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노동이사제 카드에 기업들 ‘대략난감’, “공산당 ‘꼭두각시’ 전락 우려”
中 회사법 개정안 단행, 노동이사제 도입 등이 골자 각종 부작용 속출하는 노동이사제, 독일서도 '축소' 수순 외국계 기업 '갉아먹기' 나선 中, 고심 깊어지는 기업들
중국 정부가 회사법 전면 개정을 단행하고 나섰다. 노동이사제 도입, 자본금 분납 제한 등이 골자다.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외국계 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겠단 의미다. 이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도 ‘회사법 리스크’가 덮칠 전망이다. 특히 회사법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중국 내 한국 기업의 중대한 의사 결정에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향후 대처 방안을 시급히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법 개정안’ 띄웠다? ‘中 리스크’ 가시화하나
3일 중국 정부와 학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9일 중국 당정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를 열고 ‘6차 회사법 개정안’을 최종 승인했다. 개정안은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개정은 기업의 지배구조와 자본제도 등을 글로벌 기준에 맞춰 선진화하면서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취지로 이뤄졌다.
개정 회사법은 종업원 300인 이상 기업은 이사회에 노동자 이사를 두도록 강제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 중국에 진출한 주요 대기업에 모두 적용된다. 유한회사 사원 실권 제도도 도입했다. 신규 법인은 5년 내에 자본금을 모두 완납하도록 강제했으며, 이미 설립된 유한회사는 5년 내 완납을 유도하되 필요에 따라 규제당국이 즉시 납입을 강제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기업은 통상 주주가 출자액 범위 내에서 책임을 지는 유한회사 형태로 설립돼 있다. 대부분 현지 한국 중소기업이 통상 10년 이상에 걸쳐 자본금을 분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본금 납입에 비상이 걸릴 전망이다.
중국은 이번 회사법 전면 개정을 통해 대기업과 국유기업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로 인해 당장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뿐 아니라 중국 기업과 일련의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들까지 족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급력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건 노동이사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포스코·현대자동차 등 중국에 진출한 주요 대기업이 모두 적용받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인 만큼 노조의 입김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한·중 관계 악화로 국내 기업이 철수할 때 등 중대한 경영 선택 과정에서 노동이사의 반대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전문가들 “노동이사제, 힘 쏠림 현상 심화 가능성 있어”
우리나라도 노동이사제를 법제화한 상태긴 하나, 국내에선 공공기관에만 도입됐고 민간 기업엔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민간 기업에 있어 노동이사제가 득보단 실이 더 많으리란 분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법률 전문가는 “근로자 대표의 추천 및 투표 등으로 선출된 노동이사는 기업의 중장기적 발전보단 특정 이해관계를 우선시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사 본연의 역할과 상충되는 태도를 견지할 우려가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에서 실시한 전문가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더라도 노동이사제는 우리나라의 경제 시스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57%에 달했다. 특히 전문가의 68.5%는 노동이사제를 민간 기업에 도입할 시 노조 측으로 힘 쏠림 현상이 심화함으로써 균형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에나마 적용한 노동이사제마저 ‘유명무실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노동이사가 근로자와 이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지만 특별한 보상이 없고 근로자와 경영진 사이에 낀 경계인으로서 정체성 혼란까지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공기업에선 노동이사로서 선뜻 나서는 적임자가 없어 제대로 된 제도 시행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나마 노동이사를 선임한 일부 공공기관에서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거듭 제기됐다. 노동이사는 평소에는 직속 상사와 경영진의 업무지시를 받는 노동자로 일하다 이사회 의결사항이 있을 때 이사로 참여하는 이중적 정체성으로 현업과 이사 활동 모두에 어려움을 겪는 역기능이 크다는 것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노조가 노동이사를 선출해도 노조와 노동이사 활동 기간과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근로자를 대표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며 “노사 양측으로부터 고립되는 상황이 빈번하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업무와 병행해 이사 활동까지 겸하다 보면 두 일을 모두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獨서도 “노동이사제는 시대착오적”
그런데 노동이사제는 원조 격인 독일에서조차 시대착오적이라는 판명을 받고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경영자총협회(BDA)는 “독일의 기업들이 공동결정제도의 비효율성과 경직성으로 인해 EU 회원국으로의 이전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독일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공동결정제도가 독일 기업의 국제거래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단 의견이 두드러졌으며, 특히 외국기업의 인수 및 합병 과정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미국의 유나이티드 항공 사례도 노동이사제와 같은 제도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유나이티드 항공은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해 직원들이 회사 지분의 55%를 소유하고 기능직노조와 조종사노조가 각각 선출한 노동이사를 이사회에 참여시켰으나, 결국 경영위기 상황에서도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 임금 인하 등을 회피해 위기 극복에 실패한 뒤 파산했다. 중국 내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한 우려를 마냥 기우로 치부해선 안 될 이유다.
중국은 회사법 개정안에 국유기업에 대한 조항을 신설해 ‘당의 영도적 역할을 강화한다’라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는 국가가 단독으로 소유한 회사뿐 아니라 경영권을 보유한 국유기업 전반에 대한 당의 지배력을 강화하겠단 의미다. 중국이 공산당의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는 만큼, 기업 차원에서도 중국의 거듭된 압박을 해소할 수 있을 만한 창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장의 방대한 파이와 이에 상반되는 지속적인 압박 사이 기업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회사법 개정안으로 하여금 드러난 중국의 외국계 기업 갉아먹기 전략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지, 기업들의 향후 대처에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