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후폭풍] 디지털 뱅크런과 은행 시스템의 변화

SNS 기반 뱅크런, 금융시장의 위험요소로 대두 은행 거치지 않고도 빠르게 자금을 보낼 수 있어 연쇄 파산 등 막기 위한 은행 시스템 개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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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토이미지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대규모 예금인출로 인한 자본 잠식으로 파산했다. 캘리포니아 금융당국이 유동성 부족과 지급 불능을 이유로 직권 폐쇄 조치한 이후 SVB는 유동성 대책을 발표했지만 결국 36시간 만에 파산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연쇄적인 뱅크런과 파산을 막기 위해 비보호예금을 지원하고 기금을 조성해 유동성 위기에 처한 은행들을 신속히 지원했지만 이후 두 달 동안 4개의 은행이 파산하거나 매각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은행시스템의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뱅크런, 전통적 방식보다 규모가 크고 빨라 

최근에 발생한 디지털 뱅크런은 전통적인 방식보다 규모가 크고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 은행의 신속한 대응이 어려웠다는 점에서 은행 시스템 개편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의 은행 시스템은 금융기구와 관련 법제의 변화, 컴퓨팅과 데이터 처리 기술의 발전, 빈번한 금융위기와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된 정책들이 결합해 형성됐지만 시스템만으로 파산을 막을 수 없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은행의 평균 파산확률은 1~2%로 다른 산업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은행이 세계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뱅크런을 예방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 요인은 현재 은행 시스템에 내로우 뱅킹(Narrow Banking)과 부분지급준비금제(Fractional Reserve Banking)가 혼재돼 있다는 점이다. 내로우 뱅킹은 모든 은행 업무가 아닌 결제, 예금의 제한된 업무만 수행하는 방식으로, 지급결제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예금을 단기 국·공채 등 안전하고 유동성 높은 자산에만 운용한다. 부분지급준비금제는 특정 규모의 현금만 확보하면 되기 때문에 예금을 모기지, 창업자금 대출 등 위험한 거래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이렇게 두 가지 방식이 은행 시스템 내 공존할 경우 은행의 투자손실이 예금자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은행은 보편적인 업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대출 상환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으로 건전성이 악화된 대출의 손실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서비스와 투자·대출 기능 분리해 안정성 강화 

이에 대한 첫 번째 해결책은 은행의 기능을 내로우 뱅킹과 부분지불준비금제로 분할해 일반 금융 서비스와 대출 업무를 분리하는 방안이다. 이는 지난 1933년 대공황으로 이어진 금융시스템 붕괴 이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것을 골자로 도입된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과 유사한 방식이다. 내로우 뱅킹의 경우 지급, 결제와 관련한 제한적인 업무만을 수행하면서 그 수수료 수익에 의존하기 때문에 다른 은행의 뱅크런 사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로우 뱅킹의 수익을 부채와 분리된 계정으로 관리할 경우, 내로우 뱅킹의 자금은 투자은행의 손실로 인한 고객의 청구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은행이 대출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일상적인 업무는 지속될 수 있으며 일반 고객들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7일 취임 1주년 맞이 기자회견에서 ‘디지털 뱅크런’과 관련한 유동성 위험 대응 체계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사진=금융위원회

투자은행, 예금 인출 제한 조치로 유동성 위기 방어

두 번째 해결책은 뱅크런에 대한 투자은행의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대형 투자은행들은 예금자가 한 번에 인출할 수 있는 금액을 제한함으로써 뱅크런을 방어할 수 있으며, 이러한 조치는 법적인 구속력을 가진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회사인 블랙스톤도 이같은 장치를 활용한다. 블랙스톤은 수익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어느 정도 유동성을 포기하더라도 예금 인출 제한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러한 조치들은 블랙스톤이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여론이나 특정 이슈로 촉발된 뱅크런을 방어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예금 인출을 제한해 은행이 유동성에 여유를 가지게 되면 장기 대출상품과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연방정부가 구제한 기업들 대부분은 대출금 상환을 위해 자산을 매각함으로써 유동성을 확보해 파산을 막을 수 있었다.

금융당국, 사전예방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 실시해야

마지막 해결방안은 금융당국이 현재의 연례 감사와 스트레스 테스트 대신 지속적인 디지털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파산, 인수 등 은행의 투자 가치가 크게 훼손될 가능성을 줄여 준다. 은행은 적어도 하루 한 번 이상 내부 시스템을 통해 자금 현황을 장부로 정리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감사인들은 실시간으로 문제를 감지할 수 있다. 이같은 방식의 자금 현황 감사는 잘못된 경영방식을 개선하는 동시에 위험요인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만일 지난 3월 Fed가 SVB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했다면 SVB의 투자 손실에 대해 대중들보다 빨리 인지했을 것이고, SVB는 충분한 유동성 및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벌금·과태료 등을 부과해 악화된 부채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책임과 동기를 부여했다면 뱅크런 사태를 사전에 방어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 들어 전 세계 금융시장에는 국가 차원의 디지털 화폐가 도입되는가 하면, 인공지능 전문가가 금융을 관리하고 있으며, Fed의 실시간총액결제(RTGS)방식 소액결제시스템인 페드나우(FedNow)와 같은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있다.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자금을 빠르게 유통시킬 수 있는 시장이 조성된 것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디지털 금융 서비스로 인해 자금의 흐름이 빨라지고, 소셜미디어로 인한 뱅크런이 가중될 우려가 큰 만큼, 이를 대비하기 위한 은행시스템의 개편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