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옵션 쇼크’ 前 임원 1인 무죄 확정, 주범은 여전히 ‘감감무소식’
한국도이치증권 전 임원 박씨, '옵션 쇼크' 가담 혐의 벗었다 2심 "죄 입증 어려워" 무죄 판결, 대법원도 원심판결 확정 재판 피하는 외국인 주범들, 13년째 신병 확보·송환 실패
2010년 ‘도이치 옵션 쇼크’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한국도이치증권 전 임원의 무죄가 확정됐다. 사건 발생 이후 13년 만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한국도이치증권 주식파생상품 담당 상무와 도이치증권 법인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검찰의 증거만으로는 박씨의 사건 공모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씨, 투기 포지션 구축 예상 어려웠을 것”
박씨 등은 2010년 11월 11일 주가가 하락하면 이익을 보는 코스피200지수 옵션 상품을 미리 매수하고, 장 마감 직전에 2조4,400억원 상당의 주식을 처분해 448억7,800만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이로 인해 당일 코스피200지수는 전일 대비 7.62포인트(2.99%) 급락했고, 여타 투자자들은 1,4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봤다. 이후 검찰은 2011년 8월 주범으로 지목된 도이치뱅크 홍콩지점 차익거래부문 상무 영국인 데렉 옹(Derek Ong) 외 외국인 3명과 박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기소된 외국인 3명이 수사·재판에 불응하면서 재판이 지연됐고, 결국 2016년 1월 박씨와 도이치증권 법인만 1심 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박씨가 한국거래소의 사전 신고 시한을 넘겨 거래를 신고하는 등 시세 조종에 공모한 혐의를 인정,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도이치증권 법인은 벌금 15억원을 선고받았다. 이에 더해 재판부는 도이치은행과 도이치증권에 대해 각각 436억9,000만원, 11억8,000만원의 추징도 명령했다.
하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지수차익거래 업무를 지원했다는 사정만으로 지수차익거래 청산 및 투기적 포지션 구축 사실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거나, 그로 인한 부당이익의 취득을 공모했음을 인정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피고인이 공모 사실을 예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검사 측 상고를 기각, 사건 13년 만에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줄줄이 송환 실패, 잡을 수 없는 주범들
박씨가 공범이 아니라면 진짜 범인들은 어디에 있을까. 현재 수사당국은 박씨와 함께 기소된 외국인 피고인들의 한국 송환에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1심 이전 검찰은 이들이 홍콩에서 각국을 오갔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 국제 공조를 요청했지만, 신병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지난 2015년 4월에는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적색 수배를 요청했지만 이 역시 효과는 없었다.
이후 사건 9년 만인 2019년, 주범으로 지목된 데렉 옹이 인도네시아에서 체포됐다. 당시 검찰은 검거 통보를 받은 즉시 인도네시아 측에 긴급인도구속을 청구했다. 긴급인도구속은 긴급하게 범죄인을 체포·구금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기 전 현지에서 신병을 확보해 두는 수단이다. 하지만 현지 법원에서 한국 정부의 범죄인 인도 청구를 기각했고, 송환은 결국 무산됐다.
박씨의 무죄가 확정된 가운데, 이외 3명의 피고인 송환이 흐지부지될 경우 1,4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손실의 책임은 그대로 ‘증발’하게 된다. 2036년 8월까지 유죄 판결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공소시효 완성으로 처벌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와 투자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던 ‘도이치 옵션 쇼크’는 이대로 흐지부지 막을 내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