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에 부딪힌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원인은 EU의 아시아나 화물사업 매각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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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내부선 화물사업 매각 반대 여론에 힘 실려
사실상 대한항공 이외 인수 희망 기업 찾기 쉽지 않을 듯
외교적 장애물에 가로막힌 만큼 정부가 길 뚫어줘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합병 과정이 암초에 부딪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가 두 기업 간 합병 조건으로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 부문 매각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현재 화물사업은 아시아나항공의 수익 구조를 상당 부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아시아나항공 내부에서도 매각에 대한 반대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이달 말로 예정된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에서 만약 화물사업 매각 안건이 부결되면, 결국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합병은 최종적으로 결렬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럴 경우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 이외 자사를 사줄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 하는데,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적 사정이 좋지 못한 만큼 선뜻 합병 의사를 밝히는 기업은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에 제동

2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이 오는 30일 이사회를 열어 화물사업 부문 매각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EU 경쟁당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으로 인해 한국-유럽 화물노선에서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며 관련 시정안을 강하게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한항공은 이달 말까지 제출할 시정안에 아시아나항공 화물본부 분리 매각안과 파리·프랑크푸르트·바르셀로나·로마 등 유럽 4개 도시행 슬롯을 일부 반납하는 방안을 담은 바 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노조가 화물사업 부문 매각에 반대하고 나서며 시정안 제출에 문제가 생겼고, 이와 관련해 아시아나항공 내부 측에서 합의점을 찾기 위해 이사회를 열게 됐다는 배경이다.

대한항공 측에선 인수합병을 위해선 아시아나의 화물사업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대한항공도 아시아나항공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하역지연, 항만적체, 낮은 선박 회전율이 겹치면서 글로벌 물류 대란의 반사이익을 봤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실제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kg당 3~4달러에 불과했던 항공 화물운임은 코로나 기간 중 평균 8달러, 최고 12달러까지 치솟았으며,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당시 화물 매출은 전체의 76.7%(3조1,453억원)에 이르렀다.

다만 앞으로의 아시아나항공을 비롯, 항공업계 전반의 화물사업 수익성이 불투명한 만큼 매각의 이유는 충분하다는 게 대한항공의 논리다. 실제 이미 화물사업 실적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귀하고 있는 상황이다. 2021년 4분기 kg당 11.4달러(홍콩-북미 노선 기준)였던 화물운임은 올해 3분기 kg당 4.81달러로 떨어졌고, 아시아나항공의 올해 상반기 전체 매출에서 화물사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5.7%(7,782억원)에 그친다. 이는 사실상 글로벌 흐름으로, 독일 국책항공사인 루프트한자는 올해 2분기 화물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2% 급감했으며, 유럽 최대 항공사인 AF-KLM 역시 2분기 화물매출이 전년 대비 33.2% 줄었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의 노조를 포함한 반대 측에선 EU 집행위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력사업이었던 화물사업이 매각되면, 이는 사실상 아시아나항공이 해체 수순에 들어가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렇게 될 경우 당초 합병 의도였던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목적에도 어긋난다고 봤다. 뿐만 아니라 자칫 매각 결정이 아시아나항공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결론 나면 의사결정자들 중심으로 향후 배임 의혹이 커질 우려도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최종 주인 누가 될까

화물사업 매각을 위해선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만약 이사회가 30일까지 화물 사업 매각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종국적으로는 두 항공사의 합병은 사실상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최근 일각에선 아예 대한항공 인수 무산을 기정사실화하고, ‘제3자 인수자’로 한화그룹을 거론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한화갤러리아 등 호텔·유통·리조트 분야 계열사 및 항공기 부품·엔진을 제작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의 자사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데,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이들과 협업해 고객군 확대 등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한화그룹은 2017년 LLC에어로케이에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하면서 항공업 진출을 시도했다가 아쉽게 실패한 바 있으며, 지난 2019년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결정했을때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인수를 검토하기도 하는 등 항공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항간에서 ‘한화 등판설’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그러나 정작 한화그룹 내부에선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참여할 가능성은 낮다고 선을 긋는 모양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최근 한화오션을 인수하면서 조 단위의 자금을 투입했다”며 “현재는 추가로 사업라인을 확장하기보다는, 한화오션의 경영을 정상화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 이외의 새로운 주인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인수합병 의사를 밝힌 것은 대한항공이 시장 내 우월한 지위를 바탕으로 합병을 통해 가격 조정권을 취득하는 등 국외 항공사 대비 고유한 경제적 해자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지, 사실 대한항공 이외의 여타 기업들에 있어선 아시아나항공 자체의 재무구조만 놓고 보면 합병이 그리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율은 2020년 1,343.8%, 2021년 2,282.3%, 2022년 1,482.0%로 집계됐다. 올해 2분기 기준으로는 1,741.3%로 나타났다. 단기 채무 상환 능력의 척도인 유동 비율(유동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값) 또한 현재 44.6%에 불과하고, 부채 총계 역시 13조732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335억원이 늘었다. 이는 자본 총계의 20.9배에 달하는 수치에 해당한다.

정부가 나서야 할 시

다시 말해 대한항공과의 ‘합병 무산’이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결국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 찾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2019년부터 현재까지 진행했던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은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 채용 등은 멈춰있는 상태가 이어지게 된다. 더욱이 아시아나항공은 누적된 레버리지로 인해 사업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이자비용으로 고스란히 지출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별도 기준 아시아나항공은 회사채와 차입금의 이자비용으로 929억원을 지불하면서, 영업이익으로 2,014억원을 거뒀음에도 불구 601억원의 순손실을 내는 등 이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성사를 위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EU가 인수합병을 가로막는 행동 기저에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대형 국적 항공사의 출범을 견제하는 대외적 의도가 깔려있는데, 이를 단순 기업 수준에서 해법을 찾긴 쉽지 않으니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간 정상이 만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