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금융권 ‘금리 경쟁’ 사라진 주담대 시장, 1만2천 가구 둔촌주공도 예외 없다
최대 3,000억원 낮은 대출 한도
대출 총량 ‘리셋’되는 1월 노리기도
2금융권 찾는 발걸음, ‘풍선효과’ 발생
한때 치열했던 은행들의 소비자 유치 경쟁이 시들해진 모습이다. 정부의 가계대출 조이기 기조가 이어지며 시중은행들이 일제히 ‘눈치 싸움’에 돌입한 것이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로 주목받은 둔촌주공아파트(올림픽파크오레온) 입주자들이 그 피해자가 됐다. 입주자들 사이에서는 잔금대출 금리와 조건 등이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연내 입주 앞둔 4,000여 가구 대출 찾아 ‘발 동동’
12일 올림픽파크포레온(포레온) 재건축 조합에 따르면 공공임대를 제외한 약 1만1,000가구 중 이달 7일까지 입주 시기를 확정한 가구는 6,100가구 정도다. 이 가운데 연내 입주를 확정한 가구는 약 4,000가구로, 연말까지 두 달 가까운 시간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입주 가구는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포레온은 오는 27일부터 입주를 시작한다.
최소 4,000가구 이상이 입주를 위해 잔금 대출을 이용할 예정이지만, 1금융권의 포레온 잔금대출 취급 내용은 이달 초에야 확정되기 시작했다. 먼저 6일에는 KB국민은행이 입주 예정자를 대상으로 연 4.8% 수준(5년 고정형 기준)의 잔금대출을 시작한다는 안내문을 발송했다. KB국민은행의 포레온 잔금대출 한도는 3,000억원이다. 11일에는 하나은행이 고정 금리 최저 4.64%, 변동금리 최저 5.09% 수준의 금리로 잔금대출을 실시한다고 알렸다. 하나은행의 포레온 잔금대출 한도 역시 3,000억원이다. 같은 날 NH농협은행도 연 4.80% 고정금리 상품을 판매한다고 밝혔다. 다만 NH농협은행의 포레온 잔금대출 한도는 2,000억원으로 KB국민·하나은행보다 낮은 수준에 책정됐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지 못한 은행도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 한도 500억원 수준의 잔금대출을 판매할 계획으로 알려졌으며, IBK기업은행은 포레온 잔금 대출 여부를 확정하지 못했다. 신한은행은 금융채 5년물 금리에 1.5%를 더한 대출을 실시하는 방안이 유력하지만,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올해는 해당 상품을 판매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처럼 입주가 불과 보름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대부분 은행의 금리나 대출 규모가 확정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인 일로, 통상 대단지 아파트는 입주 시점 한 달 전부터 금리가 정해지고 은행들의 소비자 유치 경쟁이 시작된다.
이처럼 시중은행들이 포레온 잔금대출의 세부 내용 확정에 어려움을 겪은 데는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기조 영향이 짙게 작용했다. 총 1만2,000여 가구 규모의 포레온은 입주 관련 대출만 최소 1만 건 이상 체결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연말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 중인 은행 입장에선 낮은 금리를 책정할 경우 소비자가 몰려 대출 잔액 급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8월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를 초과한 은행의 경우 내년 영업에 제약을 주는 페널티를 예고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입주 예정자들의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현재 거주 중인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에서 대출이 막혀 포레온 입주 날짜를 정하지 못한 탓이다. 당초 12월 이사를 계획했다는 한 입주 예정자는 “당장 내일모레 이사 날짜를 정해야 하는데, 금리를 비교하는 건 고사하고 대출 자체도 불확실해 일반 분양자들은 속이 탄다”며 “그나마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도 한도가 적거나 금리가 높아 아예 입주를 미루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내년 대출 완화 기대감 솔솔
입주민 사이에서는 내년 1월이면 지금보다는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은행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기준이 연간 단위인 데다, 포레온 입주 기한도 내년 3월 말까지인 만큼 은행 입장에선 이러한 기준이 초기화된 다음에 대출을 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은행의 실적 관리 차원에서도 포레온은 놓칠 수 없는 ‘황금어장’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총 85개 동, 12,032세대에 달하는 포레온은 전체 대출 규모만 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 은행이 둔촌주공 입주 예정자에 대한 조건부 전세대출 재개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전망에 힘을 싣는다. 조건부 전세대출은 소유권이 바뀌는 집에 대한 전세대출로, 전세 세입자를 구해서 이들로부터 받는 전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거래에 주로 이용된다. 하지만 조건부 전세대출 가운데 상당수가 갭투자에 이용되는 등 대출 폭증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KB국민·신한·우리은행 등은 한시적으로 조건부 전세대출을 취급하지 않고 있다. 현재 시중 은행 가운데선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만이 포레온 입주 예정자들을 상대로 조건부 전세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일각에선 포레온 잔금대출 규모가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적은 규모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포레온 재건축 조합에 의하면 일반분양 기준 잔금대출 규모는 3조원가량이다. 이는 일반 잔금과 후취담보대출 금액을 모두 합한 것으로, 여기에 기존 조합원들의 이주비와 분담금 납부를 위한 대출까지 더하면 3조원 정도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체적으로는 둔촌주공 재건축 대출시장 규모가 6조원 수준에 형성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조합 관계자는 “8조원이라고 하는 것은 다소 과장되고 와전된 것 같다”며 “일반분양 중 대출을 받지 않는 가구도 있을 테니 최종 대출 수요는 이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2금융권 4.2% 변동금리 일주일 만에 ‘완판’
포레온 입주자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찾아 2금융권을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시중은행의 잔금대출 관련 내용 확정이 늦어진 데다, 최근 발표된 내용에서는 비교적 높은 금리가 제시된 탓이다. 일례로 포레온 집단대출을 취급하는 광주농협 용주지점의 경우 연 4.2%대 변동금리 상품이 불과 일주일 만에 모두 소진되며 입주 예정자들의 높은 관심을 방증했다.
이는 1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 2금융권 등으로 소비자들이 몰리는 ‘풍선 효과’의 대표적 사례로, 주택담보대출 시장 전체의 흐름이기도 하다. 실제로 11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10월 가계부채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2조7,000원 증가하며 전월(3,000억원 감소) 대비 크게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은 3조6,000억원 늘며 전월(6조1,000억원 증가)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세 대응 차원에서 올해 남은 기간 2금융권에도 가계부채 관리계획을 마련할 것을 지시할 방침이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가계대출을 확고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되, 그 과정에서 서민·취약계층에 과도한 자금 애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균형감 있게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