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상속 분쟁과 한미-OCI의 닮은 꼴 – 아들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모녀의 반란
재계 관계자들, 한미-OCI 연합을 경영 참여하는 '모녀의 반란'으로 해석 LG그룹 구 회장 일가 세 모녀의 상속 분쟁도 경영 참여 의지 표현 아들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모녀의 반란' 이끌었다는 해석도
지난 1월 한미약품과 OCI가 통합을 선언한 가운데, 장녀인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과 어머니 송영숙 회장이 주도하는 통합에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가 크게 반발하며 소송을 시작했다. 재계에서는 한미약품 창업자인 임성기 회장이 지난 2020년 8월에 별세한 이후부터 가시화되던 집안 내 경영 전략 차이가 가시화 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고(故) 임 회장의 생존 시에는 경영 일선에 나서지 않던 송영숙 회장과 장녀 임주현 사장의 전격적인 의사 결정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딸들이 다시 경영에 참여하려는 모습은 LG일가에서도 관측된다. 지난 2018년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의 작고 이후 장자 상속 원칙에 따라 현 구광모 회장에게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듯 했으나, 구 선대회장의 아내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 구연경, 구연수 씨가 상속 지분 분할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조용한 승계’라는 LG그룹의 대원칙이 깨진 상황이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의 경영 승계가 확정되기 전에 구본준 LX그룹 회장이 LG그룹 승계에 관심을 보였던 사례와 더불어,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LG 일가 내에 확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 중심 기업 문화에 대한 여심(女心)의 반란
재계에서는 한미약품 그룹의 최근 경영권 분쟁도 임성기 회장 생존 당시에 뒷선에 물러나 있던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지난 2년간 장·차남의 경영 방식에 큰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특히 장녀 임주현 사장은 한미-OCI 연합이 상속세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인 동시에 제약업계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안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장·차남이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한미약품의 글로벌 시장 도약을 위해 자본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점과 상속세 지급이라는 재무적인 문제를 놓고 봤을 때, 집안이 아니라 한미약품을 위한다면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3월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모녀의 기업 결합 안이 다수 주주들의 지지를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장·차남의 경영 능력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적지 않다.
LG그룹 구 회장 일가의 세 모녀도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이 경영을 이끌고 있을 때는 뒷선에 물러나 있었다. 김영식 여사는 LG생활건강에서 내놓는 생활용품 시연식에 참여하는 것 이외에 경영 일선에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지난 2018년 상속 분할을 정할 때도 세 모녀는 집안에서 정한 경영권 분리 상속에 별다른 불만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구본준 LX회장이 LG그룹 승계에 잠시 관여했다가 LX그룹으로 계열 분리를 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구본준 LX그룹 회장이 명목상으로는 삼촌과 조카간의 계열 분리였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경영권 분쟁이 있었다는 것이 LG그룹 가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구본준 LX그룹 회장이 LG그룹 경영권 승계에 욕심을 냈지만 일가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것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양자라는 점, 아직 경영 승계를 위한 훈련을 많이 받지 않은 점 등을 내세웠으나, 자칫 구본무 선대 회장의 세 모녀가 경영권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구본준 LX그룹 회장이 양보했다는 평가다. 결국 구본준 회장은 본인이 보유하고 있던 LG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구광모 회장의 LX 지분 15.95%을 인수했다.
경영권 분쟁이 수면 아래 있는 있던 이유는 경영 능력 때문?
재계 관계자들은 LX그룹 계열 분리 사건이 LG그룹 구 회장 일가 세 모녀의 생각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예상한다. 단순히 소수 지분을 가진 가족의 일원으로 남을 것이 아니라, LX그룹과 같이 계열 분리를 요청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었으나, 구광모 현 LG그룹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집안 내 의구심이 확산되면서 경영권 분쟁이 더 복잡하게 흘러가는 모습이다.
LG그룹은 지난 2022년 LG에너지솔루션이 시가총액 2위로 상장하면서 그룹 전체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올해들어 글로벌 불경기가 심화되는 와중에 해외 전기차 수요 부진에 따른 배터리 산업 부진이 겹치면서 조용한 위기설이 대두되는 상황이다. 이 중 LG에너지솔루션과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에는 수익성 악화를 지적하는 내용이 주총장에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LG엔솔과 LG이노텍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8.89%, 34.67% 감소했다. LG디스플레이는 영업손실 2조5,102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가 계속되는 중이다. 올해 들어 주식 추가 발행을 통해 최소 1조원의 추가 자금을 확보한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LG디스플레이는 내부적으로 명예퇴직을 진행하고 있고, 남은 직원들도 우리사주 주식을 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다. 16조원에 달하는 부채가 알려지면서 직원들의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한미약품 그룹도 고(故) 임성기 선대회장의 생존 당시에는 장남 임종윤 사장이 기업을 이끌었다. 차세대 경영자가 임종윤 사장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인력은 없었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임 선대회장의 사후 법정 상속비율에 따라 어머니 송영숙 회장이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가 됐고, 직접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임 선대회장 작고 후 1년 반이 지난 2022년 3월에 결국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다. 둘의 경영 스타일이 맞지 않았다는 해석과 함께, 장녀 임주현 사장이 어머니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당시 한미그룹 직원들 사이에는 어머니인 송영숙 회장은 딸인 임주현 사장을 그룹의 차기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어 2023년 7월 임주현 사장이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으로 부임한다. 당시 내부 공지에는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의 리더십과 임주현 사장의 기획을 기반으로 혁신 신약 연구개발, 글로벌 비즈니스, 디지털 헬스케어 등 전체 그룹사 차원의 미래 성장동력 육성에 매진할 것”이라는 표현이 등장해, 사실상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회사의 중추가 됐다는 것을 직원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모녀는 수천억원대 상속세와 신약 개발에 쓸 자금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사모펀드 라데팡스파트너스와 지분 매각 계약을 제결하기도 했는데, 가격이 맞지 않아 계약에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OCI와의 통합이라는 전례없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송 회장과 이우현 OCI그룹 회장의 어머니가 친분이 있었고, 상속세와 연구개발에 쓸 자금이 필요한 한미그룹 모녀와 뛰어난 현금창출력을 가졌지만, 미래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OCI그룹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모녀 반란의 미래는?
재계 관계자들은 LG그룹 세 모녀의 상속 분쟁은 장기화 될 것으로 전망한다. 재판 결과가 단번에 나올만한 사안도 아니고, 세 모녀의 본질적인 목적은 LX그룹 같은 계열 분리를 넘어 LG그룹 자체의 경영 참여로 보인다는 관측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불경기를 맞아 LG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보다는 경영 상황이 개선되고 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상속 분쟁이 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상속 분쟁에서 승소한다고 해도 세 모녀의 지분이 LG그룹 지주회사의 15%에 미치지 못하는 만큼, 외부의 적이 있을 때 내부 분란을 일으켜서는 지지 세력을 모을 수 없다는 관점 아래 구광모 현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시장 판단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한미약품 그룹은 오는 3월에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모녀와 장·차남 간의 표 대결을 예상하는 분위기다. 표 대결이 벌어진다면 캐스팅보트는 아버지의 고향 후배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쥘 것으로 전망한다. 신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11.5% 정도로, 임종윤·종훈 형제의 지분과 합치면 약 32% 가량이 된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번 주총이 두 형제의 경영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는 동시에 향후 한미약품 그룹의 경영권 전체에 대한 시장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합병이 성사될 경우, OCI 그룹 지분이 대규모 유입되면서 지분 희석이 일어나는만큼 임종윤·종훈 형제가 다시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