곳, 상반기 연체율 1.69%
27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상반기 여신전문금융회사 영업실적(잠정)’에 따르면 8개 전업 카드사들의 상반기 순이익은 총 1조4,990억원으로 파악됐다. 이는 전년 동기(1조4,168억원) 대비 822억원(5.8%) 증가한 수치다. 카드대출수익, 할부카드수수료수익, 가맹점수수료수익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942억원, 1,711억원, 1,313억원 증가하면서 이들 카드사의 실적을 견인했다.
순이익은 늘었지만 자산건전성은 악화됐다. 6월 말 기준 전업 카드사 연체율은 1.69%로 집계되며 10년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말(1.63%) 대비 0.06%포인트 오른 수치로, 카드사는 연체율이 2%대에 가까워지면 위험수준으로 여겨진다. 고정이하여신비율도 1.17%로 같은 기간 0.03%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카드대출채권 연체율이 3.60%를 기록하며 카드사 전체 연체율을 끌어올렸다. 신용판매채권 연체율은 0.91%로 전년 말(0.86%) 대비 0.05%포인트 상승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카드업계는 수익성이 개선됐음에도 웃지 못하는 분위기다. 수년에 걸쳐 연체 부담이 늘어나면서 건전성 관리가 중요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카드 연체액 2조 이상, 카드대란과 맞먹는 규모
카드사 연체율이 급증한 이유는 최근 카드론으로 중·저신용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경기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다른 서민 대출 창구인 저축은행과 대부업 대출까지 어려워지면서 취약 차주가 카드론을 선택한 것이다. 실제로 카드론 잔액은 연일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9개 카드사(롯데·BC·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NH농협카드)의 지난달 말 기준 카드론 잔액은 41조2,266억원으로 전월 말(40조6,059억원) 대비 6,207억원(1.53%) 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카드론 잔액은 지난해 12월 38조7,613억원을 기록한 이후 7개월 연속 증가세다.
이 가운데 1개월 이상 갚지 못한 연체액만 2조원이 넘는다. 이는 카드 가입 문턱을 크게 낮춰 2002년부터 2006년 사이 수백만 명의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던 ‘카드 대란 사태’ 당시와 맞먹는 규모다. 카드 대금을 장기간 갚지 못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6개월 이상 연체된 악성 채권은 1,879억원으로 1년 전(1,243억원)보다 636억원 증가했다.
이에 신용카드 연체액이 금융 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 카드업계의 재무 건전성은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우려하는 수준까지 악화됐다. 지난 5월 무디스가 KB국민카드의 장기 신용등급(A2)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디스는 보고서를 통해 “개인 채무재조정 건수(카드론 대환대출 포함)의 증가로 다른 동종 업체 대비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며 “고금리 환경이 지속될 경우 추가 건전성 악화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전성 관리에서 ‘대출 확대로’ 돌아선 현대카드, 연체율 상승
주목되는 부분은 국내 카드사 중 비교적 양호한 건전성을 보이던 현대카드도 연체율 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점이다. 그간 건전성 우선주의였던 현대카드는 최근 카드론을 급격히 확대하며 영업 우선주의로 돌아섰는데, 실적과 함께 연체율도 전 분기 대비 0.3%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누적 기준 현대카드의 카드론 이용실적은 5조3,64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6.5%나 급증했다. 이는 현대카드를 제외한 7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KB국민·롯데·우리·하나·BC)의 카드대출실적(33조5,215억원)이 같은 기간 3.1% 감소했다는 점과 대비된다. 최근 건전성 우려가 높아지자, 업권 전반에서 카드대출을 자체적으로 축소하는 분위기기 때문이다.
현대카드의 이런 변화는 지난해와 정반대의 행보다. 지난해까지 대출을 최대한 축소하고, 건전성을 제고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현대카드가 갑자기 카드론을 확대한 배경에는 수익성이 있다. 단적으로 지난해 말 현대카드의 수지비율은 81.39%로, 1년 새 14.08%p나 떨어졌다. 이는 업권내에서 가장 낮을 뿐만 아니라, 7개사 평균(87.44%)보다 더 크게 하회하며 감소폭도 가장 컸다. 영업수익에서 영업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인 수지비율이 낮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다른 7개사의 1분기 순이익(6,734억원)이 1년 새 15%나 증가한 반면, 현대카드의 순이익(638억원)은 9.9% 감소했다. 지난해 업권 유일 실적 증가세(경상적 기준)를 기록했던 것과도 대비되는 대목이다.
대손상각비 규모도 크게 늘었다. 현대카드의 올 1분기 대손상각비 규모는 1,30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656억원) 무려 98.74% 증가했다. 이는 8개 전업 카드사 가운데 가장 큰 증가폭이다. 대손상각비 규모가 늘어난 것은 카드론 수요가 급증한 와중에 이를 갚지 못하는 차주가 늘어나면서 부실 채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카드사는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부실에 대응하기 위해 대손충당금을 쌓는데 카드론뿐 아니라 현금서비스·리볼빙 등 대출성 상품을 판매한 뒤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부실채권이 발생하면 대손상각비로 손실 처리한다. 문제는 연체율을 줄이기 위해 대규모로 부실 채권을 상각했음에도 건전성 지표가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 대출 상품은 타 업권에 비해 간편해 경기 불황기에 서민들이 몰리는 측면이 있어 현재 위험 채권이 많아지고 채권 회수 난이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