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정조준’에 대기업도 ‘눈치’?, MBK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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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 투자에 경영계 '당황', MBK가 손에 쥔 '패'는
'자가당착' 가능성 없진 않아, "대기업 중심으로 부정적 여론 확산"
MBK의 투자 키워드는 '지배구조', 경영권 '진흙탕 싸움' 이어질까
김병주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모습/사진=MBK파트너스

최근 MBK파트너스가 한국앤컴퍼니그룹(옛 한국타이어그룹) 경영권을 노리고 시도한 공개매수에 김병주 MBK 회장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파악됐다. MBK 창업자인 김 회장이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에 나서기 전후 주변에 “대기업 경영권도 성역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수차례 강조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MBK는 지난 22일 공개매수 실패를 발표했지만, 앞으로도 한국앤컴퍼니는 물론 취약한 지배구조를 갖춘 대기업을 대상으로 경영권 공격 시도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MBK “대기업 경영권도 성역 아냐”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이 지난 3월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 등으로 구속되자 MBK는 올해 상반기 말께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펀드를 활용해 지주회사 한국앤컴퍼니와 자회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를 한꺼번에 공개매수하는 안건을 투자심의위원회에 올렸다. 김 회장은 추진 의지가 강했지만 투심위는 펀드 출자자(LP)의 반대 가능성 등을 고려해 격론 끝에 안건을 부결했다. 결국 MBK는 이달 초 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를 활용해 한국앤컴퍼니만을 대상으로 공개매수에 나섰지만, MBK가 당초 목표한 최소 매입 지분율(20.35%)의 절반에서 못 미치는 9% 지분 확보에 그치면서 공개매수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와 관련해 한 LP 관계자는 “김 회장은 한국앤컴퍼니그룹 딜을 통해 대기업 창업주와 2세, 3세 등 대주주도 시장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단번에 경영권을 잃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하려는 의지가 강했다”고 언급했다.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사모펀드(PE) 사이에선 한때 “경쟁 입찰에 MBK가 등장하면 귀국 비행기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나돌았다. 저금리 시대에 조달한 막대한 펀드 자금을 바탕으로 경쟁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해 매물을 쓸어 담는 MBK의 투자전략 때문이었다. 이 같은 전략은 MBK가 동북아시아 최대 PE로 고속 성장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다만 작년 이후 고금리가 현실화하자 이런 전략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조달 금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고가로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론 목표수익률을 거두는 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김 회장은 미국식 자본주의에 기반한 ‘지배구조 개선’을 내건 주주행동주의를 해법으로 내세웠다. 2004년 국내 PE 제도 도입 후 20년간 불문율처럼 여겨지던 ‘대기업과의 상부상조’ 원칙을 깨고 ‘대기업 경영권도 바꿀 수 있다’는 전략으로 돌아선 것이다.

손에 ‘칼’ 쥔 MBK, 꽃놀이패 어디서 났나

MBK는 PE인 만큼 돈이 핵심 요인 중 하나다. 이번 공개매수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결국 MBK 입장에선 잃을 게 하나도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소 물량에 미달하면 주식을 사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자금이 들어가는 게 아니고 만약 공개매수에 성공해 경영권을 가져오게 되면 원매자 등장 시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과 조희원 고문의 지분을 함께 묶어 팔 수 있는 드래그얼롱 조항도 확보해뒀기 대문이다. 공개매수에 성공했으면 MBK가 글로벌 톱10 수준의 타이어 회사(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를 매각해 대규모 투자 수익을 노릴 수 있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더군다나 이사회 구성에 있어서도 MBK에 우선권이 가기에 줄줄이 이익만 뽑아낼 수도 있었다. 이번 사태에 “한국 자본시장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바이아웃펀드의 도를 넘은 탐욕이 보여진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공존함에도 불구하고 MBK를 마냥 힐난할 수 없는 이유다.

이처럼 MBK가 ‘꽃놀이 패’를 손에 쥘 수 있었던 건 꾸준히 전략적 실험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간 MBK는 점진적으로 투자 영역을 넓혀가며 새 전략이 유효한지를 타진해 왔다. 지난 2012년 코웨이 인수 시점에도 이 같은 기조를 견지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당시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돌연 그룹의 법정관리를 선언하자 MBK는 소송전을 선언하고 법원 판결을 끌어내 그해 말 강제적으로 코웨이 매각과 채무 정리를 마무리한 바 있다. 유의미한 전략적 승리를 거둔 셈이다.

지난해부턴 전략을 더욱 구체화했다. 오스템임플란트가 작년 9월부터 행동주의펀드인 KCGI의 공격을 받자 MBK는 UCK파트너스와 손잡고 창업자인 최규옥 회장을 설득, 올해 1월 오스템임플란트 공개매수를 통해 경영권 지분을 확보했다. 최 회장과 외견상 동거하는 모습을 취했지만 주주 간 계약을 통해 사실상 경영권을 쥐었다. 지난달엔 BHC 창업자인 박현종 회장을 이사회에서 축출하기도 했다. MBK는 2018년 박 회장이 경영자인수(MBO) 방식으로 BHC를 인수하는 것을 지원했지만 이후 경영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급기야 이달 초엔 오너 일가인 조현식 고문 등과 손잡고 한국앤컴퍼니를 대상으로 공개매수에 나섰다. 공개매수를 통해 자신들이 직접 대기업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현실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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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기회 고려할 것”, ‘추가 공격’ 시사일까

다만 MBK가 쥔 칼이 마냥 꽃놀이패인 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우선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은 MBK의 공격적인 전략에 대해 “PE 사업은 기업인들이나 아니면 시장 참여자들과의 신뢰나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인데 지금 이 사태를 보고선 국내 기업 회장님들이 MBK를 앞으로 어떻게 보게 될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차치하더라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MBK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중이다. IB 업계의 고위관계자는 “대기업, 그중에서도 현직 오너가 경영을 하고 있는 곳들은 MBK가 자신들의 등에 칼을 꼽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전했다. MBK의 평판이 깎이고 있는 셈이다. 당장 LG그룹만 해도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구 회장의 어머니 김영식 여사와 두 딸들이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내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SK그룹도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들에게 있어 MBK가 지닌 ‘매의 눈’은 무섭다기 보단 ‘고깝다’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이번 MBK의 한국앤컴퍼니에 대한 공개매수는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앞으로 추가 공세를 이어가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주요 ‘키맨’이 투자 키워드로 ‘지배구조’를 언급하고 있어서다. MBK파트너스 스페셜시추에이션(SS)펀드를 이끄는 부재훈 부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공개매수 성패와 무관하게 한국앤컴퍼니와 같이 지배구조에 큰 문제가 있어 기업가치가 훼손된 기업에 대해선 추가적인 투자 기회를 고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취약한 지배구조를 갖춘 대기업을 대상으로 공개매수 등을 통해 추가적인 경영권 공격 시도에 나서겠다고 시사한 셈이다. MBK를 시작으로 내년 초부터 PE의 주주행동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에 앞서 1~2월엔 주주총회 안건이 전달돼야 하므로 새해 시작과 함께 PE 발 경영권 분쟁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흩날린 MBK의 불씨가 기업 경영의 뿌리를 조금씩 갉아 먹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