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전용 신고센터 개설, ‘가상자산 연계 투자사기’ 칼 겨눈다
제도 공백기 틈타 가상자산과 연계된 투자사기 기승 ‘신고센터‘ 개설 및 하반기 집중 신고 기간 운영, 수사기관과 공조 계획 선급금 사기, 펌프 앤 덤프 등 유명인 사칭 및 활용한 사기도 기승
10년간 전 세계 가상자산거래소에 신규 등록된 가상자산은 약 10,000개 이상이며 전체의 가치는 약 2조억 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아직도 가상자산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제가 없다 보니 허술한 감시체계를 노린 사기 범죄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년간 피해액만 5조2,000억원에 이르며, 가상자산 사기로 검거된 인원도 2,150명에 달한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6월 1일부터 ‘가상자산 연계 투자사기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연말까지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 업계에서는 ‘고수익 보장’을 미끼로 실체가 보이지 않는 투자형 광고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 지금, 금감원의 ‘신고센터’가 금융소비자들의 금전적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련 법 시행 전 ‘선제 대응’
금감원에 따르면 가상자산 연계 유사 수신 투자 피해는 2022년 199건으로 2021년(119건) 67.2% 급증했다. 시장이 침체했던 지난해에도 1조192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아울러 올 1분기 신고 건수만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47.2%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투자사기 급증의 원인으로 불투명한 가상자산 상장 기준과 더불어, 방치된 현행법을 꼽는다. 이에 금감원은 “현재 국회에서 가상자산 관련 입법 논의가 계속되고 있으나 가상자산과 연계된 다양한 형태의 투자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 법 시행 전이라도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고 전담 신고센터의 설치 배경을 설명했다.
금감원은 6월 1일부터 7개월간 집중 신고 기간을 통해 투자사기에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응할 예정이다. 신고 접수 시 수사가 필요한 사항은 검찰 등 수사기관과도 긴밀히 공조하고, 금융소비자에게 전파해야 할 사항은 경보를 발령해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게 금감원의 계획이다. 또한 접수된 신고 정보와 수사기관 통보 상황 등을 수시로 점검해 가상자산 관련 제도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가상자산 연계 투자사기 사례
올해 1분기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80% 넘게 오르면서 가상자산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는 투자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에 ‘코인 투자’, ‘가상화폐 투자’를 검색하면 알고리즘에 따라 온갖 관련 광고들이 뜬다. ‘고수익 원금 보장’, ‘대기업 총수도 투자’와 같은 자극적인 섬네일은 일확천금의 꿈을 안은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한다.
이런 투자자들의 심리를 이용한 사기 피해도 점점 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 유튜브에서 ‘대기업이 직접 개발’, ‘400% 이상 고수익 가능하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고 B씨에게 상담 요청을 했다. 자신을 투자자문회사 소속 담당자라고 소개한 B씨는 ‘프라이빗 세일 물량’을 확보했다며 A씨에게 저가 매수를 유도했다.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B씨의 말에 현혹된 A씨는 천만원을 입금했으나, 이후 B씨는 잠적했다.
또 다른 피해자 C씨는 지난해 12월 해외거래소 소속 직원이라는 D씨로부터 카카오톡 주식리딩방 손실 보상을 가장한 전화를 받았다. D씨는 도용한 신분증과 위조 명함을 제시하고 조작된 시세 그래프로 C씨를 현혹했다. D씨는 C씨 명의로 여러 건의 대출을 받아 C씨 계좌로 입금했고, 조작된 지갑 사이트의 코인 입금내역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대출금을 송금할 것을 요구했다. 코인 지갑에 안심한 C씨는 결국 D씨에게 대출금 1억원을 송금했으나, D씨 역시 연락이 두절됐다.
점점 발전하는 가상자산 연계 투자사기 유형
유사수신 투자사기 방식은 시장의 발전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 초창기인 2014년부터 2017년까지는 다단계 투자를 거쳐 암호화폐 시장 채굴기 사기가 성행했고, 2017년부터는 거래소 상장 사기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다 2019년 증권형 토큰(STO)이 주목받으면서 실물자산과 연계한 수법이 주를 이뤘고, 2020년 이후에는 완성형 코인 투자사기가 유행하면서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나 신 알고리즘 가상자산을 판매하는 방식 등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기 유형은 ‘선급금 사기’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성행되고 있는 방법으로, 자금을 받아 가상화폐가 상장할 때 수익금을 돌려준다는, 투자를 빙자한 사기다. 사기조직들은 소셜 미디어 등의 광고를 통해 투자자들을 모집하거나 소셜 미디어에 유명인과의 친분이나 재산을 과시하면서 사람들을 현혹한다. 암호화폐는 송금에 제한이 없고 주소가 익명화돼 있는 만큼, 이러한 특징을 악용해 투자자금을 받고 도주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펌프 앤 덤프(고점 매도)’ 유형도 있다. 이는 허위 정보를 유포해 주식 가격을 끌어올린 뒤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사기 수법으로, 주로 시가총액이 낮고 소규모 거래소에 상장돼 있으며 유동성이 부족한 코인의 공동 투자를 유도한다. 우리나라는 이른바 ‘리딩방’으로 투자자를 모집하고 특정 급등을 유도한다. 펌프 앤 덤프 역시 선급금 사기 유형처럼 유명인을 사칭하거나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본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례도 있으며, 유명인이 직접 급등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부 관련 제도가 미흡한 탓에 발생하는 일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18년 미국의 인터넷 보안 솔루션 기업 맥아피(McAfee)의 설립자 존 맥아피가 트위터 언급으로 버지(XVG) 코인을 급등시킨 사건이다. 테슬라 최고 경영자인 일론 머스크도 지난 2021년 도지코인을 트위터로 언급하며 시세 급등에 일조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최근 내부거래 혐의를 추가해 고소장을 제출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다단계 사기 유형(폰지 사기)’은 가장 흔한 투자사기 유형이다. 이들은 좋은 기업에 투자해 매달 원금의 10~20%에 달하는 수익금으로 준다고 약속하고, 실제론 다음 투자자의 돈으로 수익금을 지급하는 사기 수법을 쓴다. 그러다 일정 수 이상의 투자자가 동시에 투자금 환수를 요청하거나 신규 투자자를 모집하지 못할 경우 약속한 돈을 지급하지 못하고 파산해 막대한 손실을 입힌다.
최근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가상자산으로 인한 신흥 부자가 쏟아지는 만큼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노린 한탕주의에 물들어 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투자자의 탐욕이 존재하는 한 투자사기는 언제고 다시 일어나기 마련이다. 특히 가상화폐와 같은 신기술 영역은 사기범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다. 그런 만큼 금융당국의 이번 투자사기 신고센터 설치는 만시지탄에 불과하다. 금융당국과 사법당국은 유사수신에 대한 집중 단속과 더불어 감시 체계를 강화하고, 관련법 계정 또한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