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원리금 감당 못 하는 차주 39개월 만에 ‘최대’, 이대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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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은행 연체율 0.43%, 2020년 2월 이후 최고치
가계대출 급증세에 금리 인상도 쉽지 않아
연체 60% 이상 취약차주, 연체율 상승세 가속 전망

국내은행의 대출 연체율이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3년 6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 회복에 열을 올리며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한 영향으로 풀이되는 가운데,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물가 급등까지 겹쳐 국내 경제 전반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43%로 집계됐다. 연체율은 전체 대출 잔액 중 한 달 이상 원리금이 상환되지 않고 있는 잔액의 비중을 의미한다. 국내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은 7월 말과 비교했을 때는 0.04%p 올랐으며,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했을 때는 0.19%p 뛰며 2020년 2월(0.43%) 이후 3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추가 연체율 상승 가능성 있어, 금융권 건전성 관리에 만전”

이처럼 높은 연체율은 매년 8월 수치만 놓고 비교했을 때도 최근 4개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20년 8월 0.38%를 기록한 은행 연체율은 2021년과 2022년 8월 각각 0.28%, 0.24%로 0.3%를 밑돌았다. 통상 은행 연체율은 3월과 6월, 9월, 12월 등 분기 말에 부실채권 정리 직후 낮아지는 양상을 띠는데, 올해 역시 3월과 6월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우상향하는 연체율을 확인할 수 있다.

부문별로는 가계대출 연체율이 전월 대비 0.02%p 늘어 0.38%를 기록했다. 신용대출 연체율은 0.76%로 전월 대비 0.05%p 올랐고, 주담대 연체율은 전월과 비교해 0.01%p 오른 0.24%로 집계됐다. 특히 주담대 연체율은 지난해 8월(0.12%)과 비교하면 무려 2배 가까이 급증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0.47%로 전월 대비 0.06%p 늘었고, 중소법인 연체율(0.59%)과 개인사업자 연체율(0.50%)은 각각 전월 대비 0.08%p, 0.05%p 오르며 전제 기업 대출 연체율 상승을 이끌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국내은행의 연체율이 과거 장기평균 대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향후 추가 연체율 상승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거시 경제 상황과 연체율 상승 흐름 등을 충분히 반영해 대손충당금 적립, 연체·부실 채권 정리 등 금융권의 건전성 관리 강화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기 위축 우려에 금리 인상 망설이는 한국은행

전문가들은 연체율과 함께 증가하고 있는 가계대출 잔액에 주목했다. 통상 연체율 상승은 추가 대출 제한으로 이어져 가계대출 잔액이 감소하게 되는데, 최근의 흐름은 정반대의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8월 말 기준 국내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월 말과 비교해 1조5,912억원 늘어난 680조8,120억원으로 집계됐다. 6월(6,332억원)과 7월(9,755억원)에 비해 크게 확대된 증가 폭이다.

이같은 가계대출 급증의 배경으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살아난 부동산 매수 심리로 인한 주담대 증가가 꼽힌다. 8월 5대 은행의 주담대(전세자금대출 포함) 잔액은 514조9,997억원으로 전월 대비 2조1,122억원 불어났다. 이는 시중 은행의 주담대 잔액만을 합산한 것으로,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 은행들이 주담대 상품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주담대 잔액은 이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은은 은행권의 재정 건전성 강화와 치솟는 물가 상승률 억제 등을 위해 올해 초부터 꾸준히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 중이지만, 정부가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양에 힘을 쏟으며 주담대를 비롯한 가계대출 폭증이 이어지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계대출을 억제하지 않은 채 금리만 인상할 경우, 금리 인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물가 안정의 긍정적 효과 대신 경기 위축이라는 부정적 결과만 낳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에 한은은 지난 2월부터 6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고, 금융권은 높아지는 연체율을 관리할 방안을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 중이다.

연소득 모두 상환해도 연체액 소화 못하는 차주 ‘수두룩’

금융권에서는 새로 발생한 은행 연체액의 상당 부분이 취약차주에게서 발생한 만큼 향후 은행 건전성이 더 크게 위협받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한은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늘어난 가계 대출 연체액의 약 62%가 취약차주로부터 발생했다. 취약차주는 다중채무자이면서 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자를 의미하는 말로, 이들 10명 가운데 3명가량은 연체액이 연 소득을 뛰어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간 소득을 모두 대출 상환에 사용해도 연체액을 모두 소화할 수 없는 셈이다.

연체 전 채무조정(신속채무조정), 이자율 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 채무조정(개인워크아웃) 등 신용회복위원회가 취약차주들을 위한 보호 방안을 다수 마련해 놓고 있지만, 이들 제도 모두국민들의 혈세를 기반으로 마련되는 공적 자금인 데다, 은행의 일부 손해도 불가피한 만큼 금융권을 비롯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도 커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고금리, 고물가 등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연체율 상승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연체율이 글로벌 통화정책 등의 정상화 과정에서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전체 금융시스템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연체채권 상시매각 확대 등 건전성 관리와 손실흡수능력 확충을 적극 유도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