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美 ‘상업용 부동산’, 은행권 위기로 이어질까
샌프란시스코 중심부 오피스 빌딩 공실률 약 31% 수준 미 연준 보고서도 상업용 부동산 ‘대출 상환 리스크’ 경계 원인은 달라진 근무 환경, 일부 회사들은 여전히 ‘재택근무’
재택근무 환경이 유지되는 가운데 다수의 전문가가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또한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인한 상업용 부동산의 대출 상환 리스크를 언급하며 경계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상업용 부동산 침체가 미국 은행권 위기의 다음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올해 들어 급격히 상승 중인 공실률
8일(현지 시간) 미국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보도에 따르면, 현재 샌프란시스코 사무실 공간 가운데 약 1,840만 평방피트가 사실상 공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약 92,000명의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체 오피스 빌딩 면적의 약 31% 수준이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올해 공실률은 급격히 상승 중이다. 지난해 1분기 샌프란시스코의 공실률은 11.6%였으며, 팬데믹 이전 2020년 초에는 고작 4%에 불과했다.
일부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 하락도 심각한 수준이다. 부동산 데이터 기업 트레프(Trepp)에 따르면, 지난달 테일러 가 25번지에 위치한 오피스 빌딩은 지난해보다 1/3 토막으로 가치가 하락했다. 이 건물은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WeWork)의 철수 이후 공실률이 무려 97%에 이르며 사실상 빈 건물이 됐다.
한편 현지 업계는 현재 시장이 임차인들에겐 매력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부동산 평가회사 리앤어소시에이츠(Lee&Associates)의 CEO 코디 콜먼은 “지난 10년간 역사적으로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높은 임대료율을 자랑해 왔으며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오피스 임차인들은 건물주에 대한 어떠한 교섭력도 가지지 못했다”면서 “임차인들에게 지금 시장은 엄청난 기회”라고 강조했다.
미 연준 “상업용 부동산, 부실 가능성 낮지만 위험 요소 있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우려가 제기되자 연준도 지난 8일 ‘2023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인한 공실 등 상업용 부동산 문제를 경계하고 있지만, 당장 시장에서 제기한 침체 수준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금리의 급격한 상승이 부동산 회사들이 대출 만기가 도래할 때 재융자를 받지 못할 수 있는 리스크를 늘린다”고 언급하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가 상승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연준은 (상업용 부동산에 대해) 전면적인 경고보단 적당한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연준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 실적에 대한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관련 대출 집중도가 높은 중소형 은행에 대한 검사 절차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연준의 평가와는 반대로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맨해튼 등 다른 대도시에서는 샌프란시스코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부동산 전문 통계 회사 코스타그룹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오피스 가운데 공실률은 12.9%로 지난 2000년 집계 시작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부동산회사 콜리어스도 “지난 4월 한 달 동안 뉴욕 맨해튼 사무실 임대 시장에서 150만 평방피트가 임대됐다”고 밝히며 “이는 지난 3월보다 8% 감소한 것이며, 전년 동기 대비 44% 감소한 것”이라고 전했다.
팬데믹 이후에도 여전한 ‘재택근무’ 문화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팬데믹 이후 달라진 기업 내 근무 환경이 꼽힌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비중이 높아졌고 이것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오피스 건물들은 소위 빅테크로 불리는 IT 기업과 스타트업들이 투자금으로 임차료를 지불하며 기업 규모를 늘려온 공간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이 기업들이 여전히 재택근무 환경을 유지하거나, 구조조정 등으로 고용을 축소하면서 사무실 등의 고정비용을 줄이게 됐다.
오피스 빌딩의 공실은 결국 이들과 연결된 백화점, 상점 등 주변 상권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샌프란시스코의 대형 쇼핑센터 내 대표적인 입점사 노드스트롬 백화점가 점포 폐쇄를 결정했으며, 대형 쇼핑센터의 나머지 상점들에도 인적이 드문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해부터 이어진 시장의 고금리 기조가 미국 상업용 부동산 부진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부분은 5년 변동금리 및 25년 만기상환 구조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30년물 모기지 금리가 6% 중후반대에 이른 상황에선 대환대출이 어려운 데다, 대환대출이 허용되더라도 이자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부진이 은행권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상업용 부동산 기업 대다수가 미국 내 중소형 은행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미 연준 발표에 따르면 현재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약 60%를 은행이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63%는 자산 1천억 달러(약 132조4천억원) 미만의 중소은행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올해 상업용 부동산담보증권(CMBS)의 만기가 도래함에 따라 그 규모 또한 확대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트레프 등 현지 업계 분석에 따르면 내년까지 도래하는 대출 만기 규모는 약 1조 달러를 웃돈다. 이는 곧 만기 도래 시 고금리로 이자 부담이 늘어난 부동산 회사들은 자산이 강제 매각되거나 부동산 가치의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지 업계에선 이러한 리스크가 다시 중소 은행들의 부메랑으로 돌아와 금융권 시스템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