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한국 운용사는 ‘을’, 출자자는 ‘갑’
미국·한국 LP 지갑 닫히면서 조급해진 GP 투자 시장 위축 우려한 정부 지원 이어지고 있으나, 체감 안 돼 절박한 GP들의 LP 향한 생존 ‘몸부림’
경제 침체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한국 가릴 것 없이 GP(운용사)가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으면서 ‘LP 상전 모시기’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미국 GP의 경우 잠재적인 손해를 감수하고도 투자금 유치를 위해 LP 친화적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GP의 경우 그간 금기시됐던 LP를 대상으로 한 ‘평일 골프 라운딩 접대’가 성행하고 있다.
자금 조달에 차질 빚는 미국 GP
최근 미국 LP(출자자)들이 펀드 조건 협상에서 GP보다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 펀드 관계자는 “요즘 들어 위축된 자금 조달 시장에서 펀드 매니저들은 ‘을’이 된 반면, ‘갑’이 된 LP 중심으로 협상 테이블이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속되는 경제 하방 압력으로 인해 투자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펀드 간 투자자 자본에 대한 경쟁이 심화하면서 GP에서 LP로 이른바 ‘권력’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사모펀드(PEF) 실적은 밸류에이션 하락과 차입비용 증가로 인해 약세를 보였다. 벤처투자 정보기업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2022년 4분기 글로벌 PEF는 -0.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한편 지난해 거래 성사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투자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일부 GP는 LP들에게 관리 수수료를 덜 받는 대신 투자 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요청까지 하고 있다.
한국 GP, 미국과 상황 유사해
한국의 GP 상황도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1분기 금융기관을 포함한 LP의 벤처투자 규모는 911억원으로, 전년 대비 88.5%(6,983억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국내 VC 업계의 한 벤처캐피탈은 시장 축소로 인해 당초 펀드 목표액인 1,000억원 달성을 포기하고 절반 수준인 500~600억원으로 목표치를 낮추기도 했다. 이에 벤처 산업의 과도한 위축을 우려한 정부가 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을 풀고, 은행의 벤처펀드 출자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등 관련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그간 성행했던 ‘대한민국 투자 열풍’이 사그라지면서 운용 업계의 실상이 드러난 것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수년간 막대했던 유동성 흐름에 올라타 속칭 ‘돈잔치’를 벌여왔던 GP가 최근 거시 경제 침체로 인해 LP를 중심으로 한 투자 유치금이 고갈되면서 드디어 거품이 꺼지고 본질 가치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미국, 한국 가릴 것 없이 ‘LP 상전 모시기’ 열풍
이처럼 미국, 한국 할 것 없이 투자 업계의 혹한기가 찾아온 가운데, 미국은 자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걸어왔던 GP들이 최근 LP 친화적인 협상 조건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이러한 조항에는 펀드 관리 수수료 축소, 핵심인력 유고 조항, 무과실 계약 파기 조항이 포함된다. 핵심인력 유고 조항이란 투자회사나 운용사가 반드시 LP의 허락하에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을 의미한다. 무과실 계약 파기 조항은 LP가 특별한 사유 없이 GP와 계약을 파기하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을 뜻한다. 즉 어떻게든 자금줄을 붙잡기 위해 GP 입장에서 손해를 보면서까지 불리한 조항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높은 실적을 내는 GP 또한 예외는 아니다. 미국 유수 로펌 K&L 게이츠 파트너 케네스 홀스턴은 “그간 업계에서는 실적이 낮거나 신흥 GP에 한해 무과실 계약 파기가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며 “이제는 최고 실적을 내는 운용사마저도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으며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자금줄 난항으로 인해 절박해진 국내 GP에서는 틈새시장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금리 상황에서 수익률 제고에 힘써야 하는 LP들이 그나마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대체투자 출자 사업’ 채비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투자란 채권이나 주식과 같이 전통적인 투자 상품 대신 부동산, 인프라, 사모펀드 등에 투자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러한 LP 들의 움직임에 GP들은 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LP 심사역들과 접점을 늘리기 위해 연말부터 미팅을 갖는 등 올해부터 격화될 투자금 유치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밑 작업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LP들 사이에선 사실상 금기시 됐던 ‘평일 골프 라운딩 접대’도 심사역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PEF 업계의 ‘큰 손’으로 자리 잡은 MG새마을금고와 GP의 잦은 접대로 큰 논란이 일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이마저도 크게 개의치 않게 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