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값 갚으려 또다시 대출받는 이용자들, ‘대환대출 플랫폼’ 도입에 증가세 꺾이나
주요 카드사 대환대출 잔액 전년 대비 33.14% 늘어나 대환대출 잔액 늘어도 ‘연체율 수치’에는 반영 안 돼 대환대출 플랫폼 도입에 중·저신용자 몰린 특정 금융사 ‘부실 위험’ 높아질 수도
올해 카드사 대환대출 잔액이 무섭게 늘어나고 있다. 이는 대출 이용자들의 상환능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신호로, 가계대출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기존 대출을 다시 대출로 막기 때문에 이자율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만큼 중·저신용자 중심으로 부실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올해 들어 카드론 연체 돌려막는 현상 급증
29일 카드 업계에 따르면 7개 주요 카드사(신한, 삼성, KB국민, 현대, 롯데, 우리, 하나카드)의 대환대출 잔액은 4월 말 기준 1조2,385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9,302억원 비교하면 33.14%(3,083억원) 늘어났다. 카드론 대환대출은 카드사가 카드론 연체자를 재평가해 상환할 자금을 다시 대출해 주는 상품이다. 대출 만기가 다가왔음에도 상환 여력이 부족한 차주를 위해 카드사가 제공하는 일종의 구제 장치다.
카드론 대환대출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증가하다 올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지난해 대환대출잔액 평균상승률은 1.26%에 그친 반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 말까지 평균상승률은 4.77%를 기록했다. 올해 1월과 4월 7.5%씩 증가하며 기울기가 커진 것이다.
대출 금리도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현재 주요 카드사의 카드론 평균금리는 13~15%로,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 발생 이전 평균 금리가 연 12%대를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 대환대출을 이용한 차주는 상환을 위해 이전보다 더 높은 이자율로 대출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일부 카드사 부실위험에 노출될 우려 ‘증폭’
대환대출 증가세가 빨라짐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도 적지 않다. 우선 가계 재무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 장기적 데이터로 볼 때 한번 연체됐던 고객이 다시 연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환대출이 연체율에 적절히 반영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기존 대출을 연체한 이용자가 대환대출을 이용하게 되면 연체율에는 대환대출을 제외하기 때문에 그간의 연체 내역이 반영되지 않는다. 실제 주요 카드사 7곳의 올해 1분기 연체율이 1.1~1.35%로 집계됐지만, 대환대출을 포함한 연체율은 낮게는 1.24% 높게는 1.8%에 달할 정도로 차이가 있다.
이에 카드 업계에선 건전성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A 카드사 관계자는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대환론을 통해 연체를 상환하고 분납을 신청하는 고객들의 숫자가 지난해보다 4배 가까이 빠르다”면서 “일부 카드사들은 현금서비스나 리볼빙 등을 줄이는 추세로 돌아서면서 부실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카드사들의 대출태도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회사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올 2분기 카드사들의 대출태도는 ‘-7’을 기록했다. ‘0’을 기준값으로 대출태도지수가 양수면 대출태도 완화, 음수면 대출태도 강화로 해석된다. 이 같은 현상은 대출금을 회수해야 하는 카드사 입장에선 대환대출이 늘어난다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환대출 플랫폼’ 출시, 금융권 내 미칠 영향은?
오는 31일부터 53개 금융사와 23개 대출 비교 플랫폼 업체가 참여하는 대환대출 인프라 서비스가 시작된다. 금융 업계에 따르면 대환대출 플랫폼에는 시중은행은 물론, 저축은행과 카드사 등 2금융권도 참여한다. 금융소비자들은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신용등급에 적합한 최저금리 상품을 비교함과 동시에 기존 대출을 타 금융사의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다.
이자율 경쟁을 통해 고금리 기조 속 고통받는 서민들의 대출 부담을 낮추겠다는 것이 이번 정책의 추진 배경이다. 이에 따라 가계 재무건전성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란 예측이 나오지만, 대환대출 이용자 등 중·저신용자들이 특정 금융사에 몰려 부실 위험이 높아지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 보험사, 카드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선 대환대출 플랫폼이 자신들의 건전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며 플랫폼 출시를 반기고 있다. 최근 연체율이 상승함에 따라 이탈하는 차주가 증가하게 되면 오히려 연체율 감소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환대출 플랫폼 구상안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2금융권 내에선 중·저신용 차주의 이탈 가능성을 우려하며 반발의 목소리가 높았다.
다만 문제는 중·저신용자들이 대출 금리를 낮게 책정한 특정 금융사에 쏠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부 대환대출 이용자가 갈아타기를 한 경우 연체율에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고금리 기조가 지속된다면 사실상 몇몇 금융사가 ‘시한폭탄’을 짊어지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이뿐만 아니라 중·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집중될 이들 금융사가 2금융권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현재 보험사, 저축은행, 상호금융권 등의 2금융권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함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등의 문제를 겪고 있으며, 특히 지난달 저축은행의 연체율과 부실채권 모두 5%를 넘어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