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 잃어가는 백화점들, 오프라인-온라인 ‘유통 대격변’에 쐐기 박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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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커머스 성장세에 밀려난 백화점, 매출도 '뚝뚝'
잠깐 '반짝'했지만, 온라인 영향력 아래 다시금 '우하향 곡선'
유통업체 생명력 '0', 남은 잿밥은 '부동산'뿐
메이시스
사진=메이시스 홈페이지

투자회사들이 미국 최대 백화점 메이시스를 58억 달러(약 7조6,4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하고 나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커머스가 급성장함에 따라 백화점 산업이 쇠퇴한 가운데 나온 제안이다. 이를 두고 메이시스가 미 전역에 보유한 매장의 ‘부동산 가치’를 노린 거래 제안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투자사들, 美 백화점 기업 메이시스 인수 초읽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 시각) 소식통을 인용해 부동산 전문 투자회사 아크하우스매니지먼트와 자산운용사 브리게이드캐피털매니지먼트가 메이시스 주식을 주당 21달러, 총 58억 달러에 인수하겠단 제안서를 메이시스 측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메이시스는 백화점 매장 약 500개에 고급 백화점 체인인 블루밍데일스 매장 32개, 블루밍데일스 아울렛 매장 21개 등을 보유한 거대 유통기업으로, 매년 추수감사절마다 진행하는 퍼레이드와 연말 뉴욕 매장의 화려한 디스플레이는 하나의 랜드마크이자 문화적 명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아마존 등 이커머스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쇠퇴기를 걸었고, 특히 소비자들이 전문 매장이나 오프라인 일반 상점으로 몰리는 양상을 띠면서 백화점 산업 자체가 쇠락하자 메이시스 또한 순이익 하락을 면치 못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메이시스의 지난해 연간 순이익은 전년 대비 14% 줄어든 12억 달러에 그쳤으며, 올해도 3분기 매출은 48억6,000만 달러(약 6조3,8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했다. 이에 주가도 올해에만 16%나 떨어졌다. 투자 회사들이 제시한 메이시스 인수가에도 이 같은 하락세의 영향이 드러난다. 메이시스 인수가는 8일 종가(17.39달러)에 약 21% 프리미엄을 붙인 수준이나, 이는 메이시스의 2015년 고점인 70달러와 비교하면 약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인수 의향자들은 향후 실사를 거쳐 인수 제안가를 현재보다 더 높일 의향이 있다고 밝힌 상태이나 협상을 이어간다 해도 가격이 3배 뛰어오를 가능성은 없다시피 한 만큼 메이시스 입장에선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주가 유지하던 메이시스, 하지만

당초 메이시스는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꾸준히 주가를 유지하는 기업 중 하나였다. 백화점 실적이 좋았던 점, 경기 하강 폭이 예상보다 깊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등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월 메이시스의 주가는 13% 상승해 22.78달러까지 치솟았다. 별다른 이슈가 없었음에도 메이시스의 주가 상승률이 S&P500 지수(8%)를 상회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미국 백화점에 보이는 관심이 크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1월 백화점 실적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투자전문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미국 컨설팅 기업 모닝 컨설트 집계 결과 지난 1월 미국 백화점 매출액은 전월 동기 대비 17.5% 상승했다. 전년 동기인 지난해 1월과 비교하면 5.4% 증가한 수치다. 이 수치가 더욱 이례적인 이유는 이전 3개월간 백화점 매출액이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그려왔기 때문이다.

미국 백화점 매출이 급증한 배경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꼽힌다. 한 컨설팅 기업 관계자는 “통상 미국에서 가장 소비가 집중되는 기간은 연말 쇼핑 기간인데, 코로나19가 확산한 최근 2~3년 동안은 12월 매출이 감소했다가 1월에 반등하는 현상이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백화점의 지난 2020년 12월 매출액은 전년 대비 6.6% 감소했으나 2021년 1월 19%로 반짝 반등한 바 있다. 2021년에도 12월 매출액이 9% 감소한 데 반해 그다음 달 11%나 상승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백화점들이 할인 기간을 연말에서 연초까지 연장하면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더 많은 할인을 기다렸을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당시 날씨가 상대적으로 따뜻한 탓에 더 많은 쇼핑객들이 오프라인 유통 매장으로 유입됐을 거란 분석도 나왔다. 메이시스의 경우 지난해 1월 콜로라도, 캘리포니아, 알라바마 등에 있는 메이시스 매장 6개를 미리 정리해 둔 점이 호재로 작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Big red sale 70% sign to draw attention of customer in front of women clothing store. Year of end or Black Friday sale period that department store has lots of discount for all products.
사진=Adobe Stock

명품 매장 백화점의 몰락, 변화의 ‘종소리’ 되나

다만 백화점 주가의 고공행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연초 잠시 반짝하던 백화점 기업들의 이익은 다시금 우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업황은 더욱 나빠졌다. 이커머스가 유통시장 내 컨트롤러를 쥐기 시작하면서 오프라인 매장 자체가 쇠락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의 백화점 시장 규모 또한 연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엔 일본의 전국 백화점 매출액이 5조9,780억 엔(약 62조2,000억원)으로 36년 만에 6조 엔 대가 무너지기도 했다. 이는 같은 해 편의점 매출(9조6,328억 엔)은 물론 드러그스토어 매출(6조4,916억 엔)에도 못 미치는 결과라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 과거 전국에 300곳이 넘었던 백화점 지점도 230곳 정도로 줄었다. 실제 1년 반 동안에만 전국 10곳 이상의 백화점이 문을 닫았음을 고려하면, 200곳 이하로 떨어질 날도 머지않았단 분석이 나온다.

국내 백화점도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고소득층을 비롯한 중산층이 백화점의 둘레 안에서 탈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매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굳이 백화점에 가지 않아도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게 된 영향이 크다. 특히 전체 매출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는 고소득층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 매년 20% 이상이던 명품 성장세는 올해 절반 이상 감소했다. ‘명품=백화점’이라는 공식이 무너진 셈으로, 소비자들은 백화점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명품을 구매할 수 있는 면세점이나 온라인·병행수입 등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중산층의 탈출도 심화하는 추세다. 주머니가 가벼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SPA 브랜드로 발길을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백화점에 들러 상품을 확인하고 인터넷을 통해 싸게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화되면서 쇼핑 이외에 영화·외식·미용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몰링(Malling)’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하는 것도 백화점의 위기를 앞당기고 있다. 백화점이 고가 상품을 판매하는 역할만 해서는 더 이상 생존이 힘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번에 투자회사들이 메이시스를 인수하겠다 밝히고 나선 것도 메이시스의 유통 사업과는 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 투자 전문가는 “메이시스 인수는 백화점 사업 자체보단 전국에 지점을 둔 메이시스의 부동산 등 자산을 염두에 둔 투자”라고 설명했다. 유통 투자자문사 트라이앵글 캐피탈의 공동창립자 리차드 케스텐바움도 “백화점 사업이 장기적으로 하락 추세인데 상장기업을 인수하는 상황에서는 회사 비즈니스나 구조의 급진적인 변화를 고려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부동산 등 숨겨진 자산을 찾아서 매각하면 투자자는 즉각 수익을 낼 수 있고, 이후 회사를 큰 이익을 남기고 매각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가치 있는 부동산을 소유한 대형 소매업체가 투자회사에 인수될 경우 투자회사들이 부동산 사업에 집중하는 동안 본업인 유통업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메이시스의 매각은 곧 백화점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가 될 전망이다. 오프라인 중심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 기조가 완전히 뒤바뀔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