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25개월 만에 최대폭 증가에도 “가계부채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금융당국
10월 가계대출 6.3조 늘어, 증가폭 전월 2.2배 달해 금융당국 “9월 길었던 연휴 기간 등으로 일시적으로 급증한 탓” IMF 등 국내 가계부채 문제 경고하는 해외 기관 늘어
10월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폭이 2021년 9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증가세도 지난 4월 이후 7개월 연속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은행권 가계부채 잔액이 무려 26.1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금융당국은 누적 잔액이 1,086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상황에도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어 비판이 거세다.
올해 4~10월 가계부채 ‘26.1조원’ 증가
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10월 금융권 가계대출은 6조3,000억원 늘어나며 증가하며 2년 1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달 증가폭(2조4,000억원)보다 2.2배 늘어난 수치다. 가계대출은 지난 4월 이후 7개월 연속 증가 중인 가운데 이 기간 늘어난 금액만 2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2조2,000억원의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로써 한국은행이 파악한 올해 10월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86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가계대출 증가폭을 키운 주범으로 꼽히는 주택담보대출은 같은 기간 35조원 가까이 늘었다. 8월 6조6,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9월(5조7,000억원)과 10월(5조2,000억원) 증가폭이 소폭 둔화하는 추세지만, 주택경기회복과 맞물려 반등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지표상 가계대출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금융위 관계자는 “올해 4~10월 증가폭은 월평균 3조7,000억원으로 과거 9년간 평균 증가폭 7조4,000억원의 절반 수준”이라며 “현 정부 들어서 가계부채 총량이 감소했고,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도 0% 수준으로 가계부채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
금융당국은 지난 9월 이후 길었던 연휴 기간을 가계대출 증가 요인으로 꼽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 9월에 추석 상여금 등으로 신용대출 상환이 많아 기저효과가 크게 나타났다”며 “특히 10월 연휴 기간에 소비가 늘었고, 이사철 비용, 공모주 청약 등 일시적 자금 수요로 신용대출이 증가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해 가는 가계부채는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와 연관이 더 깊다.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과밀된 수도권 주택은 항상 공급이 부족한 국내 최고 우량자산으로 손꼽힌다. 이 때문에 대다수 국민이 이 지역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기 위해 대출을 활용하는 게 열중하고 있다. 미흡한 사회보장제도와 경직된 노동시장으로 대표되는 사회경제구조에서 개인이 택할 수 있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와 선호도가 높지 않은 점도 레버리지를 활용한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인 이유다. 한국 가계의 평균 비금융자산 비중은 2021년 기준 64%로 미국(29%), 영국(46%), 일본(37%)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가장 높다. 이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분할상장과 저배당같이 주주 이익에 관심을 갖지 않는 관행이 뿌리 깊은 탓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번번이 바뀌는 점도 가계대출 증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국민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예상하며, 정권의 성향과 경기 상황에 따라 부동산 투자 기회를 모색한다. 일관되지 않은 정책들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대출을 통한 부동산 시장의 투기화를 이끄는 주요 동력이 됐다.
IMF “한국 GDP 대비 가계부채, OECD 국가 가운데 매우 높은 수준”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29일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전망’을 통해 “가처분소득 대비 평균 160%에 달하는 한국의 가계부채는 OECD 상위 그룹 가운데서도 꽤 높은 수준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토머스 헬블링 IMF 아태 부국장은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거시 건전성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며 “가계가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게끔 유지하고 가계자산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국제금융협회(IIF) 조사에서도 올해 1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2.2%로, 일본(65.2%), 유로 지역(55.8%), 홍콩(95.1%), 영국(81.6%), 미국(73.0) 등 주요국 가운데서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권도 과도한 가계부채를 우리나라 은행권 신용도의 발목을 잡을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달 20일 서울에서 개최된 ‘국내 금융기관의 신용등급 전망 패널토의’에서 “은행의 자체 신용도를 평가할 때 제일 먼저 은행업의 영업 환경이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를 살펴본다”며 “한국 경제를 신용도 측면에서 살펴볼 때 가계부채를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피치의 아시아·태평양 은행신용등급을 담당하는 장혜규 상무는 “요즘 시기에 관찰되는 게 가계부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급여에서 이자를 많이 지출하게 돼 소비 여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라며 “은행이 가계대출뿐 아니라 기업대출 등도 취급하고 있는 만큼 전반적인 영업 환경에서 가장 큰 취약점으로 작용하는 게 가계부채고, 앞으로도 그럴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