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우량 기업의 상장 활성화하겠다”는 스팩 상장의 본래 취지는 어디 갔나, 이제는 꼼수만이 남았다
스팩 상장의 ‘사각지대’ 유의해야 삼프로TV, 해당 제도 악용해 기업가치 부풀렸다는 의혹 제기 언제나 손해보는 건 개인 투자자
최근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상장의 기존 취지에서 벗어나 제도의 사각지대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단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스팩 상장에 베팅한 개인투자자들이 과도한 리스크를 지게 된다는 분석이다. 스팩 상장은 IPO(기업공개) 직상장과 달리 기업가치평가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이뤄져 거품이 낄 여지가 크게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스팩 상장 특성상 기업 내부자들 사이에서 ‘스팩 사기’로 대표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스팩 상장의 허와 실
28일 기준 국내 증시에 상장된 스팩은 총 82개로, 올해 들어 스팩 상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분위기다. 스팩은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증시에 상장된 일종의 유령회사를 의미하는데, 스팩 상장이란 여기에 합병 대상을 붙여 우회상장의 길을 열어주는 제도다. 여건상 IPO 직상장이 어려운 비상장 우량기업의 상장을 활성화하고, 개입투자자의 인수합병(M&A) 시장 참여를 도모하는 게 본래 제도의 취지다.
그런데 취지와 달리 IPO 시장에서 부적격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은 ‘애매한’ 기업들이 저의를 숨기고 문을 두드리는 시장이 됐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스팩 상장이 급증하는 가운데, 해당 상장 과정에서 진행되는 기업가치 산정 방식이 불투명한 점을 악용해 기업들이 가치를 ‘뻥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IPO 직상장과는 달리 기업 가치 평가의 비교군이 없어 이해관계자 간 단순 합의에 따라 몸값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상장을 원하는 기업은 시장 관계자들이 반대하지 않을 수준의 기업 가치만 제시해도 문제가 없다.
상장을 원하는 기업 외에도, 스팩 구조상 어떤 기업이라도 합병에 성공하기만 하면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막대한 이윤을 남길 수 있다. 특히 스팩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는 수수료를 두 번 챙길 수 있다. 먼저 스팩이 처음 상장할 때 증권사는 공모 금액의 일정 부분을 인수 수수료로 챙길 수 있다. 또한 합병 상장에 성공하면 컨설팅 명목으로 합병 대상에게 자문 수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이렇듯 증권사는 스팩을 많이 상장시켜야 돈을 벌기 때문에 사업성, 재무구조를 엄밀히 따져 펀더멘탈이 탄탄한 기업을 유치하기보다 부실해도 합병 성공 의지가 높은 기업을 우선적으로 찾는다.
금융업계에선 스팩 상장을 통해 알게 모르게 기업 내부자들이 상당한 차익을 챙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미국에선 ‘스팩 사기’가 소송으로 번지로 늘면서 스팩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5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스팩 상장한 460여 개 회사에서 제출한 내부자 주식 매도 공시를 분석한 결과, 주가가 붕괴하기 전 내부자들이 총 220억 달러(약 29조원) 규모의 주식을 내다 판 것으로 나타났다.
스팩 상장 통해 기업 가치 뻥튀기한 기업?
이런 가운데 스팩 상장의 ‘사각지대’를 악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기업이 있다. NH스팩25호를 합병하기로 한 이브로드캐스팅(삼프로TV)이다. 삼프로TV는 구독자 수 233만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경제 유튜브 채널로, 기존 케이블 채널 경제 방송과는 다른 부드러운 진행과 차별화된 경제 콘텐츠 제공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최근 스팩 상장 과정에서 미래 실적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추정하고 자회사 가치도 과도하게 높게 잡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선 IPO 시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데다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이브로드캐스팅이 우회 상장을 택했다는 평가다.
이브로드캐스팅의 1주당 합병가액은 3만4,623원으로 산정됐으며, 이를 기준으로 한 상장 시가총액은 2,501억원 수준이다. 주당 평가액 3만4,623원을 기준으로 김동환 이브로드캐스팅 의장의 지분(31.04%) 가치만 약 758억원에 달한다. 이브로드캐스팅이 합병으로 얻게 되는 공모 조달 자금이 50억원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과도하게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브로드캐스팅의 현재 기업가치는 IPO 직상장으로는 절대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삼프로TV 기업가치가 YTN(3,100억원)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을 누가 인정해 주겠느냐”고 우려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브로드캐스팅의 최근 실적과 비교해 기업가치가 다소 과하게 산정됐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순이익 기준 이브로드캐스팅의 PER(주가순이익비율)은 약 42배로 동종 비교기업으로 거론되는 SBS(3.36배), KNN(16.5배), 한국경제TV(10.24배), 티비씨(18.67배)보다 훨씬 높다.
또한 회계법인은 이브로드캐스팅의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데 활용되는 미래 EBIT(당기순이익에서 이자 손익과 세금을 공제한 부분)를 △2023년 39억원 △2024년 147억원 △2025년 232억원 △2026년 334억원 △2027년 452억원으로 추정했다. 이는 향후 해당 기업이 4년간 연평균 85%씩 성장해야 나올 수 있는 수치다. 삼프로TV의 매출 수익원의 절반 이상이 광고 수익이며, 국내 광고시장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평균 85% 성장은 무리한 가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6년까지 국내 인터넷 광고시장은 연평균 10% 안팎의 성장이 예상된다.
삼프로TV의 성장 전략인 해외 진출을 너무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과도한 기업가치 산정의 근거다. 삼프로TV는 미국 유튜브 채널인 ‘삼프로 TV 글로벌’을 별도 운영 중인데, 29일 기준 해당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6,780명이다. 수익모델 추정에서는 올해 30만 구독자 수를 돌파하고, 2027년까지 50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중동, 인도네시아, 인도, 유럽, 브라질 등을 겨냥한 해외 유튜브 채널들을 만들어 총 해외 구독자 수 3,700만 명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자회사들의 가치 역시 다소 높게 반영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브로드캐스팅의 비영업가치 740억원 중 13억원이 종속기업의 가치에 해당한다. 업별로 △언더스탠딩 77억7,300만원 △아웃스탠딩컴퍼니 21억2,800만원 △피치덱 16억9,200만원 △페이지2북스 15억5,100만원 △유에스스탁 2억4,900만원 등이다. 이 중 언더스탠딩의 당기순이익은 9,138만원에 불과하고, 이를 포함한 자회사들의 총 당기순손실은 7억4,800만원에 달한다. 보유하고 있으면 되레 손해만 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스팩 상장에 숨겨진 저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이브로드캐스팅이 재무적투자자(FI)들의 투자금 반환을 위해 스팩 상장을 통해 무리하게 가치를 부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이브로드캐스팅은 총 4번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주당 발행가액은 모두 4만8,332원으로 총 기업가치는 3,400억원에 달한다. 이브로드캐스팅 입장에선 상장 시가총액이 적어도 3,400억원 이상은 나와줘야 FI들에게 투자자금을 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금리 기조에도 이브로드캐스팅이 스팩 상장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이브로드캐스팅이 투자금 반환을 위한 자금 조달이 급하다는 위 지적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스팩 상장의 매력 중 하나가 합병에 성공하면 높은 기업가치의 합병회사로 재상장하면서 ‘대박’을 노려볼 수 있고, 합병하지 못하더라도 ‘은행이자’ 수준은 챙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준금리가 상승하면서 시중은행 예금금리가 스팩예치 이자율을 넘어서면서 스팩의 매력이 줄어든 모양새다. 즉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는 스팩 시장을 이브로드캐스팅이 고집하고 있는 것은 모두 이유가 있다는 주장이다.
부풀려진 기업가치는 개인 투자자에게 리스크로 전가된다. 특히 이브로드캐스팅이 고평가 상태로 상장할 경우 개인 투자자들이 FI의 투자회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업가치가 FI에 유리하게 부풀려지다보니 상장 후 주가가 연일 하락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스팩 합병 상장 한 10개 기업 중 기준가보다 주가가 오른 곳은 라온텍, 슈어소프트테크 등 두 곳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개인 투자자들이 개인총회에서 스팩 합병을 반대함으로써 합병을 부결시키고, 투자 원금과 이자를 받는 쪽을 선택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합병 결의가 철회된 스팩은 총 7개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