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잡기 위해선 부동산 정책부터 잡아야 한다”, 한은 총재의 작심 발언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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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기조에도 꺾이지 않는 가계 부채 증가세, 대다수 비중은 '주담대'
한은 총재 "가계 부채 증가세 잡기 위해선 윤 정부發 부동산 규제 완화부터 손 봐야"
일각선 정부의 한은 일시차입 두고 "중앙은행 통화정책 독립성 깨져선 안 된다"는 비판도
23일 서울 중구 한은 본점에서 열린 국회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국정감사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고금리 기조에도 잡히지 않는 가계 부채를 두고 “고금리 이전에 현 정부가 부동산 규제 정책을 완화하는 게 우선”이라는 다소 강한 발언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연이은 부동산발 경기 부양 정책을 내놨는데, 이로 인해 실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최근 가계 부채는 크게 증가한 모습이다.

한편 정부는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100조원이 넘는 금액을 한은으로부터 일시 차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를 두고 한은의 통화 정책과 정부의 재정 정책 사이의 독립성이 유지돼야 하는 거시 경제학적 원칙이 위배된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국회 기재부 국정감사에 선 이창용 한은 총재

이 총재는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계부채 급증과 관련, “완화했던 부동산 규제 정책을 현 정부가 다시 타이트하는 게 우선”이라며 “그럼에도 가계부채 증가세가 잡히지 않으면 그때는 심각하게 금리 인상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 총재는 “물론 금리를 더 올리면 가계대출을 잡을 수 있다”며 “다만 이에 따른 금융시장 안정 문제도 고려해야 하고, 물가 상승률도 한때 2.3%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10월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물가 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물가 목표 수준인 2%를 상당 폭 상회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긴축적인 정책 기조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경제 상황 대해선 “미국을 제외하면 다른 선진국 대비 양호하다”며 “소비 회복세가 다소 약한 모습이지만, 수출 부진이 완화되면서 개선되고 있고 내년에도 완만한 개선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당초 한은은 올해 경제 성장률을 1.4%로 전망한 바 있다.

한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올 하반기 우리 경제의 변수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이 총재는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전에는 물가가 연말까지 3% 수준으로 내려오고 내년 더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중동 사태로 그 예측이 비껴가고 물가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유가, 환율 등 변동성 확대로 향후 물가 경로에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계대출 증가세

이 총재의 “기준 금리 추가 인상을 고려하겠다”는 파격적인 발언은 현재 멈출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우리나라 가계대출 증가세를 염두에 둔 것이다. 특히 고금리 기조에도 여전히 ‘빚투(빚내서 투자)’ 현상이 이어지자, 이에 강한 경고를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3%대였던 주요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 하단은 현재 4%대로 일제히 올라선 데다, 상단의 경우 주담대 변동·고정금리 등까지 7%대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금리 공포에도 불구, 가계대출은 계속해서 비대해지면서 금융 불균형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20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담대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4.240~6.725% 수준이다. 한 달 전인 9월 22일(연 3.90~6.49%)과 비교해 하단이 0.34%포인트 뛰면서 4%대로 올라섰다. 신용대출 금리(1등급·만기 1년·연 4.620~6.620%)도 한 달 만에 상·하단이 모두 0.0060%포인트씩 올랐다. 이는 주담대, 신용대출 금리가 주로 지표로 삼는 은행채 1년물, 5년물 금리가 동 기간 각각 0.060%포인트(4.048→4.108%), 0,270%포인트(4.471→4.741%) 상승한 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은행채 등 시장 금리가 오른 이유는 최근 은행채 발행 물량이 증가한 데다 미국과 한국 긴축 장기화 전망이 시장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9일(현지 시간)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2007년 이후 16년 만에 5%를 넘어서면서 시장 금리 상승세는 추후 더욱 강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고금리 기조에도 불구, 가계대출 증가세는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금융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10월 19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은행·하나·신한·NH농협·우리)의 가계대출 잔액은 685조7,321억원으로 9월 말(682조3,294억원)보다 3조4,027억원이나 더 늘었다. 이는 2021년 10월(+3조4,380억원) 이후 2년 만에 최대 증가 규모다. 특히 주담대가 2조6,814억원(517조8,588억원→520조5,402억원) 불었고, 지난달 1조762억원 줄었던 신용대출도 이달에는 8,871억원 반등했다. 만약 이 추세대로 10월 전체 신용대출이 9월보다 늘어날 경우, 2021년 11월(+3,059억원) 이후 1년 11개월 만에 첫 증가 기록이다.

치솟는 가계대출의 근본적 이유는 정부 정책 실패?

금융권에선 가계대출 증가세의 근본적인 이유를 정부의 계속되는 부동산 부양 정책에서 찾고 있다. 일례로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당시 대선 공약이었던 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의 대안으로 ’50년 주담대’ 상품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 “청년층의 내 집 마련 자금을 돕고, 금리인상기에 취약차주의 월 상환액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였다.

기존 가계는 주담대를 신청할 경우 연 소득을 연간 갚아야 할 대출 원금과 이자의 합으로 나눈 값이 40%가 넘지 않는 한도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른바 ‘DSR 40% 규제’다. 그러나 수도권과 서울의 경우 높은 주택 가격으로 인해 기존 주담대의 DSR 한도 하에서 주택을 실소유하기 쉽지 않다는 서민들의 불만이 속속 터져 나오게 됐고, 이를 해결하고자 정부가 초장기 주담대를 선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당초 ‘상생금융’ 의도와는 달리 50년 만기 주담대는 민간 대출 수요를 크게 키웠고, 종국적으로 지금의 가계 대출 증가세의 ‘주범’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는 약 한 달 전인 9월 26일 새로운 부동산 공급대책인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2022년 8월 16일에도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하며 약 270만 호의 주택 공급 계획을 확정했다. 즉 1년여 만에 다시 공급 정책을 내놓은 셈이다. 지난달 발표 내용의 큰 줄기는 공공에서의 물량 확보와 민간에서의 공급 활성화 유도로 나뉜다. 공공 측면에선 3기 신도시 등 공공 택지에서의 3만 호 추가 물량 확보, 신규 택지 발굴, 패스트트랙을 통한 조기 공급, 기존 사업의 공정 관리 및 기존 택지의 지구 지정 등이 포함된다. 한편 민간 측면에선 공공택지 전매제한 한시 완화, 인허가에 대한 인센티브 등 전반적으로 기존 규제의 합리화와 사업 여건 개선에 방점이 찍혀있다.

앞서 살펴봤던 이창용 총재의 작심 발언, 즉 가계부채 급등 대책과 관련해 “먼저 완화했던 부동산 규제 정책을 타이트하게 잡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위 금융권의 주장과 동일 선상에 있다고 봐야 한다. 금융 당국이 고금리 통화 긴축을 이어 나가고 있음에도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건, 지속적인 현 정부의 ‘퍼주기식’ 부동산 부양 정책에 있다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규제 정책을 먼저 조이지 않으면, 가계 부채 급등세를 잡기 위한 한은의 추가적인 통화 긴축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만 된다는 것이다.

야당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 독립성 유지했어야”

한편 23일 국감에선 정부가 한은의 일시차입금으로 세수 부족을 메우고 있다는 야당의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가 올 들어 9월까지 한은으로부터 빌린 일시 대출액은 113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누적 대출액(34조2,000억원)의 3배가 넘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재정증권 발행 절차 등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통화안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시차입을 선택하는 것 아니냐”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다른 방법을 권유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경제 전문가들도 진선미 국회의원과 궤를 같이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중앙은행의 발권력에 의존하면서까지 재정 정책을 펼쳐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입장을 바꿔 말하면 한은 또한 정부에 섣불리 일시차입을 해줘선 안 됐다는 것으로, 즉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정부의 재정 정책은 독립적으로 유지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중앙은행이 정부와의 협의나 간섭 없이 통화정책의 핵심적 수단인 단기금융시장금리 또는 재할인율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으로 정의된다. 중앙은행에 이와 같이 막강한 힘이 부여되는 이유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단기적 국가 경제성장을 꾀하려는 유혹을 통제하기 위함이다. 반면 정부와 정치권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경제정책 목표를 추구하면서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할 가능성이 높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무시했다가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는 튀르키예가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고금리는 만악(萬惡)의 부모”라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경제학의 기본원리와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자신의 정책 논리를 반대하는 중앙은행장은 교체했고, 연 19%이던 기준금리도 14%로 끌어내렸다. 그 결과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에 통화량이 폭증하면서 지난 2021년 1월 튀르키예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8.69% 급등했다. 자국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살인적인 고물가에 민생은 위협받게 됐고, 인바운드 외국인 투자도 튀르키예를 대거 빠져나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