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돈 모아 채무 상환, 상장 리츠에 만연한 주주가치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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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마련 위해 부동산 매각 나서는 기업들
부동산 자산 유동화로 재무구조 개선, '마통' 효과도
자산 고가 매입에 일반 주주만 냉가슴, “리츠가 설거지용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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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가 신규 자산 편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해 주가가 급락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리츠 투자자들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주주들이 불만을 갖는 포인트는 상장 리츠가 계열사의 천덕꾸러기 같은 부동산을 ‘비싼 값’에 매입해 온다는 점이다. 안정적인 배당을 받고자 투자했는데, 잦은 유증이 되려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꼴이 됐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이리츠코크렙 주가, 하루 새 7% 이상 폭락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랜드리테일과 코람코자산신탁이 손잡고 설립한 기업구조조정(CR) 리츠 ‘이리츠코크렙’ 주식은 전날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4,445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가가 하루 새 0.22% 내린 가운데 장 중 4,380원까지 밀리면서 최근 1년 중 최저가를 다시 한번 경신했다. 이리츠코크렙 주가는 지난 25일에도 7.86%(380원) 하락했다. 이리츠코크렙 주가가 하루 새 7% 넘게 빠진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졌던 2020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주가를 끌어내린 것은 이랜드리테일의 서울 강남e스퀘어(점프밀라노)를 이리츠코크렙이 1,900억원에 사들일 것이란 소식이다. 이리츠코크렙은 안내문을 통해 “주가가 공모가(5,000원)를 밑돌면서 주주와 투자자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면서도 “주주가치 제고와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강남e스퀘어 등 다양한 자산 매입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일반주주들은 이랜드리테일이 강남e스퀘어를 시장에서 적정 가치에 처분하지 못하자, 이리츠코크렙으로 떠넘긴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목토론실 등에서도 “리츠가 설거지용이냐”와 같은 날 선 반응이 주를 이뤘다. 실제 이랜드리테일은 2010년대 중반 구조조정으로 회사가 어려울 때 강남e스퀘어를 매물로 내놨지만, 오랜 기간 팔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유상증자, 주주가치 훼손

일반 주주들이 신규 자산 편입에 예민한 이유는 대규모 유증에 따른 주가 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리츠코크렙이 강남e스퀘어를 실제로 매입한다고 가정할 때, 차입으로 매입 자금 절반을 조달한다고 해도 950억원은 유증으로 마련해야 한다. 보통 리츠의 유증 신주 발행가는 거래량을 반영한 ‘가중산술평균주가’에 할인율 5% 안팎을 적용해 정해진다는 점에서, 이달 25일 기준 이리츠코크렙의 가중산술평균 주가는 4,940원 수준으로, 할인율을 적용하면 4,700원가량이 신주 발행가로 추산된다. 950억원을 조달하려면 약 2,021만 주를 새로 찍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현재 이리츠코크렙 발행주식 수(6,334만주)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규모다.

더욱이 현재 이리츠코크렙 주가는 4,400원대로 주저앉은 탓에 95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찍어내야 하는 주식 수는 대폭 늘어난다. 유증이 두려워 주가가 하락하는데, 주가가 떨어질 수록 더 많이 유증해야 하는 진퇴양난인 셈이다.

앞서 그룹 소유 부동산을 사들이기 위해 유증에 나섰던 리츠들의 주가도 휘청였다. 삼성FN리츠는 삼성화재 판교 사옥을 신규 자산으로 편입하기 위해 유증을 마무리한 결과, 기존 발행주식 수(7,730만 주)의 17.8%(1,375만 주)에 해당하는 신주를 발행했다. 신주 발행가는 4,670원으로, 유증을 결정했을 때 5,050원이었던 주가가 신주 발행가와 같은 수준까지 폭락했다. 한화그룹 본사 사옥인 장교동 한화빌딩을 편입하기 위해 상장 리츠 사상 최대 규모의 유증을 추진 중인 한화리츠 주가도 마찬가지다. 한화리츠는 기존 발행주식 수(7,060만 주)를 웃도는 1억900만 주를 찍어내 약 4,730억원을 조달할 예정인데, 한화리츠 주가는 유증 발표 전 5,000원에서 이달 28일 종가 기준 3,915원으로 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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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기업의 ‘자금줄’

국내에서 리츠 상장이 활성화한 시점은 정부가 2019년 9월 ‘공모형 부동산간접투자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부터다. 해당 안에 상장 리츠를 3년 이상 보유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연 5,000만원 이하 배당소득에 9.9% 분리과세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이 담기면서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리츠 수요가 급성장했다.

가장 먼저 이 기회를 활용한 기업은 롯데였다. 2019년 당시 대규모 자금이 필요했던 롯데그룹은 롯데리츠를 설립하고 롯데쇼핑이 보유한 롯데백화점 강남점 및 구리점, 광주점, 창원점, 롯데아울렛 청주점, 롯데마트 서청주점, 롯데마트 의왕점, 롯데프리미엄아울렛 등을 롯데리츠에 매각하면서 유동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롯데그룹 외에 다른 기업들은 상장 리츠에 큰 관심이 없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저금리 시대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회사채 발행이나 유증, IPO(기업공개) 등으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었기에 리츠는 그다지 매력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리츠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롯데리츠 상장 2년 뒤인 2021년 9월 SK리츠가 상장하면서다. SK그룹은 2005년 SK인천석유화학(옛 인천정유)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사옥인 서린빌딩을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에 ‘세일 앤드 리스백(Sale and Lease Back, 매각 후 재임대)’ 형태로 매각했고 우선매수권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SK리츠가 지난해 7월 3,0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유증을 발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명목은 기존 회사채를 상환하기 위한 유증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는 SK하이닉스를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실제 SK리츠는 그해 9월 3,061억원을 유증으로 조달하고 나머지는 빚을 내 SK하이닉스의 수처리 시설을 1조1,000억원에 매입했다. 그런데 SK리츠 지분 43%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지주사 SK㈜는 주주배정 유증에 배정된 몫의 10%만 참여했고, 나머지 90%는 포기했다. 스폰서 리츠의 최대주주가 주주들에게 유증 자금조달 부담을 떠넘긴 것이다.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에 유증 청약은 미달됐으나, 주관사를 맡은 증권사들이 실권주 물량을 인수하면서 자금조달에는 무리가 없었다.

SK리츠의 SK하이닉스 수처리 편입은 기업 스폰서 리츠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 훼손을 불러일으켰지만, 역설적으로 기업들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에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됐다. 환금성이 낮은 부동산 자산을 필요시 제값을 받고 빠르게 유동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선 리츠를 상장하면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두는 효과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높아진 금리에 따른 부담도 리츠 투자자들에게 어느 정도 떠넘길 수 있었다.

업계는 최근 태영건설이 여의도 사옥을 SK그룹 리츠 운용사 디앤디인베스트먼트(DDI)에 넘긴 것도 같은 전략으로 보고 있다. 태영건설은 지난 8월 DDI가 설립한 CR 리츠 ‘티와이제1호기업구조조정부동산투자회사’에 태영빌딩을 매각(매각가 2,251억3,500만원)했다. 문제는 태영건설의 지주사 티와이홀딩스가 DDI의 출자 지분을 사들였다는 점이다. 티와이홀딩스는 CR 리츠의 자본금 1,000억원의 절반을 지분 투자 방식으로 출자하면서 대주주 지위를 갖게 됐고, 주주로서 리츠 관련 배당수익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또 태영건설과 티와이홀딩스는 태영빌딩을 매각한 이후에도 CR 리츠로부터 태영빌딩을 임차한 후 사용할 예정이다. 이는 태영이 리츠 지분을 간접 보유함으로써 태영빌딩을 완전히 넘겨주지 않았단 것을 의미한다. 기업 리츠가 사실상 투자자들의 자금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우회 대출’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