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소비자물가 3.6% 상승, 한국은행 ‘통화긴축 장기화’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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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소비자물가 전년 동월 대비 3.2%, 근원물가 3.1%
한은 “내년 물가 2% 확신 들 때까지 충분한 기간 통화긴축 유지”
이 총재 “물가의 목표치 도달 시점 이르면 내년 연말에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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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6%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5%대보단 낮은 수준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0~1%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역시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하며 5개월째 3%대 고공 행진을 이어가자, 한국은행은 내년에도 장기간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년 연말이나 2025년에나 물가가 목표지점에 도달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한편, 일각에선 국내외 수요가 빠르게 회복될 경우 물가 상승세가 재확대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통계청, ‘2023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 발표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물가지수는 111.59(2020년=100)로 지난해보다 3.6% 상승했다. 매해 연말 집계되는 연간 물가 상승률은 2019년 통계 작성 이후 2년 연속 0%대를 기록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파르게 상승해 2021년 2.5%, 2022년에는 5.1%까지 치솟았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기조로 인해 7월 2.3%까지 떨어지며 하락세를 보였지만, 글로벌 고유가 등의 영향으로 8월부터 5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이 이어졌다. 여름철 기상 악화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도 신선식품지수를 비롯한 체감물가를 끌어올리면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품목별로 보면 전기·가스·수도가 전년 대비 20.0% 상승하며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또 러-우 전쟁 및 중동 분쟁 등으로 인해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공공요금이 인상된 영향도 컸다. 한편 개인서비스 상승률은 4.8%, 농축수산물은 3.1% 올랐는데, 농축수산물의 경우 농산물(6.0%)과 수산물(5.4%)이 오르면서 상승폭이 확대됐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올해는 농·수산물 가격이 올랐지만 국제유가 하락 영향으로 전년 대비 상승률이 둔화됐다”며 “전반적으로 기조적 물가흐름은 둔화되고 있지만 국제유가를 비롯한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하며 2개월 연속 상승세가 꺾였다. 특히 신선식품과 신선과실이 전년 동월 대비 각각 14.5%, 26.1% 상승한 영향이 주효했다. 계절적 요인이나 외부 충격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3.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의 상승폭은 2.8%를 기록했다.

내년도 통화정책 운영방향 예고한 ‘한은’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해보다 큰 폭 하락했지만 2년 전 2%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한은은 내년에도 장기간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이날 ‘2024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을 발표하며 “향후 물가 상승률이 기조적 둔화 흐름을 이어가겠으나 내년 4분기 이후에나 목표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아울러 가계부채도 유의해서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내년 기준금리는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2%)에서 안정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충분히 장기간 긴축 기조를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경제 성장과 관련해 “성장세는 소비 등 내수 회복이 더디겠지만 수출 증가에 힘입어 개선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경기에 대해선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진단을 내렸으나, 바꿔 말하면 통화정책 전환을 시장의 기대만큼 빠르게 단행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다만 한은이 물가에만 초점을 두고 고금리 정책을 지속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금융시장에선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장기화 속 가계부채 누증 위험과 부동산 투자 비중이 높은 비은행 금융기관 리스크 등 금융불안 우려가 잠재해 있다. 앞서 한은도 “내년 통화긴축 강도나 지속 기간에 대해선 향후 물가 흐름과 함께 경기 상황,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면밀히 점검해 판단하겠다”고 밝히며 금융안정에도 유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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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내년에도 물가 목표치 도달하긴 어려울 듯

한은은 물가가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시점을 이르면 내년 연말, 늦으면 2025년 상반기까지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은은 지난 20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통해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월(3.3%)과 비슷하거나 소폭 낮아진 뒤 추세적으로 둔화함에 따라 내년 연말로 갈수록 2% 부근에 근접할 것”이라고 점쳤다.

내년도 물가의 상방 위험 요인으로는 국제유가 재상승과 기상이변에 따른 국제 식량 가격 인상, 미국 통화정책 전환에 따른 금융시장의 과도한 랠리 등을 꼽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추가 감산과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유가가 다시 오르거나, 기상 악화로 일부 농산물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물가 상승률이 예상과 다르게 반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시장의 기대만큼 물가가 빠르게 하락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총재는 “앞으로도 물가 상승률은 유가가 다시 크게 상승하지 않는다면 수요자 측 압력이 약화된 가운데 공급충격 영향도 점차 줄어들면서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 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보인다”며 “물가 상승률 목표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라스트 마일은 지금까지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간에서도 내년도 국내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에 도달하긴 어려울 거란 분석이 나온다. 국제유가 상승이나 이상기후에 따른 농축수산물 수급 불안전성 외에도 공공요금 인상 등 공급자 측 상방 압력 요인이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내년도 국내 물가는 전반적으로 하향 안정화됨에 따라 상반기엔 2.7%, 하반기엔 2.4%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국내외 수요가 빠르게 회복될 경우 물가 상승세가 재확대될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