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 ‘님비 현상’ 가중, 정치권 가세에 전력망·인프라 확충 더 멀어질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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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한전 분쟁 속 '추미애 의원 법안' 논란 예고
하남시 "증설 약속한 적 없어" vs 한전 "MOU 맺어놓고 뒤집어"
전력 수요 확대 형국에 지역 주민 반대로 송전선로 건설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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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하남시에 증설하려는 동서울변전소를 두고 한국전력과 지역 주민 간 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이곳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국회의원이 변전소 증설을 어렵게 하는 법안을 발의키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시행까지 되면 한전은 동서울변전소 증설에 대해 1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뒤에야 하남시에 허가 신청을 낼 수 있게 된다.

추 의원, 한전-하남시 분쟁 중 입법 나서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만간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앞서도 여야 의원들이 전력망 특별법을 발의한 바 있지만, 추 의원 법안은 전력망 사업자인 한전이 실시·변경 승인을 신청하기 전에 전력망 설비 경계로부터 500m 이내에 거주하는 세대주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점이 차별점이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지역 주민 동의만 거치면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사실상 과반 이상의 찬성을 얻는 것이 어렵다는 점에서 오히려 전력망 적시 확충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추 의원은 또 주민이 사업 시행자에게 설비 지중화(땅 밑에 매설)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가 비용 전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도 법안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하남시-한전,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 놓고 공방

추 의원이 준비 중인 법안은 하남시와 한전이 벌이고 있는 ‘동서울변전소 분쟁’과 관련돼 있다. 하남 감일지구에 위치한 동서울변전소는 동해안 원전과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한 설비로, 한전이 약 7,000억원을 들여 증설을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해 한전은 현재 야외에 노출돼 있는 변전소를 건물 안에 집어넣는 옥내화와 함께 변전소 규모를 약 3.5배 늘리는 조건으로 하남시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그런데 지난 8월 하남시는 한전이 올해 3월 신청한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 사업에 대해 전자파와 소음, 주민 설명 미흡 등을 이유로 허가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하남시는 한전이 주민 설명회 때 옥내화만 앞세우고 증설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또 변전소에서 나오는 소음으로 주민들이 이미 불편을 겪고 있는 데다 인근에 학교와 유치원이 있어 주민 안전을 위해 증설을 허가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에 한전은 전자파 유해성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소음은 사실상 주민이 체감하기 어려운 정도인 데다 이마저도 옥내화를 하면 더 줄어든다며, 옥내화 조건부로 증설을 하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재반박했다. 또 한전은 지난 9월 하남시를 상대로 불허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심판을 낸 상태로, 오는 11월 4일 결론이 날 전망이다. 만약 행정소송까지 간 뒤 결론이 나게 되면 준공은 예정됐던 2026년 6월에서 2028년 12월로 2년 6개월 밀리고, 이 기간 추가 비용 부담만 7,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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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 내부 모습/사진=네이버클라우드 홈페이지

전력망 확충 시급한데, 님비 현상에 예산 낭비만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간 최대 전력 수요는 지난해 98.3기가와트(GW) 수준에서 15년 뒤인 2038년에는 128.9GW로 31% 급증할 것으로 관측된다. 인공지능(AI) 확산과 데이터센터, 전기차,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로 인해 신규 전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전력망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AI 시대 핵심 인프라가 될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생산 시설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데이터센터는 153개로, 오는 2027년까지 30개의 데이터센터가 신규 준공될 예정이다. 반도체 공장 역시 AI 시대 컴퓨팅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생산시설이 지속적으로 구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내 주력 발전소들은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와 떨어져 있고, 송전망 건설은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지연되는 사례가 많다. 실제 변전소 증설이나 송전선로 건설 등을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와 한전이 갈등을 빚고 있는 지역은 하남시 외에도 전남 장성·보성·영암·영광, 강원 횡성·홍천, 충남 당진, 경기 시흥 등 8곳에 달한다. 건설 기간이 지연되면서 불필요한 예산 낭비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충남 당진화력-신송산 송전선로 건설 지연으로 낭비된 예산은 2조원에 이른다.

주민들이 전력망 구축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자파 위험성에 대한 우려다. 송전선로가 건강에 위험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전은 전자파의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으며, 전 세계적으로 전자파 기준 규제가 완화되는 추세라고 강조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역부족인 모양새다.

다만 그렇다고 전력망 확충을 마냥 미룰 수만도 없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미래 산업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전력망 확충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첨단 제조업은 고출력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중요하기 때문에 더 나은 인프라를 제공하는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력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을 경우 전력이 손실돼 에너지 효율이 낮아질 수 있고, 이는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미래 산업 투자 유치를 위해서라도 효율적인 전력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