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필벌 쇄신도 소용없나”, 부동산 PF 직격탄에 ‘사업 구조조정’ 나선 이마트
창사 이래 첫 적자 기록한 이마트, 체질 개선 착수 이명희 신세계 회장 직접 나서 고강도 인사 쇄신까지 부동산 PF 부실로 적자 낸 신세계건설이 이마트 발목 잡아
이마트가 인적분할 후 첫 연간 적자를 기록하면서 경쟁력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펫샵 몰리스 사업부를 폐지하는가 하면 영화제작사를 청산하고 골프전문 매장도 종료를 결정했다. 지난해 신세계건설 영업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모기업인 이마트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자 가망 없는 부실 사업을 정리하는 등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이마트 부실 사업 정리에 속도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이마트는 전국 40여 개 골프전문숍 운영을 순차적으로 종료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한때 반짝 호황을 누렸던 골프 시장이 얼어붙자 결국 사업 철수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이마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골프숍 납품을 중단하고, 순차적으로 점포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 재고 처리 상황에 따라 점포별 철수 시기는 상이하나, 오는 3월부터 시작해 6월까지 모든 지점 철수를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
이마트는 앞서 지난해 9월, 2018년 설립한 영화제작사 ‘일렉트로맨 문화산업전문회사’를 청산한 데 이어 같은 해 말에는 애완동물 용품을 판매하는 전문 매장 몰리스(Molly’s) 사업부를 폐지하고 패션·테넌트사업부로 통합하기도 했다. 또한 점포 효율화 작업을 통해 지난 2018년 최대 36개까지 늘어난 몰리스 오프라인 매장 수를 최근 25개까지 줄였다. 몰리스는 정용진 부회장의 반려견 이름을 따 2010년 만들어진 반려동물 전문 매장이다.
이마트가 부실 사업 정리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지난해 사상 첫 적자를 내면서 실적 부진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마트의 지난해 연결 기준 순매출은 29조4,722억원(약 221억 달러), 영업손실은 469억원(약 3,522만 달러)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매출은 2.7% 증가했고 영업손익은 1,144억원(약 8,591만 달러) 줄면서 적자전환했다. 이마트가 적자를 기록한 것은 2011년 신세계그룹에서 인적분할한 이후 처음이다.
수익성 악화에 대규모 ‘CEO 물갈이’도
현재 이마트는 오프라인 유통 부문 빅3 가운데 유일하게 적자 상태다. 롯데쇼핑은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수익성·효율성 개선의 성과로 지난해 1,431억원에서 1,640억원으로 늘었고, 현대백화점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1,601억원) 보다 10%가량 줄어든 1,335억원을 기록했다.
수익성 개선이 절실해진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0월, 통상 연말에 행해지는 정기 임원인사 인사를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사업 부문인 이마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사상 첫 외부인사를 앉히는 초강수를 뒀다. 일명 ‘정용진의 남자’라 불릴 정도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던 강희석 대표가 만 4년 만에 물러나고 그 자리에 한채양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이사와 김홍극 신세계까사 대표가 오르며 공동 대표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계열사 간 시너지 극대화를 위해 새로운 대표이사 운영구조도 도입했다. 신세계그룹은 리테일 통합 클러스터(Cluster)를 신설해 산하에 △이마트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신세계프라퍼티 △SSG.com △지마켓을 편제시켜, 더욱 강력한 시너지와 실행력, 그리고 새로운 성과 창출을 도모할 계획이다. 이명희 회장은 이번 인사와 함께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흔들리는 조직을 바로 잡기 위해 ‘신상필벌(공로가 있으면 상을 내리고 죄를 지으면 징벌을 내린다는 의미)’의 원칙으로 전폭적인 쇄신을 결정했다는 분석이다. 최근 신세계 강남점조차 매출이 꺾였을 정도로 정유경 총괄사장이 맡고 있는 신세계 쪽의 위기 의식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 적자 주원인은 ‘신세계건설’ 부진
이번 이마트 적자의 주요인은 이마트가 최대주주(지분 42.70%)로 있는 신세계건설의 실적 부진이다. 이마트의 경쟁력이 악화한 가운데 계열사인 건설사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마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신세계건설은 지난해 △공사 원가 상승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분양실적 부진 △예상되는 미래 손실 선반영으로 전년 대비 1,757억원 늘어난 1,878억원 영업손실을 냈다. 2022년 영업손실 규모가 120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15배가량 커진 것이다.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 규모도 142억원에서 1,585억원으로 확대했다.
이는 대표적인 난외계정인 부동산 PF 리스크가 회계상으로 반영된 결과다. 이른바 ‘우발채무’로 불리는 부동산 PF 리스크는 건설사가 지급보증 등을 한 것으로 당장 현실화하는 리스크가 아니란 점에서 재무제표상에 반영되지 않은 잠재부실이다. 하지만 추후 건설사가 실제로 보증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해당 채무를 인수할 경우 재무제표에 반영된다.
문제는 PF 시장 전반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주택경기 및 분양 여건 저하 추세가 지속될 경우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이같은 불안은 현실로 다가왔다. 시공 능력 16위인 태영건설이 부동산 PF 만기를 막지 못해 지난해 12월 워크아웃(기업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하면서 건설업계 전반으로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부채비율을 볼 때 다음 타자는 신세계건설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2022년 말 기준 265% 수준이던 신세계건설의 부채비율은 올해 2월 954%까지 치솟았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신세계영랑호리조트 흡수합병과 레저부문 매각 등 계획된 재무구조 개선안을 단순 반영하더라도 부채비율은 424%로, 여전히 동종업계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신세계건설의 부실은 과거 두산건설의 부실과도 상당 부분 닮아 있다. 두산건설은 1조원대의 미분양이 발생하자 두산그룹 전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 자산을 매각하고 계열사를 팔아치움으로써 고비를 넘긴 바 있다. 신세계건설 역시 부동산 경기 회복의 시점을 알 수 없는 현재로선 그룹의 유동성 지원만이 부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점쳐지고 있다. 다만 채산성이 확보된 계열 공사 물량 회복이 어려운 상황에서 미분양 사업장과 관련한 영업자산의 추가적인 손실 가능성이나 원가율이 높은 민간 도급공사 위주의 사업장 구성 등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수준의 수익성 개선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