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부동산 침체 계속될 거라는데”, 홍콩증시 급락에 원금손실 불어난 ‘홍콩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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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은행 평균 손실률 52.7%, 일부 증권사선 56% 넘어
홍콩H지수, 올해 글로벌 주요 증시 중 두 자릿수 하락 유일
은행, 불완전판매 의혹에 “고객 녹취 및 자필서명 받았다” 반박
홍콩ELS_자체제작_20240122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이 최대 56%를 넘어섰다.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올해 들어 H지수만 유일하게 10% 이상 급락하면서다. 올해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상품 규모가 10조원을 넘어섬에 따라 추후 손실액이 더 확대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주요 판매사를 대상으로 현장검사를 벌이는 가운데, 일부 은행에선 녹취와 자필서명 등으로 고객의 이해 여부를 확인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올 들어 ‘홍콩H지수’ 11% 급락, 관련 ELS 원금손실액 2,296억원

2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개 증권사가 원금손실을 공지한 홍콩ELS 상품의 발행금액 합계는 총 83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달 초 홍콩H지수가 더욱 하락하면서 원금손실폭이 예상보다 확대된 것이다. H지수는 지난해 말 5,768.5에서 19일 기준 5,127.24로 올해만 11.12%나 떨어졌다. 실제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의 손실률을 살펴보면, 지난 17일이 만기일이었던 미래에셋증권의 ‘미래에셋증권(ELS) 29447’의 손실률은 56.05%, 이보다 앞선 10일께 만기 평가일을 맞은 키움증권의 ‘제1528회파생결합증권(주가연계증권)’ 손실률은 51.72%로 확정됐다.

증권사보다 판매금액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은행권의 손실액은 더 크게 불어났다. 21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ELS 중 지난 19일까지 3년 만기가 된 4,353억원어치 상품의 평균 수익률은 -52.7%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만기가 된 원금 중 2,057억원만 투자자에게 상환됐으며, 약 2,296억원의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ELS는 기초자산이 되는 지수가 만기(통상 3년)까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약속한 수익률을 지급한다. 그러나 반대로 만기 시 지수가 가입 당시보다 기준치 밑으로 떨어지면 투자자가 하락률만큼 손실을 떠안게 된다. 홍콩H지수는 2021년 1월부터 6월까지 1만p 위에서 고점을 형성하다가 올해까지 지속 하락 중이다. 이로 인해 3년 전 발행돼 올 들어 만기를 맞은 홍콩ELS 상품 모두 50% 안팎의 손실을 떠안게 됐다.

올 상반기에만 15조원 만기 예정, 손실액 더 늘 수도

문제는 앞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상품이 더 늘어남에 따라 손실액이 확대될 것이란 사실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이 2021년 1~6월 발행한 홍콩ELS 상품 가운데 올해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상품 규모는 10조993억원에 달한다. 은행권 판매 잔액까지 모두 합칠 경우 올해 15조4,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올 예정이다. 이는 금융권 홍콩H지수 기초 ELS 총판매 잔액(19억3,000억원)의 약 80%에 달하는 규모로, 특히 올해 1분기(3조9,000억원)와 2분기(6조3,000억원)에 집중돼 있다.

특히 4월 만기 규모가 2조4,596억원으로 정점에 이르는 만큼 손실액도 큰 폭 늘 수 있다. H지수가 지금의 추세대로 하락할 경우 손실률이 60%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이 경우 올해 상반기 5대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관련 ELS 상품의 원금 손실 규모만 6조원이 넘어갈 수 있다.

더욱이 H지수 등락은 중국 경제의 회복 여부에 달려 있는데, 중국은 최근 소비 둔화 현상 및 GDP(국내총생산)의 25%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7~11월 중국의 대도시 주택가격은 월평균 전달 대비 0.3% 하락했지만, 12월엔 0.45%로 하락 폭이 확대되면서 부동산 경기 회복이 요원한 상태”라며 “단기간 홍콩 주식시장을 견인할 만한 강한 모멘텀이 부족한 상황에 따라 홍콩H지수의 반등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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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과 주요 판매사 향후 대응이 관건

이미 수천억원의 손실이 확정된 데다 향후 추가 손실 가능성마저 높은 가운데, 투자자들의 관심은 금융당국과 금융권의 대응에 쏠리고 있다. 먼저 5대 시중은행은 관련 ELS에 대한 판매를 모두 중단한 상태다. 지수 하락에 따른 손실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판매 재개를 신중히 접근하겠다는 취지다. 금융당국은 5대 은행을 포함한 ELS 판매사 12곳을 대상으로 불완전판매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상품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 부문에 문제 소지가 없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고령 투자자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권유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상품 관련 설명 이행 여부를 떠나 해당 상품을 권유하는 것 자체가 적절했는지 등 적합성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만일 불완전판매 사실이 입증될 경우 관련 금융사는 해당 투자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전 대법원 판례를 보면 금융사의 불완전판매가 인정되면 과거 ELS 투자 경험이 없었던 투자자에 한해 원금의 80%까지 회수할 수 있었다”며 “이렇게 될 경우 판매액이 월등히 높은 은행은 천문학적인 손실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하지만 은행권은 불완전판매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특히 은행들은 H지수 ELS 판매 과정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에 따라 녹취·자필서명과 같은 방법으로 고객의 이해 여부를 확인했다는 주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ELS는 사모펀드 사태와는 다른 공모형 상품이며, 수년간 은행이 문제없이 판매해 온 상품”이라며 “수익이 나면 당연히 투자자의 몫이 되는 반면, 손실이 났을 때는 판매사가 불완전판매를 했다며 책임져야 한다면 이는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