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시기상조’ 의견에도 시장 기대↑, ‘PF 우려’ 사이 불어온 경기 회복 ‘봄바람’
기준금리 3.50% 유지, 한은 "물가상승률 여전히 높아" '4월 위기설'에 엇갈리는 반응, "부동산 무너질 수도" vs "근거 없어" 물가 안정성 상승에 인플레이션 하락 기대감, "금리 인하도 멀지 않은 듯"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1월 연 3.25%에서 0.25%포인트 인상된 후 9번 연속 동결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 회의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부분 금통위원은 아직 금리 인하 논의를 시기상조로 보고 있다”며 “상반기 내 금리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목표 수준(2%)보다 높고 기존 전망대로 둔화할지 불확실성도 커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의견이다.
9번 연속 ‘금리 동결’에도, 금리 인하 기대감 ‘쑥’
한국은행은 22일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했다. 물가상승률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상반기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고 언급하면서 2분기 인하 가능성도 사실상 사라졌다. 다만 한은 금통위에서 처음으로 ‘3개월 후 인하’ 가능성이 언급된 만큼, 시장에선 하반기부턴 통화정책 완화가 가시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수 부진이 예상보다 심각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중심으로 대출 부실 위험도 커지고 있어 금리 인하 시계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은은 이날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1%를 유지했지만 내수 부진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1.6%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작년 11월 전망치 1.9%에서 0.3%p 낮춘 것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지속된 고물가와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이자 부담 등이 소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민간소비 증가율 하향은 향후 경제 성장률을 0.1%p 낮추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근원물가에 대해선 예상보다 낮을 것으로 전망했다. 2.3%였던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2%로 0.1%p 하향조정한 것이다.
시장-금융당국 온도 차 ‘여전’
한은의 언급으로 금리 인하 가능성에 기대가 치솟았지만, 금융당국과 시장 사이 온도 차는 여전한 상황이다. PF ‘4월 위기설’에 대한 입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시장에선 PF 부실에 따른 부동산시장 4월 위기설이 확산하고 있다. PF 부실 여파로 인해 건설 생태계가 도미노처럼 무너질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실제 건설사 부도는 올해 들어 벌써 5건에 달하며, 폐업도 두 달 새 565건에 육박한다.
증권사를 중심으로 부동산 PF 부실이 뚜렷해지는 양상도 확인된다. 이에 대해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의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부동산시장의 회복이지만, 단기적으로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실 처리가 본격화되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채권시장 등 자금시장에서 불안이 촉발되는 것을 얼마나 조기에 포착해 잘 대응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금융당국은 4월 위기설은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총선 이후 건설업계가 줄도산할 것이란 4월 위기설이 나온다’는 질문을 받고 “총선 이후 PF가 터진다는 건 큰 오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부동산 PF는 현재 상당수 정리되는 중”이라며 “총선 전후로 분위기가 크게 바뀔 것이란 근거가 뭔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소비가 예상보다 훨씬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수출은 좋은 방향을 유지하면서 사실상 상쇄됐다”며 “이처럼 부동산 PF 등을 보면 하방 요인이 크지만 IT 경기나 수출을 보면 상방 요인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PF를 보고 금리를 결정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정부가 잘 관리해서 PF가 질서 있게 정리되는 모습이 보이고 있는 만큼, PF 위기는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물가 불확실성 감소, 경기 호재 이어지나
다만 물가 불확실성이 감소한 것은 명백한 호재로 평가된다. 앞서 한은은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종전과 같은 2.6%로 유지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물가 불확실성이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근원물가를 기준으로 하면 올해 말 목표치인 2%에 수렴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곧 물가 하락이 가시화하면 금리 인하도 덩달아 따라갈 것이란 기대가 높아진다.
물가가 다소 안정된 데엔 에너지 가격 하락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해 12월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81.02달러에서 71.23달러까지 12.09% 하락했다. 이후 배럴당 69.38달러까지 떨어지며 70달러선이 붕괴하기도 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선물 가격 역시 1만 MM BUT(열량 단위)당 3.38달러에서 급락해 23.7%나 하락했다. 이에 대해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유가는 과잉 공급에 대한 전망 속 하락한 만큼 주요 에너지 기관의 수급 전망에 따라 큰 등락 폭을 보이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물가 하락 개연성이 늘어남에 따라 시장에선 인플레이션이 정상 수준까지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근원 인플레이션이 3년 만에 처음으로 2%대를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마이클 손더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수석고문은 올 4분기 인플레이션이 유럽에선 1.3%, 영국에선 2.7%를 각각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미국 인플레이션은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 기준 2.2%로 전망했다. 손더스 고문은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공통적 요인은 식량과 에너지, 글로벌 상품 가격의 하락과 통화 정책이지만 미국과 영국은 노동시장의 압력이 완화되는 만큼 인플레이션이 더 빠르게 둔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 PF발 인플레이션이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었던 만큼 부동산 PF 위기관리 여부에 따라 인플레이션 둔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온다. BMO캐피털마켓의 더글러스 포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당분간 대부분의 국가에서 경제 성장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그러나 금리 인하와 물가 하락 등이 공급망 정상화를 불러온다면 글로벌 경기는 오히려 회복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