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하는 러·우 갈등과 OPEC의 추가 석유 감산 조치로 촉발되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
곡물, 원유 가격 상승에 다시 고개 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박 최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공격, OPEC의 추가 감산 조치가 원인으로 꼽혀 미 연준의 기준 금리 인상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최근 격동하는 국제 정세로 국제 원유·곡물 가격이 상승세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됐던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재점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같은 배경에 힘입어 아직 근원 인플레이션을 완벽하게 잡아내지 못한 미 연준이 추가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도 대두된다.
국제 원유·곡물 상승세 전환, 전문가들 “미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국제 유가가 훌쩍 뛰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지난 4일 거래된 서부텍사스원유(WTI) 9월물 종가는 전일 대비 1.56% 오른 82.82달러(약 10만8,668원)로, 6주 연속 상승 추세를 유지하며 5월 초 장중 배럴당 63.5달러(약 8만3,324원)에 비해 석 달 만에 약 30%가량 올랐다. 한편 런던ICE거래소의 브렌트유 10월물 가격 또한 6주 연속 오르며 이날 배럴당 86.24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WTI와 브렌트유 모두 종가 기준으로 지난 4월 12일 이후 최고치를 달성했다.
국제 곡물가도 상승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5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7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3.9로 전월(122.4) 대비 1.3% 올랐다. 또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FIS)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CBOT소맥(적색연질밀) 가격은 부셀당 640달러(약 84만원)로, 지난 5월 30일 최근 52주간 최저가격을 기록했던 부셀당 591달러(약 77만원)보다 8.2% 올랐다. CBOT 대두유 가격은 2일 종가 기준 파운드당 67.31달러(약 9만원)로 연초 대비 6.51% 오른 수준이다. 원당 가격의 경우 뉴욕상업거래소 2일 기준 파운드당 24.2달러(약 3만원)로 전월 대비 3.77% 상승했고 연초보다 22.84% 올랐다.
시장에선 최근 격동하는 국제 정세로 인해, 올 들어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던 국제 원유·곡물 가격이 상승세로 전환된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먼저 원유의 경우, 미국의 긴축 기조가 막바지가 이르렀다는 전망이 자리 잡고 있는 데다, 중국의 적극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 등에 힘입어 원유 수요가 크게 늘 것이란 전망 속에 산유국이 원유 감산 조치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또한 곡물의 경우 지난 4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수출항이자, 곡물 수출의 중심지인 노보로시스크를 공격하면서 공급망이 위축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긴축 가능성을 점친다. 지난 7월 FOMC에서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최소한 근원 인플레이션이 2025년까지는 2% 안팎으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다소 매파적인 발언을 내놓은 데다, 여기에 국제 원유·곡물 가격이 상승 국면으로 접어듦에 따라 인플레이션의 향방이 불투명해졌다는 예측이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공격으로 흑해 곡물 수출 당분간 금지될 전망
전문가들은 이번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공격이 국제 원유·곡물 가격 상승을 크게 견인한 것으로 분석한다. 우크라이나 군은 지난 4일 무인 드론을 이용해 러시아 흑해 주요 수출항인 노보로시스크를 공격했다. 문제는 노보로시스크가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2%를 수출하고 있고, 심지어 곡물 수출의 중심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공격이 원유 및 곡물 가격의 갑작스러운 상승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실제 우크라이나의 공격 소식이 전해진 직후 밀 선물 가격은 2.8%가량 급등했다.
일각에선 이로 인해 러·우 갈등이 심화돼 자칫 ‘흑해 곡물 수출’이 완전히 막히기라도 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재점화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전 세계 최고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이 중단됐고, 이에 국제 곡물 가격이 폭등하자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 하에 러시아와 ‘흑해 곡물 수출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다 지난 7월 17일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곡물 협정 중단을 선언했고, 이에 따라 밀 선물 가격은 3% 오르는 등 위기가 재현될 조짐이 나타났다. 그런 와중 이번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원래 나빴던 러·우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아 당분간 아예 흑해 수출이 금지될 가능성이 대두된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크로아티아 항만을 통해 곡물 수출 해상로를 우회하는 등 곧바로 대안 조치를 취했으나, 추가 경유에 따라 발생하는 운송비용에 의한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OPEC의 추가 감산 조치, 과연 가격 폭등으로 직결될지는 지켜봐야
한편 석유 수출국 기구(OPEC)가 지난달부터 시작된 하루 100만 배럴의 석유 감산 조치를 9월 말까지 연장하는 것은 물론, 감산 폭을 추가로 늘리겠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대목 또한 국제 원유 가격의 상승 전환을 도운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일 관영 사우디 프레스 에이전시(SPA)는 “추가 감산을 통해 국제 석유 시장의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자발적 석유 감산 조치의 의미를 밝혔으나, 시장에선 해당 발언이 최근 중국의 부양책 및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의 동결 등으로 원유 수요가 늘 것이라는 기대하에 가격 인상을 통해 이득을 취하겠단 OPEC의 계산이 깔린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OPEC의 이같은 조치가 과연 과도한 원유 가격 폭등으로 직결될지는 의견이 갈린다. 사우디가 국제유가를 끌어 올리기 위해 대규모 원유 감산 조치를 벌였던 올 7월 당시, 미국이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 대규모 증산을 나서면서 국제 유가의 폭등을 막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7월 10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사우디는 지난해 9월 하루당 1,100만 배럴에서 올 7월 900만 배럴 수준까지 낮췄으나, 미국이 자국 수요를 충당하고 남은 잉여분의 원유를 유럽으로 수출하면서 글로벌 원유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현재 미국은 2018년 석유를 자국 암석에서 분리하는 과정을 개발한 셰일 혁명으로 사우디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원유 생산국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당 1,180만 배럴을 기록했던 지난해 7월 대비 90만 배럴이 증가한 현재 1,270만 배럴로, 2020년 3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특히 텍사스주가 하루 540만 배럴 생산을 담당하면서 전체 생산 증가를 크게 이끌고 있다. 이러한 미국이 국제 원유 시장에서 버텨주고 있는 만큼, OPEC의 횡포에도 어느 정도 국제 원유 가격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