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 성지’로 떠오른 화성·평택, 전세가가 매매가 추월하는 ‘기현상’까지
수도권 갭투자 급증, 화성에선 전셋값이 매맷값 뛰어넘기도 “시장 상승세 확신할 수 없어, ‘전세대란’ 올 가능성 염두에 둬야” ‘묻지마 투자’ 열풍에 한은 “투자에 유의해야” 입장 내비쳐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입)가 급증하고 있다. 올해 초까지 꽁꽁 얼어붙었던 아파트 가격이 5월 이후 상승세를 지속하면서 ‘집값이 바닥을 다졌다’고 보는 수요자가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서울에서는 송파구와 강동구, 강남구 중심으로 다수의 갭투자가 포착됐으며, 경기도에서는 지난해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던 화성시와 평택시가 갭투자의 성지로 떠올랐다. 시장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만큼 무리한 투자가 깡통전세(경매 등을 이유로 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있는 물건) 같은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개발 호재 집중된 평택, 작년 큰 하락세 기록한 화성은 반등 기대
4일 부동산 데이터 분석기관 아실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8월까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갭투자가 이뤄진 지역은 경기도 화성시로 집계됐다. 이 기간 화성시에서 체결된 5,145건의 매매계약 중 갭투자는 332건이다. 이는 전체 계약의 6.4%에 해당한다. 이어 평택시(241건), 시흥시(223건), 인천시 연수구(223건), 성남시 분당구(220건) 등의 순을 보였다. 이 가운데 성남시 분당구는 전체 계약의 약 11.8%가 갭투자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규모 정비사업이 다수 진행 중인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아실은 아파트 매입 후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지 않고 전월세를 놓은 계약을 갭투자로 분류한다.
갭투자는 매매가와 전셋값 차이가 5,000만원을 넘지 않는 단지를 중심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전셋값이 집값 회복세보다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며 투자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 결과 화성시에서는 무자본 갭투자까지 포착됐다. 화성시 우성읍에 위치한 미성102단지(전용면적 76㎡)는 6월 9,500만원에 거래됐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 1억원에 전세 세입자를 들였다. 이 외에도 평택시 현덕면에 영흥아파트(전용면적 59㎡)는 지난 6월 7,500만원에 거래된 후 7월 6,400만원에 전세를 들였으며, 평택시 용이동 평택용이금호어울림1단지(전용 67㎡)는 7월 2억9,350만원에 매매된 뒤 8월 2억8,000만원에 기존 전세 세입자와 갱신계약을 맺었다.
지역별 특성으로는 개발 호재가 많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지역에 갭투자가 몰리고 있다. 반도체 특화 단지로 지정된 후 외지인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평택시가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평택시 외지인 투자 비율은 6월 기준 534건으로 전체 투자의 22%에 달했다. 올해 1월 186건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불과 5개월 사이 3배 가까이 뛴 것이다.
서울에서는 강남권을 중심으로 갭투자가 늘고 있다. 가장 많은 갭투자가 포착된 곳은 송파구로, 전체 거래 1,506건 중 175건이 갭투자로 확인됐다. 이는 전체의 11.6%에 해당한다. 이어 강동구 (162건·12.3%), 강남구(145건·11.0%), 노원구 (131건·9.4%) 등 순을 보였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강남권 생활 인프라를 누리면서도 방이동, 거여동, 마천동 등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지역이 많다는 점이 송파구 갭투자 증가를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투자 금액은 5억원 이하가 다수를 차지했다. 실제로 지난 7월 새 주인을 찾은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84㎡)은 8월 전세 보증금 16억9,500만원에 세입자를 들였다. 집주인은 2억5,000만원을 투자해 20억원에 가까운 아파트를 산 셈이다.
전문가들은 갭투자 성행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인 대출 금리와 전세가 하락 리스크가 여전한 만큼 역전세(기존 전세보증금보다 시세가 하락해 갱신 시 돌려줘야 하는 금액이 더 큰 경우)나 깡통전세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갭투자가 성공하려면 전세가와 매매가가 동시에 올라야 한다”며 “5년 미만의 단기적인 접근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갭투자에 유리한 시장 환경, 하락기엔 ‘대란’ 예고
사실 경기 남부 지역에 집중된 갭투자 증가 현상은 올해 초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1월부터 3월까지의 조사에서도 화성시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갭투자를 기록하면서다. 이 기간 화성시는 100건의 갭투자를 기록했으며, 평택시는 66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들 갭투자 가운데는 매맷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90%에 육박하는 등 통상 위험 수위로 판단하는 70%를 훨씬 웃도는 사례가 대부분으로 확인됐다. 당시 화성시 한 공인중개소 대표는 “쌓여있던 급매물이 소진되고 집값이 조금씩 오를 기미가 보이자 갭투자 매물을 찾는 투자자가 급증했다”며 “집값이 꾸준히 오른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부동산 시장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으면 전세금을 반환하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우후죽순 쏟아질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대부분 지역의 거래 규제가 완화되는 등 부동산 시장이 갭투자에 유리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갭투자를 비롯한 투자 거래도 투기가 아닌 시장의 일부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전세 사기가 급증하고 시장 참여자들의 우려가 커지자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집주인이 집을 사고파는 데 제재를 가할 방도를 고민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상태다. 정치권에서는 보증금을 제3자에게 예탁하는 에스크로 제도, 집주인의 자기자본 비율이 30%를 넘도록 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한은 총재 “가계부채 줄이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 절실”
부동산 시장이 갭투자 등으로 과열됐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한국은행(이하 한은)에서도 이례적으로 투자에 유의하라는 메시지를 내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4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0여 년간 금리가 1% 안팎으로 굉장히 낮았다”며 “지금 젊은 세대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낮은 금리를 기대하며 집을 샀다면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발언은 올해 초까지 주춤했던 가계대출 규모가 증가하며 부실 위험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올해 2분기 주택담보대출은 14조원 넘게 증가하며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1,863조원에 달했다.
이 총재는 이에 앞서 지난달 22일에도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해 경기를 부양하는 것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보인 바 있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한 이 총재는 “미시적 부동산 완화 정책을 환수하고 조정해야 한다”고 말하며 “일단 가계부채 흐름을 조정해 보고,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거시 정책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국가 경제가 제로 성장이 되면 그때는 이미 손 쓰기가 어려운 만큼, 늦기 전에 정책 의지를 가지고 성장률에 집중해 디레버리징(빚 줄이기)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