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연방은행 총재, ‘물가 안정’이 전제돼야 기후 정책 목표 달성한다
물가 낮아야 낮은 이자 부담으로 ‘친환경 정책’에 대규모 투자 가능 기후 정책이 ‘경제 구조’ 바꿔, 분석 및 예측 도구 필요 ‘정부·중앙은행·시장’ 모두가 전문지식 공유해 변화에 대응해야
독일연방은행 총재가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선 먼저 물가 안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물가 시대의 필연적인 고금리 여건에선 친환경 정책에 대한 정부의 투자 부담이 가중된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기후 정책에 따른 금융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시장참여자들의 전문지식 교류와 지속적인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친환경 정책 지속하려면 물가부터 잡아야
요아힘 나겔(Joachim Nagel) 독일연방은행(Deutsche Bundesbank) 총재가 지난 12일(현지 시간) 엘트빌에서 개최된 연방은행 회의에서 ‘기후 변화와 중앙은행’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이날 연설에서는 유로존이 기후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과 기후 정책 전환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변화 등을 다뤘다.
나겔 총재는 먼저 기후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물가 안정이 우선돼야 함을 강조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친환경 정책도 중요하지만,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시대에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제1 목표인 ‘물가 안정’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친환경 정책을 위해서도 물가 안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물가가 이례적으로 높은 경우 (정부와 중앙은행의) 가격 중심의 기후 정책 조치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며 “친환경 정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기 위해선 물가가 낮아야 정부의 부담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효과적으로 정책 집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물가 수준이 낮아야 중앙은행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다시 시장에 저금리 여건을 만들고, 이를 통해 정부는 보다 낮은 이자 부담을 갖고 친환경 산업에 적극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 정책에 따른 경제 기반의 변화
유로존이 선도하는 기후 정책은 기존의 경제 구조를 뒤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ESG로 대표되는 새로운 흐름에 따라 기업들이 재무적, 제도적인 변화에 나서고 있는 점이다.
나겔 총재는 기후변화가 “생산, 인플레이션, 이자율 및 자산 가격 등 우리 경제의 기반이 되는 구조를 변형시키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인구 통계학적 변화에 따라 그러한 변형이 가속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지금 이 변화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새로운 경제 구조는 쉽사리 예측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따라서 이에 맞는 분석과 예측 도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나겔 총재는 무엇보다 민관이 밀접하게 교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기후 변화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정책 결정자, 시장참여자 그리고 대중 모두가 서로 가진 전문지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맥락에서 그간 독일연방은행은 에스테반 로시-한스버그(Esteban Rossi-Hansberg)와 같은 경제학자의 연구에 기여하거나, 유로존 경제의 복잡한 역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 E-MUSE 모델을 개발해 왔다”고 말했다.
기후 정책 전환에 따른 금융 리스크
기후 변화 흐름의 대표적인 정책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도입이다.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정을 체결 이후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고탄소 산업에 자산가치 하락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제조업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다수 제조업 국가에선 이들 산업에 대한 금융 부문의 익스포저(대출·채권·주식) 규모 또한 높아 고탄소 산업 관련 자산가치 하락이 금융시스템 내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리스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나겔 총재는 “독일연방은행은 기후 관련 금융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면서 “특히 (고탄소 산업) 기업 내 보유 채권, 담보 자산, 등의 재무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리스크를 관리하고, 향후에도 이들 기업이 기후 관련 리스크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기업에 대한 재무 정보와 기후 관련 리스크가 투명성 있게 공개되는 환경은 시장참여자들이 올바르게 기업 가치를 선정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면서 “기후 효과가 기업들의 자산 가격과 수익에 더 잘 반영될 수 있도록 꾸준한 제도적 개선을 통해 향후 유로존 금융 시스템의 친환경적인 환경을 이끌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