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 분리 매각 가결로 한시름 놨다지만, 대한-아시아나 합병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
즉각 인수합병 속도 내는 대한항공 해당 사업 부문을 사줄 '새 주인' 찾기도 사실 쉽지 않은 형국 아시아나항공 노조 측 반발 거센 만큼 풀어야 할 노-사 갈등도 남은 상황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2일 오전에 화물 사업 분리 매각을 최종 가결하면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이사회 가결안 발표 직후 대한항공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시정조치안을 즉각적으로 제출함과 동시에, 아시아나항공에 1조원 규모 채무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인수 합병의 속도를 냈다.
다만 EC 측이 두 기업 간 인수 합병을 최종 승인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시아나항공 노조 측에서 화물 사업 분리 매각에 크게 반발하며 EC에 반대 서명지를 전달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재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을 사줄 마땅한 국내 저가 항공사가 없는 만큼, EC의 문턱을 넘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 1조원 규모 재무 지원
2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이날 오후 1시 30분 EC에 최종 시정조치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이 EC에 제출한 시정조치안에는 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바르셀로나 등 유럽의 4개 중복 노선을 국내 다른 항공사에 넘기는 한편,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부를 분리 매각하는 안이 담겼다. EC는 내년 1월 말 조건부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대한항공이 EC 측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반영한 만큼, EC의 조건부 합병 승인을 받아낼 가능성은 높다고 보고 있다.
이날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1조원 규모의 재무 지원 방안도 밝혔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계약금과 중도금을 포함한 총 7,000억원 인출을 승인해 EC로부터 기업결합 승인을 받을 때까지 운영자금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끔 하겠다고 공시했다. 또 아시아나가 발행하는 3,000억원 규모의 신규 영구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추가 수혈할 예정으로, 대한항공은 계약금 3,000억원 가운데 1,500억원을 이행보증금으로 전환함으로써, EC의 기업결합 승인이 최종적으로 나지 않더라도 아시아나가 상환 의무가 없도록 할 예정이다.
아울러 구체적 합병 계획도 공개했다. 대한항공은 EC 외에도 일본과 미국의 경쟁 당국 심사를 넘어야 하는데, EC로부턴 내년 1월 말까지, 일본 경쟁 당국으로부턴 내년 초까지 심사를 종결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미국 법무부(DOJ)와는 시정조치 방안을 협의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합병의 큰 ‘장애물’ 넘은 대한항공
앞서 EC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으로 인한 유럽 화물 노선 독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관련 시정안을 강하게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한항공은 지난달 말 EC에 제출할 시정안에 아시아나항공 화물본부 분리 매각안 등을 담았으나, 아시아나항공 노조가 화물 사업 부문 매각을 전면 반대하면서 시정안 제출에 문제가 생겼고, 이에 따라 시장에선 3년간 추진해 온 두 기업 간 합병이 사실상 불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이외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이 없는 데다,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이 합병 없이 독자적인 자생력을 갖추긴 어려운 만큼, 아시아나항공도 내부 이사회를 열어 최대한 시정안에 맞추고자 했다.
이번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1조원 규모 재무 지원 방안을 밝힌 시점은 위 언급한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에서 화물 사업 분리 매각안을 최종 가결한 직후다. 즉 대한항공은 합병의 큰 ‘산’을 넘자 이후 절차에 대해 즉각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화물 부문 매각 결정이 곧 EC의 즉각적인 승인을 뜻하는 것은 아닌 만큼, 아직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화물 사업 부문 매각을 가결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은 자사 내부 노조 측의 반발을 잠재워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는 상태다. 일반노조는 EU 집행위 측에 반대 서명지를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 일반노조는 “이사회 직전 진광호 아시아나항공 전무가 사내이사에서 갑작스럽게 사임한 게 가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 이와 관련해 배후에 사측의 외압이 있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며 “화물 사업부 매각이 진행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과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노동자의 고용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반발했다.
정작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 사줄 기업이 없다?
게다가 화물 부문 매각안 가결을 통해 EC 경쟁 당국의 규제를 한고비 넘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인수 희망 기업을 찾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화물 매각과 관련한 EC의 문턱을 최종적으로 넘기 위해선 결국 해당 사업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체계와 노하우를 갖춘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를 물색해야 하는데, 국내 업계 사정상 해당 요건을 충족하는 적격 기업을 찾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설령 적격 기업을 찾더라도, 화물 사업 인수까지 이어질 정도로 국내 LCC들의 인수 여력이 좋진 못하기 때문에 결국 EC측의 최종 승인을 받진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의 인수 후보 기업으로는 이스타항공, 에어프레미아 등 국내 LCC 2곳과 화물 전문 항공사 에어인천까지 총 3개 기업이 꼽혔다. 이들은 모두 지난달 실시한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 매각 예비입찰에 응찰한 기업들이다.
그러나 이들 면면을 살펴보면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을 인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의 매출이 2조9,891억원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인수를 위해선 최소 수천억원이 필요한 데 비해 예비입찰에 응찰한 기업들은 규모로 보나 매출로 보나 해당 자금을 독자적으로 마련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더욱이 이들 기업은 코로나19로 입은 타격을 회복하는 와중에 고유가·고환율이라는 대외적 변수가 또다시 겹치면서 기대 이하의 실적이 예상되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