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갈등] 美 반도체 규제에 반도체 ‘독립’ 꿈꾸며 대규모 자금 투입하는 中, 가만히 있던 韓은 ‘먹거리 산업’ 뺏길 지경
반도체 ‘독립’ 위한 중국의 필사적 노력 미국 반도체 규제가 오히려 중국 반도체 ‘독립’의 동력 된 것이라는 지적 문제는 미국, 중국이 성공적으로 반도체 자국 생산하면 한국의 ‘먹거리 산업’ 잃게 되는 꼴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 압박을 느낀 중국이 반도체 자립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가 반도체 웨이퍼 회사 ‘런펑반도체’에 총 126억 위안(약 2조3,000억원) 투자를 결정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025년 중국의 웨이퍼 시장점유율이 두 자릿수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자급자족’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이로 인해 반도체 설계 및 수출이 주 먹거리 산업인 우리나라 기업 또한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국영 투자금, 반도체 웨이어 ‘자체’ 생산 기업 런펑 반도체로 대거 유입
중국 경제 매채 차이신에 따르면 17일 상하이증시 상장사인 CR마이크로 이사회가 자회사 런펑반도체에 대한 국영투자펀드의 지분 투자 안건을 최종 승인했다. 이번 지분 투자가 성사되면 런펑반도체의 자본금은 기존 24억 위안(약 4,400억원)에서 150억 위안(약 2조7,400억원)으로 증가한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자립’을 위해 조성한 대표적인 국영투자펀드인 빅펀드는 런펑반도체 지분의 25%를 인수할 예정이며, 그 외 4곳의 국영투자펀드들도 지분 인수에 참여했다.
이번 투자의 주인공인 런펑반도체는 CR마이크로가 지난해 선전에 설립한 자회사다. CR마이크로는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 및 생산까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올라운드’ 기업으로, 매달 6인치 웨이퍼 23만 장과 8인치 웨이퍼 14만 장을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다. CR마이크로는 “선전에 12인치 웨이퍼 생산시설을 설립하기 위해 런펑반도체에 자금 조달을 계획했다”며 이번 투자의 배경을 밝혔다.
런펑반도체는 지난 2월에도 CR마이크로부터 23억 위안을 투자받았으며, 이번 투자까지 통틀어 총 220억 위안 상당의 자본으로 선전 웨이퍼 생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런펑반도체 관계자는 “자동차 및 산업용 장비에 사용되는 40나노 이하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데 자본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이처럼 공적 자금을 쏟아 자국 반도체 산업 역량을 키우고 있는 것은, 미국의 반도체 중심 대(對)중국 규제로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제로부터 고립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과 네덜란드를 제재에 동참시키며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부품 수출을 규제한 바 있으며, 지난 9일에는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등 중국의 첨단 산업에 대한 미국 자본의 투자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에 맞서 중국도 ‘홀로서기’를 위해 반도체 자립을 추진 중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국영 및 반도체 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자체 기술 개발을 도모하고, 비첨단 부문에 집중해 자급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국이 실제 반도체 자립 목표를 달성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내놓는 중국 반도체 산업 특성상 핵심 부품 및 설비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기엔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산업 ‘자급자족’을 위한 중국 정부의 움직임
빅펀드는 중국 재정부와 중국 담배 등 국영기업이 협동 출자해서 2019년 10월 설립됐으며 등록자본금 규모만 2,041억 위안(약 36조7,4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펀드다. 이번 런펑반도체 지분 투자 이외에도, 빅펀드는 자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광범위한 투자를 통해 기초체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빅펀드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약한 고리인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투자를 늘리는 등 반도체 ‘자립자강’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빅펀드는 중국 반도체 기업 38개사에 투자했으며, 전체 투자금액은 530억 위안(약 9조5,400억원)에 육박한다.
예컨대 지난 6월 28일 빅펀드는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비상장업체 화홍반도체에도 설비 투자 지원을 위해 30억 위안(약 5,4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또한 지난 1월에는 화홍반도체의 40억 달러 규모 투자 프로젝트에 11억6,600만 달러(약 1조5,700억원)를 출자키로 밝혔다. 빅펀드는 중국 상장반도체 기업에 대한 투자도 확대했는데, 올 1분기 말 기준 7개 반도체 기업에 대해 총 140억 위안(약 2조5,2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중국 정부는 미국 반도체에 의존하지 않는 대규모 인공지능(AI) 모델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은 화웨이·알리바바·바이두 등 정보기술(IT) 기업 직원들의 합동 연구를 통해, 자체 수급이 가능한 구형 반도체 기반의 최첨단 AI 기술 고도화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WSJ는 “중국이 현재 반도체 관련 AI 하드웨어 확보에 차질을 빚고 있는 만큼, 소프트웨어적인 해법을 통해 AI 기술 발전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미국 규제가 되레 중국의 반도체 산업 독립 및 성장 밀어준 꼴 아니냐는 지적도
이에 따라 일각에선 미국의 중국 반도체 산업 규제가 역으로 중국의 기술 독립과 자체 성장을 촉발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이와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나라는 지난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인해 결국 불화수소와 포토레스트를 국산화한 바 있다. 즉 ‘위기’를 ‘기회’로 바꾼 셈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반도체 규제가 중국의 반도체 산업 국산화를 유도해 결과적으로 중국이 미국, 한국, 대만의 반도체 산업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글로벌 반도체 강자로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를 위해 중국은 지난 2014년부터 1,387억 위안(약 26조원)의 대규모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일례로 ‘관세 전쟁’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반중 체제가 본격적으로 처음 시작된 2018년에 중국은 2차 투자를 감행했다. 앞서 살펴봤듯 올해엔 중국이 대규모 공적 자금을 대거 투입하는 등 웨이퍼 반도체 시장 규모를 키우겠단 의지를 굳건히 보이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2025년까지 관련 시장의 규모가 400억 위안(7조1,516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 A씨는 “현재 중국이 반도체 산업생태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가고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향후 웨이퍼 시장에서의 중국의 점유율은 더욱 확대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 국산화가 성공하면 우리나라 또한 적잖은 손해를 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은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칩스법)을 통해 기존 반도체 ‘설계를 넘어 ‘생산’까지 정복하려는 야욕을 보이고 있는데, 중국마저 반도체 자국 생산으로 사업의 중심축을 옮기게 되면 현재 반도체 생산 및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우리 기업의 먹거리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