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中 ‘저가’ 철강재 공습에 정신 못 차리는 국내 철강업계, “심지어 환율도 안 도와줘”

값싼 일본, 중국산 철강재에 내수 시장 흔들리는 한국 원화 가치 절상하면서 수출품 가격 오른 것도 국내 철강업계 위축에 한몫 일각에선 무역 제재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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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발(發) ‘저가 고품질’ 열연강판이 한국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열연강판은 전기강판, 냉연강판 등 거의 대부분의 판재류 소재로 쓰이는 주요 철강재다. 여기에 중국 철강 업계도 한국 수입 철강 시장으로 대거 발을 들이면서 국산 철강 업계가 크게 흔들리는 모양새다.

이는 사실상 지난해 여름부터 지속됐던 흐름으로, 수입 철강재가 줄고 철강업계가 호황을 누렸던 2021년과는 다소 상반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반전된 상황의 일부 원인이 외환 당국의 달러 환율 방어 움직임에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산 열연강판 수입량 급증

20일 업계에 따르면 올 1~8월 일본산 열연강판 수입량은 155만3,000톤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44%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올 일본 열연강판 총수입량 전망치를 240만 톤으로 보고 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수입량(166만8,000톤)보다 44% 늘어난 수치다. 이로써 국내에 유통된 외국산 열연강판 중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8%로 전년 동기 대비 5%포인트 증가했다. 중국산 비중의 경우 같은 기간 41%에서 40%로 떨어지면서 일본산과 격차를 키운 모습이다.

이는 엔저로 인해 고품질인 일본 열연강판의 수입 단가가 중국산보다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원·엔 환율은 100엔당 80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2015년 6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일본제철, 고베제강, JFE스틸 등은 엔저 효과에 힘입어 한국에 열연강판을 현지 판매가보다 15% 저렴하게 잇따라 수출하고 있다. 일본산 제품이 급증하면서 올 들어 국내 전체 열연강판 가운데 외국산 비율도 40%로, 지난해 31%보다 높아졌다.

여기에 중국 철강 업계도 한국 수입 철강 시장으로 철강재를 쏟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자국 부동산 경기 침체 등에 의한 내수 시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국내로 들어온 중국산 철강재는 지난해 동기 대비 30% 증가한 527만4,372톤이다. 한국은 중국의 최대 철강 수출국으로, 일본산 철강재의 한국 공습에 이어 국산 철강 업계는 이중 난관에 봉착한 실정이다.

심지어 엔저 현상이 올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철강업체들은 긴장을 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8월 한국은행은 “일본 중앙은행의 YCC(장단기 금리 조작을 통한 양적 완화 정책) 조정에 대한 일시적으로 엔화 강세를 보였으나 정책 결정 이후 강세 폭을 대부분 되돌렸다”며 “일본은행의 양적 완화는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졌던 외국발 저가 철강재의 한국 공습

사실 이는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내내 이어져 왔던 흐름이다. 당시 일본은 자국 내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 철강재 시장 공략 대폭 강화에 나섰다. 내수 부진으로 인한 잉여 물량을 해외로 소화시킨다는 전략이었다. 실제 지난해 1~7월 일본산 수입량은 94만5,000톤에 달해 재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4% 증가해 전체 수입량의 절반을 넘어선 바 있다.

이처럼 자국 상황에 따라 우리나라 시장을 선택적으로 공략하는 일본을 두고, 올해 초 국내 철강 업계에선 경계의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당시 업계 관계자는 “일본 철강사들이 저가 수출을 늘려 내수 시장을 방어하는 한편, 적정 수익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저가 수출을 지속한다면 산업통상지원부 무역위원회에 덤핑방지관세 부과 조사를 신청할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일각에선 일본 및 중국의 저가 철강재 공습에 대한 무역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주변 국가들은 자국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 등에 대한 무역 장벽을 세우고 있다. 특히 지난달 멕시코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를 대상으로 최대 25% 수입 철강 관세를 인상했다. 사실상 중국산 저가 철강재를 겨냥한 조치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또한 중국 등 일부 국가의 철강 과잉 생산을 겨냥, 새로운 관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중국 바오우철강 홈페이지

철강산업 호황 누렸던 2021년과는 대조적인 모습

우리나라 철강 업계의 이같은 상황은 승승장구를 누렸던 시기인 2021년과 심히 대조적이다. 2021년 당시엔 전 세계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서 철강 수요가 높아졌고, 이에 국내 내수시장에 일본산, 중국산 수입물량이 줄면서 국산 철강제품의 경쟁력도 높아졌다. 실제 2021년 1월부터 5월까지의 국내 철강재 수입량은 579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한 바 있다. 전년 철강재 수입은 2019년 대비 26.2% 급감했는데, 여기서 더 줄어들면서 내수 시장 진작에 열기를 더한 것이다.

이는 일본이 당시 코로나19 백신 보급으로 경기 회복의 조짐이 엿보이는 가운데, 2021년 7월 도쿄올림픽을 개막하면서 자국 내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일본산 철강재 가격도 전년 대비 수직 상승하면서 국내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여기에 중국 또한 자국 철강재 수출에 대한 세금 혜택을 철폐한 데다, 철강산업에 대한 전국 단위 조사를 실시해 조강 생산량이 줄면서 국내 철강업계가 큰 수혜를 입게 됐다.

전문가들은 2021년과는 달리 현재 상황이 반전된 원인 중 일부가, 최근 한국이 ‘환율 방어’ 움직임을 취했기 때문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올해 들어 외환당국은 미 연준(Fed)의 매파적인 통화 긴축 기조에 지나치게 달러화가 강세할 것을 우려, 원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시장에 달러를 풀며 시장 개입에 나섰다. 이로 인해 수출품의 가격이 비싸지면서 수출 기반 산업인 제조업, 그중에서도 철강업계의 관련 제품 또한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 6월 한국은행이 공개한 ‘외환시장 안정조치 내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외환 순거래액은 -21억 달러(약 2조8,147억원)로 2021년 3분기 이후 7개 분기째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외화 순거래액은 시장 안정화를 위해 외환당국이 실시한 거래액을 일컫는 것으로, 해당 수치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달러를 시장에 순매도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