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금리 동결’ 이후 연이어 추락하는 英 파운드화, “연말까지 하락 전망 우세”

투자자들 “지난 통화정책결정회의 이후 향후 통화정책 불확실성 높아져” 국제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 자극, ‘킹 달러’ 시대 재현될 조짐 달러 강세에 주변국 통화가치 하락, 엔·위안화보다 ‘원화’ 가치 하락폭 더 커

160X600_GIAI_AIDSNote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했고, 그 추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파운드화에 대한 매수 포지션을 매도 포지션으로 바꾸기 시작하면서 월가에선 올 연말까지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가 지속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최근 국제유가 급등에 따라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미 연준의 긴축 기조가 유지될 거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달러 강세가 재개되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 통화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BOE, 인플레이션 둔화에 ‘금리 동결’ 결정

BOE는 지난 20일 이달 통화정책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5.25%로 깜짝 동결했다. 금리동결과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 의견이 5대4로 팽팽하게 갈렸지만, 캐스팅 보트를 쥔 앤드루 베일리 총재가 동결을 선택했다.

예상보다 둔화된 소비자물가지수(CPI)가 금리 동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날 발표된 영국의 8월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7%로 1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급격히 완화되자 추가 금리인상 전망도 약해진 셈이다. 앞서 BOE는 8월 인플레이션이 7.1%까지 상승한 뒤 오는 10월을 기점으로 약 5%로 급락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다만 BOE는 향후 추가 긴축이 필요하다는 기존의 가이던스를 유지했다. BOE는 성명을 통해 “긴축이 노동시장과 실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들이 증가하고 있다”면서도 “통화정책위원회는 임금 상승 및 서비스 가격 인플레이션을 포함해 경제 전반의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력과 회복력 징후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파운드화 투자자들, ‘매도 포지션으로 변경 추세

블룸버그의 집계에 따르면 24일(현지 시간) 종가 기준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1.2241달러로 금리 동결 발표 이후 0.71% 하락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깜짝 금리 동결 선언과 함께 향후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BOE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탓이다.

BOE의 금리 동결 이후 파운드화 약세에 베팅하는 글로벌 투자자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파운드화에 대한 매수 포지션을 매도 포지션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월가의 한 자산운용사 소속 환율 분석가는 “지난해 리즈 트러스 내각의 재정 정책을 불신했던 시장참여자들이 이번에는 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해 불신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1년 전 영국 총리로 취임한 트러스는 법인세를 대폭 낮추고, 최고 부유층의 세금 부담을 줄이는 감세안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 같은 부자 감세 정책은 영국 전역이 내수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기대보단 우려를 샀다. 실제로 이는 파운드화가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치고, 국채 금리가 치솟는 등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계속되는 반대 여론에 부딪힌 트러스는 결국 취임 45일 만에 불명예 사임을 했다.

월가에선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가 앞으로도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례로 글로벌 투자은행 RBC 캐피탈마켓은 올 연말까지 달러 대비 파운드 가치가 5% 가까이 더 하락해 파운드당 1.17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헤지펀드나 자산운용사 등의 포지션 변경 움직임이 시장 전역으로 확산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25일 오후 4시 기준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출처=xe.com

킹 달러앞에 무너지는 한·중·일 통화가치

달러 대비 통화 가치 하락은 영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최근 국제유가가 재차 급등하며 ‘킹 달러’ 현상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의 급등에 따라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한 미 연준의 통화긴축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달러화 강세를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2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22일 105.58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3월 9일 105.31 이후 반년 만에 다시 105를 넘어선 것으로, 불과 2개월 전 100을 하회했던 점을 고려하면 극적인 반전으로 볼 수 있다.

일본과 중국은 달러 대비 통화가치가 급락하자 정부가 노골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지난 9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7년 넘게 이어온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해제 가능성을 언급하며 추락하는 엔화 가치에 제동을 걸었다. 인민은행도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위안화 가치 하락을 저지하기 위한 환율 방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속적인 하락세를 막기 위해 한은도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매도하면서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중국보다 통화가치 하락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8일 발표한 ‘2023년 8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7월 말부터 이달 8일까지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4.4% 하락했다. 이는 같은 기간 엔화(-3.7%)와 위안화(-2.6%)의 하락 폭을 웃도는 수치다. 장기간의 수출 부진과 차이나 리스크 때문이다.

국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세 국가의 통화 모두 달러 대비 위험자산으로 분류되지만, 원화는 특히 위안화나 엔화보다 더 위험자산 성격이 강하다”면서 “국내 경제에 대한 펀더멘털 요소가 약화되거나 반대로 미국의 펀더멘털 요소가 강화되는 시점에는 원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고, 이에 따라 주식과 채권 등 국내 증권시장에서 외국인들의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간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