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증권성’ 입증에 속도 내는 검찰, 국내 가상화폐 시장 침몰의 기로

테라-루나 사태에 자본시장법 적용한 검찰, 증권성 입증 위해 美 판례·논문 등 총동원 지금껏 마땅한 처벌·규제 방안 없었던 가상화폐, 증권성 인정되면 ‘규제 울타리’ 갇힌다 SEC ‘증권성 규정’ 이후 흔들린 美 가상화폐 시장, 국내 시장도 동일한 전철 밟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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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테라-루나 발행사인 테라폼랩스 공동 창립자인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가 구속 영장 심사를 받은 가운데, 검찰이 ‘테라·루나 폭락 사태’ 재판의 최대 쟁점인 가상화폐의 증권성 입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검찰은 루나 코인의 증권성을 입증하기 위해 재판부에 가상화폐 관련 논문, 가상화폐의 증권성을 인정한 미국 법원의 판결문 등을 증거로 제출할 예정이다. 지난 6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가상화폐 증권성 규정’ 당시 물러서 사태를 관망하던 국내 가상화폐 시장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가상화폐는 ‘증권’인가?

테라-루나 사태는 국내 수사기관에서 가상화폐를 증권으로 판단, 자본시장법을 적용해 기소한 최초 사례다. 그동안 국내 시장에서 가상화폐는 ‘증권’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가상화폐 상장·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논란이나 인위적인 거래가 조작 등을 처벌할 법적 잣대도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가상화폐를 증권으로 볼 경우 테라-루나 사태는 물론, 수년간 업계에서 횡행한 가상화폐 상장 관련 사기 및 가격 부양 등이 모두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로 인정될 수 있다.

검찰은 루나 코인이 테라폼랩스가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한 상품이며, 투자자가 수익을 분배받을 권리를 얻는 투자 상품이라고 봤다. 결국 루나 코인이 증권과 동일한 성격을 띠는 상품이라는 논리다. 테라 프로젝트의 사업 성과가 루나 코인의 가치에 반영된다는 점 역시 투자 계약과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신현성 전 대표 측은 가상화폐는 증권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신 전 대표는 두 차례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일관되게 “코인은 자본시장법에서 규제하는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금융위원회는 상품이 △일정 기간 경과 후 투자금 상환이 가능한 경우 △투자를 통해 금융상품의 가치가 상승하면 수익을 분배받는 경우 △투자자의 수익에 사업 활동이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등을 증권성의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진=unsplash

증권성 입증 위한 검찰의 움직임

검찰은 가상화폐의 증권성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 수집에 힘쓰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단성한)은 최근 미국 뉴욕 남부지방법원의 가상화폐 ‘리플’ 관련 판결문 번역본을 수령했다. 당시 뉴욕 남부지방법원은 리플 자체의 증권성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리플이 기관 투자자들에게 판매될 때는 증권의 성격을 띤다고 봤다.

한편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은 지난달 31일 테라폼랩스와 설립자 권도형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가상화폐는 증권”이라며 “판매 방식에 따라 증권 여부를 구분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뉴욕지방법원의 ‘가상화폐는 일반 대중에게 증권이 아니다’라는 판결을 정면 반박, 가상화폐는 판매 방식과 관계없이 증권으로 간주된다고 판결한 것이다. 검찰은 해당 판례 역시 재판부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김은경 이화여대 WTO법센터 연구원이 작성한 ‘가상화폐의 자본시장법상 법적성격에 관한 고찰’ 논문도 법원에 제출하기로 했다. 2021년 9월 투고된 해당 논문에서 김 연구원은 리플 소송의 결과를 예측하며 “미등록 가상화폐를 구매하는 것은 코인 발행사와 공동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며 “투자자들이 가상화폐를 구매한 후 발행 주체가 가치를 창출시켜 가상화폐의 가치가 증가할 것을 기대하게 돼 (가상화폐는) 증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사진=unsplash

테라-루나 사태에 국내 가상화폐 시장 운명 달렸다

가상화폐를 증권으로 본 국내 판례가 생길 경우 국내 코인 시장은 무시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지난 6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를 증권법 위반으로 기소하고, 이들이 상장한 총 19종의 코인에 대해 ‘증권성’이 있다고 규정한 이후 미국 가상화폐 시장 전반이 침체한 바 있다.

미국 내에서 가상화폐의 증권성이 인정될 경우 대부분 가상화폐가 SEC 관리 범위에 속하게 되고, 이전보다 강한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실제로 이를 악재로 판단한 투자자들이 시장을 대규모 이탈했고, 미국 가상화폐 시장은 눈에 띄게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가상화폐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 6월 13일 기준 전체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1조584억1,258만 달러(약 1,347조8,884억원)로 집계됐다. SEC가 바이낸스를 제소한 6월 5일 대비 117조원 이상 급감한 수준이다.

당시 국내 가상화폐 시장은 SEC가 증권성이 있다고 판단한 가상화폐가 국내 시장에서도 증권성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찰의 주장에 따라 우리나라 법원이 가상화폐를 증권으로 판단할 경우, 앞으로 국내에서도 가상화폐가 주식과 함께 자본시장법의 규제와 보호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가상화폐 개발업체나 거래소에 ‘주식’에 준하는 투명성 및 거래 기준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이번 재판의 결과에 사실상 가상화폐 업계 전체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의견마저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