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덴버그 타깃’ 된 ‘슈퍼마이크로컴퓨터’ 연차 보고서 제출도 지연, 주가 20% 폭락
공격적 공매도 투자사 '힌덴버그 리서치' AI 랠리 수혜주 SMCI 저격
회계 조작 및 자전거래 등 의심, 미 수출 제재 어기고 중·러와 거래 의혹도
힌덴버그 지적 이후 SMCI '연차 회계보고서' 제출 지연, 주가 19.02% 하락
인공지능(AI) 수혜주로 꼽히는 AI 서버 제조업체 슈퍼마이크로컴퓨터(SMCI)의 주가가 폭락했다. 공격적인 공매도 투자사로 잘 알려진 힌덴버그 리서치가 SMCI의 회계 조작 혐의를 제기하며 주가 하락에 베팅한 가운데, SMCI 측이 연차보고서 제출을 연기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된 결과다.
힌덴버그 “명백한 회계위험 신호 발견”, 매도 포지션
28일(이하 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SMCI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9.02% 하락한 443.4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주가 폭락은 SMCI가 미 감독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연차 회계보고서 제출을 지연한 데 따른 것이다. SMCI는 지난 6월 말로 끝난 2024 회계연도 연차 회계보고서 제출과 관련해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들 것”이라며 “경영진이 재무 보고에 대한 내부통제 설계 및 운영 효과에 대한 평가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숏 리포트(매도 보고서)’로 유명한 힌덴버그가 SMCI에 대한 공매도 포지션을 공개한 지 하루 만의 발표다. 앞서 27일 힌덴버그는 보고서를 통해 “SMCI에 대한 조사 결과 심각한 회계 문제와 제대로 공시되지 않은 거래에 대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힌덴버그는 2020년 SMCI가 회계·공시 의무 위반 혐의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이후에 주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SMCI는 2억 달러(약 2,670억원) 이상을 부적절하게 수익으로 인식하고 비용은 과소평가한 사실 등이 발견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소송을 당했고, 이후 1,750만 달러(약 233억원)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했다. 힌덴버그는 당시 소송 기록과 전 임직원 인터뷰를 통해 “SMCI는 SEC에 벌금을 낸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예전의 회계 관행으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힌덴버그는 SMCI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수출 제재를 우회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힌덴버그는 “4만5,000건 이상의 수출입 거래를 검토한 결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SMCI 제품 수입이 약 3배 급증했다”며 “이는 SMCI가 미국의 수출 제재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국영기업 파이버홈(Fiberhome)이 2020년 미국 정부의 제재 명단에 오른 이후에도 이 회사와 함께 설립한 합작사에 1억9,600만 달러에 가까운 제품을 판매했다”고 덧붙였다.
특수관계자와의 거래에도 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SMCI의 액체 냉각 기술은 찰스 량(Charles Liang) SMCI 최고경영자(CEO)의 부인과 형제가 운영하는 대만 에이블컴의 기술로, SMCI는 에이블컴에 지난 3년간 9억8,300만 달러(약 1조3,100억원)를 지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정황들을 토대로 힌덴버그는 “전반적으로 볼 때 SMCI는 상습범”이라고 비판했다. 힌덴버그는 “그동안 SMCI는 선두주자로 이익을 누렸지만, 여전히 회계와 지배구조, 준법 이슈에 직면해 있다”며 “더 신뢰할 수 있는 경쟁자에 의해 잠식될 수 있는 열등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힌덴버그는 2020년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니콜라(Nikola)가 언덕에서 트럭을 굴린 뒤 주행시험에 성공했다고 속인 사실을 폭로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실제 당시 미 검찰 수사에서 이 같은 주장이 대부분 사실이었음이 확인됐다. 이후에도 힌덴버그는 지난해 인도 재벌 아다니그룹을 저격, 대규모 신주 발행을 무산시키는 등 위력을 떨친 바 있다.
1,500달러 간다던 SMCI, 400달러대 추락
힌덴버그의 타깃이 된 SMCI는 엔비디아 협력 업체로 알려지며 미 증시 AI 랠리의 최대 수혜주 중 하나로 꼽혀왔다. 2018년 말 13.80달러였던 SMCI의 주가는 지난 3월 1,229달러까지 치솟았고 그 덕에 지난해 초 44억 달러(약 5조9,000억원)였던 시가총액도 670억 달러(약 89조5,000억원)까지 불어났다.
SMCI에 대한 관심은 최근까지도 뜨거웠다. AI 시장이 2032년 1조3,000억 달러(약 1,737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자 미 투자 전문 매체들은 앞다퉈 엔비디아와 SMCI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양사가 AI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만큼 수요 증가의 수혜를 크게 누릴 것이란 분석에서다. AI 시장 확대와 함께 주가 상승 여력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특히 투자업계는 SMCI가 AI 서버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JP모건체이스는 SMCI를 AI 컴퓨팅 시장의 선두 기업으로 평가했으며, 키뱅크는 올해 SMCI의 시장 점유율이 23%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SMCI가 내부 제조 역량과 독자적인 제품 개발 방식을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근거로 월가의 저명한 분석가는 SMCI 주가가 1,5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SMCI ‘어닝쇼크’ 기록, 투자업계 ‘매수의견’ 하향 조정
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가 무색하게 이달 초 SMCI가 밝힌 2024 회계연도 4분기 실적은 시장 전망에 한참 못미치는 어닝쇼크를 보였다. 이번 회계 조작 의혹이 불거진 배경이다.
SMCI에 따르면 매출액은 53억1,000만 달러(약 7조800억원)를 기록해 예상치인 53억 달러를 소폭 웃돌았지만 조정 주당순이익(EPS)이 6.25달러로 예상치 8.07달러를 크게 밑돌았다. 매출총이익률 역시 11.2%까지 하락해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17%, 지난 3분기 15.5%와 비교해 크게 약화된 수준이다. 이에 SMCI는 지난 7일 액면 분할 소식을 발표하며 주가 상승을 기대했으나 어닝쇼크 여파에 500달러 아래로 내려왔다.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부진한 실적에 투자은행도 SMCI의 등급과 목표가를 일제히 내려 잡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SMCI의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하고, 목표가도 기존 1,090달러에서 700달러로 낮췄다. 이런 가운데 시장 일각에서는 SMCI의 회계 부정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AI가 주도하던 증시의 ‘펀더멘털’까지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