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수권자본금 60조원 확대, 반도체·원전 등 지원 강화
정무위원장 윤한홍 의원 등 개정안 발의
법정 자본금 60조원으로 대폭 상향 추진
17조원 규모 반도체 저리 대출 가능해져
당정이 미래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KDB산업은행의 수권자본금(증자할 수 있는 최대 법정 자본금)을 최대 60조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산은의 법정 자본금이 10년째 30조원에 발이 묶여 있으면서 현재 지원 한도까지 거의 다 찬 상태인 만큼 반도체 산업에 대해 정책금융을 지원하기 위해선 자본금 증액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산은의 법정 자본금이 확대되면 반도체·배터리 등 신성장산업 지원 여력도 그만큼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여야 의원, 산은 자본금 확대하는 산은법 개정안 발의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산은의 법정 자본금을 60조원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윤 의원은 산은을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위원장이다. 앞서 지난 7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은의 법정 자본금을 40조원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제출했고 지난 4일에는 권선동 국민의힘 의원이 자본금을 50조원으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야당에 이어 여당도 증액안을 제시하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산은법이 주요 처리 법안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법정 자본금’이란 산은의 자본금 상한선으로 실제 자본금은 최대 주주인 정부 증자 등을 통해 한도 내에서 결정된다. 산은의 법정 자본금은 1953년 출범 당시 4억환에서 1981년 1조원, 1995년 5조원, 1998년 10조원, 2009년 20조원, 2014년에 30조원으로 커진 후 10년 동안 30조원에 묶여 있다. 이 기간 산은의 정책금융 기능이 커지면서 자본금도 늘어났다. 8월 말 기준 자본금은 26조3,100억원으로, 법정 자본금의 87.7%를 소진해 법정 자본금을 늘리지 않으면 산업 발전 지원이라는 핵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법정 자본금 상향하면 300조원 대출·보증 여력 발생
업계에서는 향후 산은이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14.25%)을 유지하면서 300조원 규모의 기업 지원을 차질 없이 수행하려면 30조원 규모의 정부 증자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한다. 개정안에 따라 산은의 법정 자본금이 현재보다 20조~30조원 늘어나면 200조~300조원의 대출·보증 여력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자본금이 확충되면 최근 경고등이 켜진 반도체를 비롯해 인공지능(AI) 등 향후 먹거리 산업에 대한 추가 금융 지원이 가능해진다.
앞서 지난 7월 금융위원회는 국회 정무위원회 보고 자리에서 향후 대규모 첨단 산업에 대한 지원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산은법을 개정해 법정 자본금을 30조원에서 50조원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산은 측은 “자본금 한도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예정된 반도체 등 첨단산업 지원을 하게 되면 수권자본금에 육박하게 된다”며 “산은의 첨단산업 지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자본금을 먼저 확충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윤 위원장은 방위산업과 원전 분야 신규 수주와 국가 신성장 동력인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분야의 자금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이번 조치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산은이 보유한 한전 지분과 관련해 발생 가능한 손실과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은행 건전성 문제를 추가적인 자본 확충 필요성의 주된 요인 중 하나로 들었다. 한전 손실 반영 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 비율이 작년 말 기준으로 최소 위기 대응 수치인 15%를 하회하는 등, 올해 중반까지도 안정적 수준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산은, 올해에만 4번 증자하며 자본금 2조원 넘게 늘려
통상 산은은 BIS 자기자본비율 관리와 함께 정책금융 역할 수행을 위한 재원 확보에 주로 증자 또는 후순위채권 발행 등의 방식을 이용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29일 산은은 올해 세 번째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1,850억원 규모의 신주 발행을 결의했다. 이번 신주 발행은 혁신성장펀드와 지역활성화투자펀드 조성 지원, 그리고 KDB탄소넷제로 프로그램 등 세 개 펀드를 운영하기 위한 목적으로 1주당 5,000원씩 3,700만주를 발행했다.
이번 신주 발행으로 산은은 올해에만 총 네 번의 증자를 진행했다. 지난 2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을 현물출자 방식으로 2조원에 달하는 유상증자를 진행했고 올해 4월과 6월에는 각각 840억원, 1,210억원씩 증자를 진행해 총 3,900억원의 증자 계획을 마쳤다. 네 번의 증자를 통해 올해 자본금 총 2조3,900억원이 늘어났다. 산은은 지난해에도 해당 펀드의 조성을 위해 각각 1,000억원, 2,400억원, 500억원씩 예산을 배정받어 총 3,900억원을 늘렸다.
이렇게 자본금이 한도까지 찬 상태에서 정부는 지난 5월 내놓은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에는 산은이 반도체 기업에 17조원 규모의 저리 대출을 제공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통상 산은 출자금액의 10배가량 대출 여력이 생긴다는 점을 고려할 땐 단순 계산으로 1조7,000억원가량의 자금이 필요한데, 이에 상응하는 추가 증자가 이뤄질 경우 산은의 자본금은 28조원을 넘어선다. 여기에 혁신성장펀드 등 앞으로 예정돼 있거나 계획 중인 각종 펀드 등을 고려하면 내년 중 법정 자본 한도 30조원을 모두 채울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