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대신 ‘칼바람’ 부는 월스트리트, 모건스탠리 또 인원 감축 단행
짙어지는 경기침체의 그림자, 지난해 이어 올해 또 직원 해고 수익 저조한 자산관리 부문 직원이 대상, 전체 인력의 1% 미만 "불황에 장사 없다" IPO·M&A 시장 얼어붙자 IB 실적 곤두박질
연초 글로벌 주요 기업들의 감원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지난해 3,000여 명을 감원한 데 이어 올해도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WM) 부문의 인력 감축에 돌입한다. 감축 인원은 전체 인력의 1% 미만에 해당하는 수백 명 규모로 예상된다. 미국의 고금리 기조로 인해 코로나19 이후 활발했던 기업공개(IPO) 시장이 위축된 데다 IB 부문의 성장이 둔화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비용 절감 위해 WM 부문 수백 명 해고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모건스탠리가 비용 절감을 위해 WM 부문에서 수백 명을 감원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감원 대상 직원들은 이르면 이번 주 내에 통보받을 전망이다. 감원 대상은 4만 명에 약간 못 미치는 WM 사업부 인력의 1% 미만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해고 명단에는 고객들과 대면하지 않는 직원뿐 아니라 소수의 매니징디렉터(MD), 상무 등 관리급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감원 조치는 지난 1월 취임한 테드 픽 신임 최고경영자(CEO)의 첫 번째 주요 행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WSJ는 모건스탠리의 WM 부문이 최근 연이은 대규모 인수를 통해 수익 원동력이 됐고, 지난해 이트레이드와의 합병이 완료됨에 따라 중복되는 직책과 업무를 정리 중이라고 감원 배경을 전했다.
약 5조 달러(약 6,666조원)의 자산을 관리하는 WM 부서는 모건스탠리 총수익의 50%를 책임지는 주요 부서다. 이는 2010년 26%보다 대폭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제자리걸음 하는 등 성장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순 신규자산도 감소하는 추세다. 여기에 외국인 고객의 돈세탁 방지 시스템 등과 관련한 규제 조사 등 여러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더욱이 모건스탠리 주가도 올해 들어 약 10% 하락하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작년에도 3,000명 짐 쌌는데
모건스탠리는 지난 2022년 12월에도 전체 인력의 약 2%에 해당하는 1,600명 규모의 해고를 단행한 바 있다. 앞서 2020년 투자운용기업 이튼밴스(Eaton Vance)를 70억 달러(약 9조2,400억원)에 인수하는 등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사세를 확장하는가 하면 2020년 1분기부터 2022년 3분기까지 인력을 34%가량 증원하기도 했지만, 경기 침체 우려와 실적 악화가 겹치자 결국 몸집 줄이기를 결정한 것이다.
감원 칼바람은 불과 5개월 후인 지난해 5월에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 모건스탠리 직원 8만2,000여 명의 5% 수준인 3,000명이 짐을 쌌다. 앞서 2022년 구조조정 당시 추가 감원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고금리로 시중에 현금이 메마르고 주식·채권 발행과 M&A 등 기업 금융 부문 침체가 심화하자 업황 반등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인력 감축 방침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듯 시장 침체가 길어지자 지난해 후반부터 긴축에 나섰던 월스트리트 은행들은 이제 추가 감원을 통해 비용을 더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모건스탠리 연이은 감원을 두고 “마른행주 쥐어짜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월스트리트에 부는 감원 칼바람은 빅테크 기업들의 감원보다 조금 더 일찍 시작됐다. 2022년 9월 골드만삭스가 성과가 미흡한 직원들을 걸러내는 방식으로 감원을 시작했고, 모건스탠리를 비롯한 월스트리트의 다른 대형 은행들도 이같은 방식을 따랐다. 그러다 같은 해 11월 메타플랫폼스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감행하자 월스트리트 은행들의 감원도 본격화했다. 골드만삭스는은 지난해 1월 추가 감원을 단행했고, 씨티그룹과 BOA도 수백 명의 인원 감축에 나섰다.
IB, WM 부문 실적 악화에 4년 만에 최저 순이익 기록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IB들은 일자리를 6만2,000개 가까이 축소했다. 경기 둔화 속에 IPO와 M&A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글로벌 IB들의 실적이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특히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4년 만의 최저 실적을 냈다. 시장 호황기에는 은행을 먹여 살리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던 IB와 부유층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WM 부문이 고전하면서 순익을 갉아 먹은 것이다. 먼저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전년 대비 18% 감소한 순이익 91억 달러(약 12조1,940억원)를 기록했는데, 이 중 IB 및 무역 부문의 이익이 약 3분의 1 감소했다. 골드만삭스의 지난해 순이익도 전년 대비 24% 감소한 85억 달러(약 1조4,000억원)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지난해 4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성적표가 엇갈린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연간 성적은 부진했지만 4분기엔 애널리스트들의 예상치를 웃돌았다. 4분기 자산관리, 주식 거래 사업이 성장세를 이끌며 순이익 20억 달러(약 2조6,796억원)를 올렸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1% 증가한 수치로, 블룸버그가 조사한 분기 순이익 15억 달러(약 2조97억원)를 크게 상회했다. 반면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4분기 순이익 15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22억 달러(약 2조9,489억원) 대비 약 32% 감소한 수치다. 핵심 사업인 WM 부문의 실적 하락과 일회성 비용이 반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전체 성적표는 부진했으나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올해 실적을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픽 모건스탠리 CEO는 지정학적 긴장과 미국 경제 방향에 큰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2024년을 자신 있게 시작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M&A와 IPO 파이프라인 구축, 이사회 신뢰도 향상, 소매 및 기관 고객의 긍정적인 분위기 등 증거를 기반으로 앞으로도 건설적인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도 “올해 상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연착륙에 대한 낙관론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골드만삭스는 미처리 수주 잔고에 반영된 전략적 활동에서 잠재적인 부활의 징후를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사모펀드(PE), 사모신용, 부동산 등 핵심 전략 사업에서 2,250억 달러(약 3,014조원)의 자금 조달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당초 올해 말까지 이를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연말까지 2,510억 달러(약 336조원)를 조달하는 것으로 목표를 상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