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부동산 대규모 손실 우려, 괜찮다는 금감원과 의구심 가득한 금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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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부동산 대규모 손실 우려 보도에 급하게 진화 나선 금감원,
금융 시장에서는 알려진 것보다 실제 손실액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 팽배,
선거 앞두고 금융 정책 효과 상쇄시키는 보도 차단이라는 지적도 나와

지난 18일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금융그룹의 해외 부동산 투자액 약 20조3,868억원 중 1조원 이상의 금액이 손실처리됐다고 밝힌 바 있다. 15일에는 국내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한 곳인 나이스신용평가의  ‘증권사 해외부동산 익스포저 현황 및 관련 손실 점검’ 보고서에서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전체 해외부동산펀드 8조3천억원 가운데 3조6천억원에 대해서는 증권사가 아직 손실을 한 번도 인식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문화 확산, 금리 인상, 유럽 경기 침체 등의 이유로 해외 상업용 부동산 평가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내 주요 은행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도 손실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앞서 13일(현지시간) 이복현 금융감독원(금감원)장은 런던에서 진행된 투자자 설명회에서 “(금융사들이) 지금처럼 여건이 나쁜 상황에서 이 정도 감내할 수 있다면 오히려 해외 대체투자 포지션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투자처가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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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 13일(현지시간) 영국 로열 랭캐스터 런던 호텔,  ‘금감원·지자체·금융권 공동 런던 투자설명회’ 개회사 / 출처=금융감독원

해외 부동산, 괜찮다는 금감원과 의구심 가득한 금융시장

이어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금감원의 김병칠 전략감독 부원장보는 5대 시중은행들의 평가손실액이 1조1,002억원이라고 해도 전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액이 지난해 9월말 기준 56조4천억원에 달하는 점, 금융권 총자산인 6,800조원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손실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금융 시장 불안으로 확산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금융당국의 발표에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매일 가격 변동이 있는 주식의 경우도 펀드에 따라 가격 반영 주기가 3개월에서 심지어 1년에 1회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부동산의 경우는 가격 변동 자체가 크지 않고 거래량이 없을 경우 실제 가격을 산정하기도 어려워 장부 가격을 바꾸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나이스신용평가의 지난 15일 보고서대로 증권사가 아직 한번도 손실을 인식하지 않은 경우가 해외부동산펀드 8조3천억원 중 3조6천억원에 달하는 점, 손실을 인식했더라도 추가 손실이 예상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해외 상업용 부동산 가격 폭락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 금감원의 발표보다 더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부동산의 경우 매각이 진행되어야 실제 수익을 계산할 수 있는만큼, 현 시점에서 손실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으나,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시중은행들이 장부상에 기록한 1조1천억원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이 실제 손실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대규모 손실 불보듯 뻔해, 투자 원금 대부분 날릴 것으로 전망되는 경우도

증권업계에서 해외 부동산 대규모 손실을 우려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이지스자산운용은 1551 브로드웨이 프로퍼티 투자채권을 미국 부실채권 전문펀드에 1,800만 달러(약 230억 원)를 받고 넘기기로 했다. 앞서 2017년 말 이지스는 수협중앙회, 신협중앙회, KB생명, 코리안리, 증권금융 등과 함께 이 건물에 1억400만 달러(약 1,323억 원)를 투자했었던 점을 감안하면, 80% 이상의 원금을 손실 본 것이다. 인근에 타임스퀘어가 있는 핵심 상권에 대한 투자가 이렇게 대규모 손실로 돌아온만큼,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권, 혹은 후순위 투자가 이뤄졌던 경우에는 더 심각한 손실을 입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오는 이유다.

미래에셋이 투자한 런던의 트웨지 베일리 건물은 임차인들이 계약을 연장하지 않아 임대 수익이 줄었고, 강제 매각 절차가 진행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미래에셋의 미국 워싱턴 투자처인 1750K, 1801K 건물도 미국 국세청이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데다, 미국 연준이 별관만 쓰고 있는 상태로 공실률이 크게 뛰었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2018년에 인수한 런던 넘버원 폴트리 건물의 경우 준공된 지 26년이나 돼 기업들의 선호도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진행됐고, 결국 높은 유지·보수 비용 탓에 매수자를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미래에셋이 투자한 미국 댈러스 스테이트팜 사옥도 도심 외곽에 위치해 가격 반등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블룸버그는 한국이 최근 5년간 오래됐거나 도심 외곽에 위치한 2급 건물에 투자해 손실을 키웠다고 최근 보도했다. 입주사들은 친환경 콘셉트의 신축 사무실을 선호하는데 한국 투자자들은 이런 수요를 제대로 감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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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상업용부동산 가격지수와 국내 해외부동산펀드 비중 추이 / 출처=자본시장연구원

선거철 맞아 해외 부실 투자는 숨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지수는 고점(2022년 4월) 대비 22.5%가 떨어졌고, 유럽은 고점(2022년 5월) 대비 22% 하락했다. 부동산 거래량이 많지 않아 가격지수가 후행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30% 이상 손실을 본 투자처가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다, 후순위 투자였을 경우 원금의 상당액을 손실처리해야하는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금투센터에서 열린 ‘2024년 자본시장 전망과 주요 이슈’ 세미나에서 대체투자 속성을 감안할 때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손실이 반영되고, 특히 부동산 펀드 만기가 2025년, 2026년에 각각 1조8천억원, 1조9천억원에 달하는 만큼, 하반기로 갈수록 손실액 반영이 가시화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고위직 관계자가 직접 기자간담회를 통해 해명 브리핑을 해야할만큼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널리퍼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22대 총선을 50여 일 앞 둔 상황에서 금융투자세 면제, 저PBR 주식 대상 밸류업 프로그램 등의 각종 금융시장 활성화 정책이 해외 투자 손실 소식에 날벼락을 맞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부동산PF 손실 등이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있지만, 당장은 선거 공천에 당의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 부실이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정권의 역량에 대한 공격용 재료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