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EU 구조기금, 마피아 표적만 늘렸다
연구진, EU 구조기금과 마피아 간의 관계 분석
구조기금 받은 지역, 마피아에 노출될 확률 높아
단순 금전 지원으로 낙후 지역 개선 기대하기 어려워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유럽연합(EU)의 구조기금이 마피아의 영향력을 확대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EU는 낙후 지역을 개선하고자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에 기금을 후원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도움받은 이탈리아의 6개 주(州)는 마피아의 표적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 정부 노리는 마피아
이탈리아는 마피아의 본거지로, 오랫동안 조직 범죄에 시달렸다. 마피아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지역 사회를 흉흉하게 만드는가 하면 지방 정부에 은밀하게 흘러 들어가 공공 자원을 갈취하고 선거를 조작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방 정부는 부패가 만연한 범죄의 온상이 됐다.
이에 이탈리아 정부는 마피아가 장악한 지방 정부를 해임하는 식으로 강하게 맞받아쳤다. 중앙 정부는 마피아의 싹을 자르고 새로운 지방 정부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자체 자립을 위한 해결책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마르코 르 모글리(Marco Le Moglie) 사크로 쿠오레 가톨릭대(Università Cattolica del Sacro Cuore) 조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은 해결책을 찾고자 마피아가 표적으로 삼은 지역을 조사했다. 그러던 중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해임된 지방 정부 중 이전에 EU 구조기금을 받은 지역이 다수 분포했다는 점이다.
EU 구조기금과 지방 정부 해임 횟수의 상관관계
연구진은 곧바로 인과 효과를 측정하는 데 나섰다. 연구진은 여기서 발견한 사실로 결론을 내고 싶지만, 이는 단순 상관관계만을 의미해 실제로 어떤 요인이 인과적으로 마피아와 관련됐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 이에 연구진이 택한 방식은 경제학 방법론을 빌려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경제학 실증 연구의 핵심은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에 있다. 세테리스 파리부스란 분석 대상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동일한 상태를 말한다. 이를테면 의약 실험에서 실험군과 대조군을 나눠 실험 효과를 입증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실험군과 대조군은 처치 여부 외에는 동일한 상태이므로, 정확한 처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실험실이 아닌 현실에서 세테리스 파리부스를 만족하는 사례를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경제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의도치 않게 일어난 사회 실험을 찾아 나섰다.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한 지역과 인상하지 않은 지역을 두고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를 조사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EU의 구조기금이 이탈리아의 일부 지역에만 후원된 점을 공략했다. EU는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유럽 평균의 75% 이하인 지역을 기준으로 기금을 지원했다. 이를 토대로 연구진은 구조기금을 받은 캄파니야(Campania), 풀리아(Puglia)를 처치 집단으로 삼고, 두 지역과 인접하지만 구조기금을 받지 않은 몰리세(Molise), 라치오(Lazio)를 통제 집단으로 분류했다. 각 지역은 밀접하게 붙어있어 기금 지원 여부 외에는 거의 비슷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다. 즉 연구진은 세테리스 파리부스를 만족하는 상황을 설계한 것이다.
연구진은 실험 상황을 설계한 뒤, EU 기금과 지방 정부 해임 횟수 사이의 관계를 살펴봤다. 데이터를 통해 확인한 결과 둘 간에는 높은 양의 상관관계가 포착됐다. 이는 마피아가 구조기금을 받은 지역을 표적으로 삼고 지방 정부에 은밀하게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기금을 받은 지역이 받지 않은 지역보다 실제로 마피아가 침투할 위험이 11~14%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연구진은 2007년 당시 이탈리아 정부의 권력이 약해진 점에 주목했다. 마피아는 권력이 약해진 곳에서 번성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마피아는 중앙 정부의 권력이 분산됐던 시기를 놓치지 않고 지방 정부에 자연스럽게 침투할 수 있었다.
금전 지원, 낙후 지역 살릴 진정한 해결책인가?
연구 결과는 단순한 돈 퍼주기식 재정 지원에 의문을 제기한다. EU 기금은 낙후 지역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자립성을 키우고자 했으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낙후된 지자체는 오히려 마피아의 표적이 될 위험이 커졌고 지역 주민들의 큰 혼란을 야기했다.
이는 지방 정부가 자립할 힘이 없는 상태에서 받는 돈은 일시적으로 경제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큰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조직범죄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원문의 저자는 마르코 르 모글리(Marco Le Moglie) 사크로 쿠오레 가톨릭대(Università Cattolica del Sacro Cuore) 조교수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은 How machine learning is aiding the fight against mafia infiltration in Italy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